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라 Mar 18. 2024

글쓰기의 흐름에 관하여

두 가지 방식의 글쓰기가 있다. 한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은 동일하다. 작가가 정한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새로운 의견을 주장하고, 독자를 설득하는 것은 동일하다. 이제 남은 것을 글을 쓰는 과정이다. 글을 쓸때는 생각이 춤춘다. 글을 쓰는 내내 머리 속 온갖 새들이 재잘거린다. 이 지점에서 이 말을 할까 말까, 저 말을 할까 말까, 여기서 이 말을 하면 좋겠어. 작가는 시시각각 머리속 재잘거림을 들으며 그 수많은 재잘거림 속에서 그 다음 표현, 그 다음 문장으로 무엇을 쓸 지를 결정한다.


여기서 두 가지 방식의 글쓰기 방식이 나온다. 동질성과 이질성이다. 동질성의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와 이질성의 방식으로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동질성의 방식을 선호한다는 것은 자신이 정한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이야기 중심으로 글을 풀어나간다. 글을 쓰다가 주제와 연결되지만 조금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가차없이 무시한다. 오직 직접적 연관이 있는 내용만으로 글을 진행한다. 이런 류의 글은 지루하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진행한다. 새로운 내용들을 말해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투명 용기처럼 다 보이기 때문에 뻔한 느낌이 든다.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진다. 주제와 직결되는 내용으로 흥미진진하게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또 한 가지 방식인 이질성의 글쓰기는 의외성에 집중한다. 주제와 전혀 연관되지 않을 것 같은 내용으로 주제를 설명하려고 한다. 예컨데, 돈버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똥의 역사를 말한다. 도대체 이런 내용이 주제와 무슨 상관인지 궁금함을 자아낸다.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절묘하게 주제와 연결된다. 발견의 재미가 있다. 이질성이란 예상치 않음이다. 주제와 내용을 생각하며 독자가 이미 알고 있고 예상하는 내용만을 말한다면 그 책은 지루하다. 독자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책을 볼 이유가 없다. 글을 통해 독자에게 예상치 않은 재미, 새로운 정보, 강력한 설득을 하려는 작가는 이질성의 글쓰기를 선호한다.


두 가지 방식 중에 무엇이 좋은지는 모른다. 어떻게 글을 써 나가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질성의 글쓰기 폐해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글을 기획하고 쓰는 단계에서 지나치게 고민을 많이 하고, 지나치게 자료를 많이 모으고, 지나치게 배가 산으로 갈 우려가 있다.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것은 주제와 내용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다.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계속 딴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이런 류다. 재미는 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질성의 글이냐, 동질성의 글이냐는 쓰는 순간순간의 행위 속에서 다음 문장에서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어떤 판단은 즉각적이고 어떤 판단은 오랜 고민을 한다. 글을 쓰다가 막혀 몇 시간, 몇 일, 몇 주 동안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경우는 대체로 이질성의 문제다. 동일성의 글쓰기를 한다면 반복이 되더라도 일단 쓰고 나중에 수정하면 된다. 글쓰기는 전 문장인 A와 B 사이에 비약에 관한 문제다. 비약이 심하면 글을 흐름, 논리가 끊어진다. 이질성의 글쓰기를 선호하면 자주 이런 문제가 생긴다. 다른 표현, 내용 내용으로 바꾸고 싶은데 적절한 대체문장이 없어서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문장을 삭제하면 문장간 비약은 더 커진다. 이질성의 글쓰기에서는 문장을 줄일수록 더 길을 잃는다. 반면 동질성의 글쓰기에서는 군더더기를 줄일수록 글에 힘이 생기고 살아난다. 글쓰기에서 수정과 편집에 관한 일반적 조언은 동질성의 글쓰기에 해당된다.


만약 내가 이질성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각오를 해야 한다. 타고난 작가라면 서로 다른 내용을 완벽하게 조합해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쓰듯 맛깔나게 흡입력 있는 글을 쓸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쉽게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글쓰기는 답이 없는 일이다. 다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하나하나 알아가다보면 문제가 풀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일이다. 글쓰기에서 문제를 푼다는 것은 자신만의 문체를 갖추는 것이다. 처음 글쓰는 사람이 5분만에 자신의 문체를 찾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수십년이 걸리기도 하는 문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어려움 때문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고, 좌절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삶과 비슷하다 말하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흑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