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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필 Jun 03. 2024

대나무울타리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는 것과 진짜로 아는 것은 차이가 있다. 지난 주에 속담의 깊고 넓은 뜻을 알게 되었다.


지난 겨울에 달집에 두려고 1인용 쇼파를 당근에서 샀다. 실제로 보니 너무 컸다. 그래도 낑낑거리며 일단 실어왔다. 쇼파는 공간에 맞지 않았다. 지난 주에 쇼파를 다시 되팔았다. 사는 사람은 용달차를 보내왔다. 주차장까지 크고 무거운 쇼파를 혼자서 옮기느라 힘이 많이 들었다. 용달차가 도착했고, 기사님은 혼자서 실을 수 있으니 가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쇼파가 무거우니 같이 실어 올리자고 했다. 준비를 하는 동안 잠시 기다렸고 마주보고 쇼파를 들어 올렸다. 깜짝 놀랐다. 쇼파가 종이처럼 가벼웠기 때문이다. 혼자서 들때는 분명 천근만근이었는데, 둘이서 드니 종이로 만든 쇼파 같았다.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무게였다. 쇼파 무게가 50킬로라면 둘이서 들면 25킬로그램씩의 무게를 느껴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무게는 5킬로로 되지 않는 듯, 무게감이 전혀 없었다. 신기했다. 쇼파가 무겁다고 말한 내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았다. 머쓱해져서 “같이 드니까 솜털처럼 가볍네요”라고 말하니 “원래 그래요”라고 기사님이 말했다.


주문한 대나무울타리가 중국에서 한 달만에 도착했다. 지름 3센티 정도의 가는 대나무이지만 한 덩어리 무게가 50킬로 정도 되고 길이가 2미터라서 펼쳐 놓으면 혼자서는 뜻대로 옮기기 어려웠다. 정원에는 다쳐서는 안되는 식물들이 있어 조심스러웠다. 울타리를 펼쳐 놓으면 흙과 구조물에 걸려서 한쪽 끝을 아무리 잡아 당겨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높이 180센티, 길이 2미터의 대나무 울타리를 혼자서 원하는 자리에 착착 옮길 수 있는 방법을 도무지 찾지 못했다. 여러번 시도끝에 포기했다.


서울 사는 친구가 달집에 구경을 왔길래, 온 김에 대나무 울타리 설치를 좀 도와 달라고 했다. 둘이서 마주보고 울타리를 설치하는데 또 기적이 일어났다. 너무나 쉽게 착착 울타리가 설치되었다. 둘이 힘을 합치면 100킬로그램을 물건을 들기 위해 각자 50킬로그램의 무게만 감당하면 될거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1분에 혼자서 나사를 100개 박는다면 둘이서 하면 1분에 200개를 박을 수 있다거나 50개씩만 박으면 된다는 개념으로 협업을 이해하면 안될 것 같다. 협업은 물리법칙이나 단순한 논리를 초월한다.


노동 속에 시간의 경과를 담는다는 개념인 블록체인 기술처럼, 저 대나무울타리를 볼 때마다 도움을 준 고마운 친구가 생각나는 것은 덤이다. 아니 덤이 아니라, 그게 일의 본질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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