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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필 May 31. 2022

햄버거


1998년 어느 가을날 헝가리에서 밤 기차를 탔다. 맞은 편 좌석의 22살 미국 학생 톰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차는 아침 7시에 프라하에 도착했다. 친구가 된 톰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얀 후스 광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도시는 아직 잠을 자는 듯했다. 광장에는 청소하는 사람 몇 명, 청소 차 한 대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광장 한가운데 얀 후스 동상 아래 계단 벤치에 우리 둘은 앉았다. 톰이 내게 말했다. "배고프네... 근처에 음식을 파는 곳이 있는 지 한 번 둘러보고 올게!" 나 역시 지치고 배가 고팠다. 배낭을 지고 함께 식당을 찾으러 가는 것보다 한 사람이 가볍게 도시를 둘러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톰이 두고 간 배낭을 바라보며 그를 기다렸다.


한 참 뒤, 톰이 기쁜 얼굴로 돌아왔다. 맛있게 보이는 햄버거 가게를 발견했다면서 옆에 앉아 사 온 것을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햄버거 1개, 음료수 1개였다. 딱 자기 먹을 것만 사 온 것이었다. 난 얼어붙는 듯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자기 먹을 것만 사 오는 것인가? 최소한 사러 가기 전에 내 것도 사다 줄 건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 돈으로 쓰기 싫으면 사다 줄 테니 돈을 달리고 하던지, 아니면 내 것까지 사고 나서 내게 돈을 달라고 하던지...'


옆에서 게걸스럽게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해맑게 나를 쳐다보는 녀석을 보니, 저게 인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미국이 개인주의 문화라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어제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스웨덴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 오래전 프라하에서의 내 이야기가 생각났다. 스웨덴 친구 이야기란, 한 한국 학생이 스웨덴 친구 집에 놀러 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밥때가 되었단다. 친구 엄마가 밥 먹으라고 했단다. 스웨덴 친구는 밥 먹고 오겠다고 하며 가버리고, 한국 친구는 빈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고 한다. 배부른 사람에게도 조금이라도 같이 먹자고 말하는 한국 정서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문화적 충격에 관한 글이었다. 스웨덴 사람들 다 그렇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문화적 맥락이 있다 등등의 여러 이야기가 분분했다.


오래전에 나도 비슷한 충격적인 경험을 했고, 20년 넘게 그 일에 대해 생각해 온 결론은 이렇다.


1.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시간을 되돌려 1998년 가을 아침 얀 후스 광장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음식 파는 곳을 찾아보겠다며 일어서는 톰을 향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도 배가 고파, 음식 파는 곳 발견하면 내 것도 좀 사다 줘, 돈 있어?" 


2. 상대에 대한 자기중심적 생각이나 기대는 잘못이다.


내가 속한 집단이나, 나의 세계에서는 이게 상식이니까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금물이다. 일터와 같은 일상적 관계, 가족 같은 친밀한 관계도 마찬가지다.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아직 서툴다. 계속 연습해야 한다. 


스웨덴 친구 집에 놀러 간 한국인도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알았어... 근데, 잠깐, 나도 배가 고픈데, 어떻게 하지? 같이 먹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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