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선을 긋기 위해 점 찾기
영화 <노트북>에서 노아가 앨리와 싸우면서 묻는 장면이 있다.
“what do you want?”
앨리는 대답한다. “It’s not that simple”
그리고 다시 노아가 묻는다.
“What do you want?”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대답하지 못한 앨리는 차를 타고 떠나버린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 장면이 다른 때와 다르게 들려오는 이유는 누군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을 때 대답을 할 수 없는 나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를 듣다가 만나게 된 이 장면이, 다른 때라면 그저 명장면이구나 하고 넘겼을 텐데, 나를 계속 흔들어놓는 이유겠지. 이제는 진짜 나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누군가 꿈을 물었을 때,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어렸을 때는 간호사, 디자이너, 선생님 등 명사로 대답을 했고 누군가의 진짜 꿈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가져와서 대답을 하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은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는 무엇을 가져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다고 대답하기에는 마음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원하는 걸 이제는 들여다보면 안 될까 간절해진 마음에.
그래서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지만 한 번도 깊이 나를 파본적도 없었을뿐더러 아플까 봐, 두렵고 불안해서 호미로 깔짝거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프더라도 땅을 깊게 파는 중장비를 사용하는 걸 보면서도, 뭐가 나오면 바로 덮어버리려고.
그런데, 결국 돌고 돌아 마주하기로 결정을 했고, 하나씩 마주하게 되면서 이제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거나 왈칵 쏟아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가 더 많았다. 내가 뭘 피했던 걸까 묻고 싶지만 알 수 없어서. 누군가가 나를 제대로 파내줬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내가 파야하는데 누구에게 맡기겠어 싶어지기도 하고.
결론은 뭐, 그래서 오늘도 이야기하다가 눈물이 핑 돌아서 안 울려고 다른 생각하고 꾹 참아내기도 했다.
왜 내가 그리는 꿈에는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걸까, 그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건 고양이뿐일까.
하나 알게 된 건, 고양이정도랄까. 강아지는 산책시켜줘야 하니까, 그럼 밖에 나가야 하니까. 이런 귀찮음 가득한 말속에도 바깥과 단절을 원하는 것인가 싶어지기도 하고 완전히 그렇다고 하기엔, 어제 TV에서 본 이탈리아의 풍경을 보면서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완전한 단절도 아니고.
아직은 알쏭달쏭 알 수없지만, 점들을 하나씩 이어나가다 보면 선이 되고, 그 선이 면이 되고, 입체가 되어서 나를 알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우선은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겨본다.
일기일회, 오늘의 한 줄 : 제주도에서 찍은 냥이인데 사진 찍으려는데 다가오니까 나도 모르게 주춤했다. 고양이 키우고 싶은 거 맞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