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필 Feb 18. 2023

흑돼지



20대부터 30대 말까지 함께 야구를 했던 후배를 오랜만에 어제 만났다.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바로바로 행동한다. 그 정도가 심해서 이야기를 들으면 통쾌한 웃음이 나올 정도다. 예컨대 어느 날 치킨을 먹다가 맛있어서 바로 치킨집을 오픈했고, 어느 날 흑돼지를 먹었는데, 맛있어서 바로 흑돼지전문점을 열었단다. 고기집을 하려면 뭘 준비해야하고 얼마나 필요하고 마진은 얼마나 되고 유통은 어떻게 해야 하고 가게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하며,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상태에서 고기 한 점을 삼키고는 바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해 좌충우돌 배우면서 운영한 고기집 장사가 제법 된단다.




어제 함께 점심을 먹게 된 경위도 이 친구의 강한 개성 때문이다. 다음에 점심을 먹자고 통화하다가, 대뜸 '점심 먹었냐?'는 물음에 '아직....'이라고 대답하니, 지금 같이 먹자며 차로 30분이 넘는 거리를 순식간에 운전해 사무실까지 달려왔고, 20분 거리의 식당에 날아가 밥을 먹었고, 다시 사무실까지 나를 모셔주고 돌아갔다. 이 친구처럼 언행일치가 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언행일치라기보다는 일단 행동하고 말이 행동을 뒤따른다. 이 친구와 이야기하면 마음 속이 투명한 어항처럼 훤히 보인다. 그때그때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직설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20대에는 참 개성이 강하고 재미있다고 여겼으나, 나이 들고 나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니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다.




난 뭘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생각으로 끝장을 본 뒤에 뭘 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문제를 일찍이 간파해 바로바로 행동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생각이 많은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다. 오히려 그걸 즐기기까지. 예컨대 최근 크몽에 전자책과 취업코칭 서비스부터 만들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한 달도 훨씬 넘었다. 그런데 자꾸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건 그 동안의 신념과 다른 선택인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걸 하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이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인가? 나는 왜 이걸 하려고 하는가? 어떤 가치, 의미가 있나? 등 생각이 생각을 만들어 펼쳐지기만 하니 정리가 되지 않는다. 




최종적 의미와 가치만 따지며 이럴까 저럴까 생각만 하다 눈을 떠보니 요양원인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어제 후배는 중학교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체고에 가려고 했다가 좌절되었고, 평생 운동을 하며 산다. 어제 만나 한 번 보자며 여기저기 만져보니 말랑말랑한 근육이 아니라, 온몸이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오랜 실행력이 만든 결과물이다. 몸과 마음이 바위처럼 단단하니 무엇을 해도 한치의 망설임없이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경쾌하고 재미있다. 자주 만나 재미있는 이야기 나누며 이것저것 배워야겠다. 인생은 무릎걸음으로라도 앞으로 조금씩 나가는 것이다. 제 자리에서 연기 같은 생각만 피워내는 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그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삶이 변하는 기분이다. 백 번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낫다는 걸 몸으로 증명하는 삶.



매거진의 이전글 햄버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