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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필 Jan 30. 2024

다시 정원

어릴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 집에 수도도 없고 전기도 없었다. 전기는 어찌어찌해서 끌어다 쓰게 되었는데, 물은 길러썼다. 두메산골에 산 것이 아니다. 무려 부산, 부산에서도 그 당시 주거지와 문화의 중심이었던 대신동에 살았다. 대신동이 어떤 곳이냐 하면 극비수사의 모티브가  되었던 그 당시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정효주양 유괴사건이 일어난 곳이 대신동이다. 대신동은 동대신동과 서대신동 두 구역이 있는데 두 대신동에는 한국, 혹은 부산에서 가장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있었다. 내가 산 곳은 동대신동인데, 부산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와 가장 부자동네가 공존한 재미있는 곳이었다. 대신동만 그렇지 않았다. 한국 대부분의 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이와 부자의 경계는 거의 없었고, 빈부의 차이 심해도 학교, 직장, 동네에서 서로 섞여 살았던 시절이었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음식도 중요하지만 공기와 물도 필수다. 우리 집은 아무리 가난해도 공기는 공짜로 마실 수 있었지만, 물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매일 해가 지고 나면 저녁 8시 30분쯤에 얼기설기 바퀴를 달아 직접 만든 물수레를 끌고 물을 기르러 온 식구가 출동했다. 아버지는 앞에서 끌고, 누나, 형, 나는 물수레를 뒤에서 밀었다. 1.5킬로미터쯤 가면 아주 오래된 동네 빨래터가 있었는데, 그곳 앞에 수레를 세워두고 물을 받아서 수레로 옮겼다. 물을 잔뜩 실은 물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약간 오르막이어서 몹시 힘들었다. 중간에 계속 쉬면서 물수레를 밀고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수레로 가져온 물은 주로 세수와 빨래를 할 때 썼다. 마실 물을 산에서 공급을 받았다. 뒷산은 아침마다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구덕산이라 불리는 산인데, 중간중간에 약수터가 많이 있었다. 아버지는 새벽에 커다란 배낭에 물통을 가득가득 넣고 약수터로 갔다. 깜깜한 밤에 출발한 아버지는 환해지면 집으로 돌아와 물이 뚝뚝 떨어지며 젖은 배낭을 힘겹게 내려놓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아버지와 함께 약수터로 가기 시작했는데, 6살 내지 7살때로 기억한다. 학교에 간 뒤부터 방학이 되면 매일 아버지와 옥천, 석탑이라 불리는 약수터를 함께 다녔다. 산과 친해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6학년때까지 계속 아버지와 산을 다녔고, 중학생이 되고 난부터는 방학이 되면 친구와 함께 새벽에 약수터를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되었다. 중학생 때부터는 나도 모르게 산을 좋아하게 되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공부할 책을 가지고 산으로 갔다. 길이 없는 곳을 따라 산을 타다가 멋진 바위를 발견하면 그 위에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산에서 운동하며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공부를 한 탓인지 성적도 좋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틈만 나면 산으로 갔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천후 최정예 산악부대를 표방하는 강원도 양구의 21사단에 입대를 했는데, 소대 배치를 받고 자기 소개를 할 때, 등산을 좋아한다는 말을 절대 하지 말라는 고참의 충고를 들은 뒤로는 산을 멀리한 것 같다. 무엇보다 군대 시절 내내 M60기관총을 메고 DNZ산을 타며 무릎과 허리가 상한 것이 주된 이유인 것 같다. 제대하고 난 뒤 몇 년 동안은 산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세월이 흘러,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생태철학을 공부하면서 산을 다시 좋아하게 되었다. 산뿐 아니다. 식물을 재발견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은 초록 식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때는 잡초 하나도 함부로 뽑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정원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열어 매일매일 예쁜 정원을 가꾸었는데, 그때도 잡초는 함부로 뽑지 않고, 왠만하면 자생식물들을 활용해 정원을 가꾸었다. 잡초를 포함한 모든 식물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정원 가꾸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었던 때다.


세월이 흘러서, 손봐야 할 정원이 있는 집이 3곳이 넘게 되었고,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손목, 발꿈치 관절도 아프고, 무엇보다 전반적인 체력이 떨어지자 정원을 일일이 가꾸는 일과 점점 멀어졌다. 자부심의 상징이었던 정원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정글로 뒤덮인 귀신  나올 것 같은 폐가가 되었고, 100평 넘는 정원이 있던 부모님 살던 곳은 정원을 관리해주는 사람에게 맡기고, 15평 정원이 있는 지금 사는 집은 정말 최소한만 정원 일을 하며 살았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생각이 바뀌었다. 가드닝이라는 말만 들어도 힘들다는 생각에 온몸이 움츠려진다.  


