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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Mar 23. 2024

중년의 위기를 대하는 방식

 십여 년간의 워킹맘 생활에 지쳐갈 때쯤 이대로 가면 우리 가정은 해체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모든 역할을 '잘'해내려 했건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었다. 


나 자신과 동일시하던 직장 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2년이 지나도 저절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 넷 모두 타국에서 낯선 어려움과 외로움을 함께 겪고 극복해 나가며 각자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결국 우리 가정은 되살아났다. 


내 삶의 한 가지 미션이 완료되었다. 


직장으로 돌아와 보니, 이번에는 나의 중요한 페르소나인 '인정받고, 몰입하는 직장인'이 없어져 있었다. 내게 주어지는 역할이 곧 직장에서의 '나'임을 절감하며, 그것을 뛰어넘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역할을 찾아 직장을 바꿀 것인지를 고민하는 날들이 무려 3년이나 이어졌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인지 버텨내야 하는 시점인지를 매일 고민했다. 


처음에는 직장이 문제인 줄 알았다. 다른 사람이 내게 문제를 가져다준 것으로 생각하니, 세상은 회색으로 보였고, 무엇을 하려 해도 '예전처럼', '30대 때처럼', '휴직 전처럼' 잘되지 않았다. 마치 내 의식이 바로 아래에 커다란 바위들이 있어서 한 걸음만 내디뎌도 바로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물속의 해초 숲에 갇힌 것 같았다. 


가끔 만나던 심리상담사님은 이런 나에게 웃으며 "그건 '중년의 위기'예요. 미해결 과제가 드러나는 거죠. 책 좋아하시니까 융의 자아와 자기실현 한번 읽어보세요."라고 하셨다. 


'중년의 위기'? '미해결 과제'?


나는 더 이상 '청년'이 아니고, 이런 류의 우울함은 나에게만 오는 게 아니며, 뭔가 해결이 안 된 것이 있다는 얘기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써 보면 항상 자리 잡는 단어들 '영어', '글쓰기'가 떠올랐다. 시도하다가 그냥 심드렁해져서 그만두기를 반복한 지 15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그것들을 정말 원하는지 잘 몰랐고, 허영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쉽게 시작하고 쉽게 그만뒀던 것이다. 


한동안 '리추얼', '루틴'에 빠져 있었지만, 그 역시 얼마 못 가서 내팽개치곤 했었다. 나만의 의미와 의도가 없는 '루틴'은 내게 와서 자리 잡을 수 없었다. 


마치 부메랑처럼 나의 '미해결 과제'들이 돌아와 내 앞에 동동거리며 파닥이고 있었다. 청구서를 들이대면서. 


문득, 지난 1년간 꾸준히 써 오고 있는 세 권의 일기가 떠올랐다. 원래 내가 원하는 것들 목록에 '일기 쓰기'도 크게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 단어는 해야 할 일 목록에서는 사라졌다. 다만 '그냥 하는 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의도를 갖고 하는 모든 행동들은 한 올 한 올이 굵은 밧줄을 짜내듯이 내가 원하는 삶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무엇을 하느냐는 관점에서는 일기를 쓰고, 글을 필사하고, 영어회화를 외우며, 걷고, 강의를 듣는다. 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결국 해 낼 수 있게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냥 하는 것이다. 묻거나 따지지 말고 '그냥'!


굳이 말하자면, 내가 하기로 마음먹었었으니까. 그뿐이다. 청구서가 또 돌아올까 봐 두려운 것만은 아니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동안 계획과 중단과 자책의 악순환만 반복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예전에는 필사를 할지 말지, 영어를 외울지 말지를 항상 다시 생각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냥 한다. 이렇게 하니 기록이나 흔적은 쌓이고, 선택의 번잡함이 없어지며, 나도 믿을만한 인간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내 안의 나에 대한 신뢰 형성. 


그동안 내가 벌리고 수습하지 못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줬던 자책감과 자괴감의 존재가 점점 옅어진다. 아무도 내게 잘못한다 하는 사람 없는데도 스스로 만들었던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조금씩 해소되어 간다. 무엇을 하든 '잘해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이것을 하고 있는 '의도'가 전달되도록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점점 자주 든다.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서 진정으로 무엇을 경험하길 원하는지를 말이다. 


아마도 나를 그렇게 못 미더워하고 미워했던 것이 '미해결 과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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