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로등 Sep 20. 2023

어떤 팬심

자아도취를 넘어 성장으로 가는 길


여름휴가로 방콕에 간다고 말하자 누군가 ‘킹더랜드’를 거기서 찍었다고 했다.

나:‘킹더랜드?’

후배:‘준호 나오는 드라마요!’

나:‘준호?’

그게 불과 한 달 반 전의 ‘준호’에 대한 내 인지 수준이었다.


생각해 보니 방콕에 갔을 때 윤아의 대문짝만 한 화장품 광고판과 공항 가는 길에 엄청난 크기의 광고판들에서 BTS는 본 것 같은데, ‘준호’는 도통 내 개념 속에 없는 존재였다.




47번째 해를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누군가가 내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버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냥 멍하니 쉬고 싶던 지난 토요일 오후에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열고 넷플릭스를 둘러보다가 가볍게 볼만할 것 같아서 ’킹더랜드‘를 찾아봤다.

스카이 다이빙이라는 건  한 번 해 볼만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얼마 전 읽었던 한 경찰특공대 팀장님의 ’강철멘탈‘이라는 책에서 비행기에서 떨어져 낙하산 펴기 전까지가 그렇게 평화로웠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클리셰처럼 이어지는 장면들을 봤다. 재미가 있는 건 아닌데, 저 남자 주인공의 마음이 왜 이렇게 내게 절절하게 전해지는 거지? 하는 생각이 한두 번 드는 것 같다가 어느새 일요일 밤까지 정주행으로 끝을 봐버렸다.


미쳤구나. 이런 시간낭비에 마음을 빼앗기다니 하는 자책도 들었지만, 이내 이 남자 주인공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옷소매 붉은 끝동’을 찾아보고,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그에 관한 영상들을 찾아보고... 마음도 머릿속도 이리저리 휘둘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겪은 일이 내게도 찾아든 것이다.


갸름하고 하얀 얼굴, 너무나도 맘에 드는 웃는 모습.

그런데, 예전 모습을 찾아보니 신기할 정도로 뭔가가 약간 다르다. 

물론 시술이나 어쩌면 수술로 변화를 줬을 것도 같지만, 그것  말고 뭔가 더 있다.

아비투스가 달라져 보인다고나 할까? 그게 예전 모습과는 아주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내게 와닿은 것은 그가 지나온 지난 시간들과 현재의 모습이다.

잘 되다가 안 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봤지만, 그 반대의 흐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본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본인은 늘 항상 자신의 계절이었다고도 했지만, 팬덤이 이리도 확장되는 계절은 아니었을 것이다.


‘준호’를 통해서  어느새 호기심과 열정은 익숙함과 편안함 속으로 사라진 채, 나에 대한 모든 것이 합리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꼰대’가 되어 버린 나를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자기 관리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던 20대가 있었고, 쏟아지는 각종 역할들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꼿꼿하려 버티던 30대도 있었다.


하지만, 미래보다는 과거에 사로잡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내 삶은  ‘준호’라는 거울 앞에 비춰보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과연 이것이 내 인생에 대한 최선일까? 


동경과 질투는 혼란스러운 감정이지만, 결국 자아도취로 연결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이 동경하는 대상만큼 멋지고 싶은 욕망, 그 대상이 바로 나이기를 원하는 욕망, 그렇게 되지 않음에 대한 좌절이 그 바탕에 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주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장이라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을 때가 됐음을 말이다. 


한 동안 읽지 않았던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하고, 외면하던 영어책을 듣고 있다. 적게 먹고 몸을 움직여 내 몸의 기본 생리기능을 활성화하기도 한다. 그리고, 직업적인 전문성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 본다. 


좋아 보이는 것에 대한 강한 끌림이 결국은 나를 좋게 만드는 것에 대한 강한 동기가 됨을 알게 됐다. 


어쩌다가.. 또 준호의 예전 출연작인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보게 되어 주말 내내 사로잡혔다. 

소재와 스토리가 불편하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 '준호' 정말 연기를 잘해온 사람이구나! 감탄을 연발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스토리와 캐릭터가 보는 사람의 사고회로에 까지 영향을 주는 일. 멋진 일이다.


그리고 준호는 더 이상 내게 예쁜 외모뿐 아니라 캐릭터를 잘 전달해 내는 전문가이자, 그가 만들어가는 작품들을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고, 언젠가 그가 세계 무대에서 밝게 웃을 날도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그날에는 부디 이미 수많은 작품들로 우리들과 함께 했기를 바라면서.  


아.. 오늘은 '강두'가 회사까지 따라왔다

밤늦게까지 같이 있다가 출근 준비 할 때도 눈앞에서 얼쩡거리더니..


가라고 할 마음이 안 든다


오히려 내가 뭘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할 뿐.









작가의 이전글 직업관에 대한 짧은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