폐가가 된 게스트하우스를 다시 손봐야겠다는 생각은 시작한 것은 1년 전이다. 지난 일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견적을 뽑았다. 곳곳이 썩은 데크와 철물을 다 걷어내고 벽돌로 예쁘게 바닥을 만들려고 했다. 견적을 꼽아보니 800만원 정도 나왔다. 데크만 다시 하는 것도 400만원은 족히 넘는다. 다 걷어내고 현무암과 흰색 자갈로 마감하는 것도 350만원을 넘고, 철거비까지 합하면 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돈도 돈이지만 진짜 문제는 그렇게 했을 때 결과물이 만족스럽냐는 것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결과물은 허접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정원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불러봐도 비슷비슷한 결과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고민만 했다. 브랜드 있는 정원디자인 업체에게 맡기면 몇 천만원은 우습게 든다. 진짜 문제는 그렇게 해도 결과물이 과연 마음에 드는가이다. 


정원쪽은 예전에도 관심이 많아서 한 참을 알아본 적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붕어빵 만들듯이 볼품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세련되고 보기 좋은 가드닝을 하는 업체는 비싸다. 터무니없이 비싸다. 예컨대, 3미터에 15만원 하는 대나무 울타리는 업체를 통해 일본제품을 수입하면 가격이 10배로 뛴다. 물론 같은 제품은 아니지만, 같은 컨셉인데 가격은 하늘과 땅 차이다. 검색을 하며 고민고민을 한 결과는 이렇다. '전부다 내 손으로 다 한다.'


12년전 게스트하우스를 처음 기획할때의 목표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서점이 컨셉이다. 문제는 아름다운 정원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이다. 가드닝이라는 말만 들어도 온몸이 욱신대는 내가 하기로 했다. 작정을 하고 해야겠다 마음을 먹으니, 몸과 마음이 달라진다. 몸도 그에 맞춰 나도나도 하면서 준비를 한다. 마음도 설렌다. 요즘은 정원을 꾸밀 생각에 하루하루가 활기차다. 이렇게 좋은 일인데, 이렇게  내가 원하는  일인데, 그 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가드닝을 멀리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다시는 정원 일을 하지  않겠다 결심했다. 


시간이 걸리는 일, 무언가에 헌신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 이 단순한 진리를 저 폐가가 된 공간에 구현하려고 하니 설렌다. 봄이 되면 데크를 수리하고, 새로운 우드타일을 깔고, 스테인 칠을 하고, 부서진 파벽을 보수하고, 노포동에 가서 예쁜 야생화들을 사올 것이다. 그 전에 정원 전체를 매일 조금씩 리모델링할 것이다. 벽돌을 사서 화분을 만들고, 화분들을 옮겨 자리를 만들고, 식물을 심을 것이다. 무성하게 자라 흉물이 된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만들 것이다. 5월부터 갖은 꽃들이 번갈아 피는 정원을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 소나무잎도 고개를 숙이는 뜨거운 여름에 태양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오렌지색 능소화를 만발하게  만들 것이다. 집안의 물건들을 모두 정리하고 여백이 있는 세련된 공간을 만들어 의미 있는 책들을 놓아둘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의 예쁜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만들 것이다. 동네 아이들이 언제든 찾아와 놀 수 있는 공간도 하나 만들 것이다. 작가들이 찾아오게 만들어 여행자, 동네 주민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을 열 것이다. 부산을 찾는 여행자들이 언제든 와서 공짜로 티와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며 쉬며 에너지를 얻는 공간을 만들 것이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매일매일 조금씩 가꿔나가는 정원이 있을 것이다. 


어떤 정원이 될 지 나도 궁금하다. 삶에서 필요한 것은, 할 수 있을까라는 결과 중심의 생각이 아니라, 해보겠다는 과정 중심의 마음이다. 그런 해봄을 생각할때 마음이 설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시 정원이다. 가드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런 공간을 만들면 뭐가 좋은데, 돈은 어떻게 벌려고?라고 물어보면 나는 모른다. 단지 좋은 공간,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만약 저 폐가가 된 공간이 아이들 장난감 같은 쬐끄만 지구라고 한다면, 나는 그냥 저 장난감 지구를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을 뿐이다.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만 설렌다. 변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변화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변화 전에 묻는 것은 어리석다. 계획과 결과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 모름이 삶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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