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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Jul 28. 2023

학력과 평가

우선 학력의 개념을 살펴보자. 학력은 다양한 구성 요소를 포괄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동일한 구성 요소에 대한 해석과 강조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단일하게 정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일례로 최근의 교육 패러다임에서는 과거와 달리 단순한 지식에 대한 암기 능력만을 학력으로 보지 않고 행위 주체성, 학습 전략의 수립 및 실행, 정서 지능과 같은 요소들을 학력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또한 학력을 구성하는 시간성의 문제도 있다. 학력은 성적이나 졸업과 같은 즉각적이거나 단기적인 결과 또는 사건이 아니라 학령기 전체에 걸쳐서 학생들이 형성하는 학습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이러한 것을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사회에 대한 기여과 같은 장기적인 과정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사회 정서적 능력의 함양이다. 이처럼 학력을 구성하는 요소와 복잡성과 유동성은 학력을 정의하기 어렵게 한다. 


다음으로 학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고부담의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서느 행위 주체성의 형성, 사회 정서적 능력, 의사소통 역량, 협력적 사고 등과 같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의 형성 여부는 포착할 수 없다. 그동안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필 평가 이외에 수행평가와 같은 대안적 평가가 도입되었고 성취 평가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평가 집착인 한국에서는 이러한 대안적 평가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곤 하여 자리매김하기가 쉽지 않다.


 - 정용주,  인권은 학력 너머에 있다, 오늘의 교육



평가가 전부, 혹은 매우매우 중요하다 여기는 생각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범인을 찾아보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평가인가? 평가의 목적은 평가를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평가는 교육이 얼마나 제대로 되었는지를 확인해서 교육의 효용성을 측정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평가의 목적은 교육을 피드백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평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육을 평가하는 것이지,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평가에 집착하고, 평가에 매몰되고, 평가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범인을 찾아보자. 범인은 평가를 하는 주체다. 즉 교육 주체가 1차 범인이다. 평가 주체자, 평가자는 평가를 통해 자신의 교육을 돌아보고 더욱 교육을 잘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마침표라 여긴다. 평가로 인해 교육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가로 인해 교육이 시작된다. 평가는 교육의 출발점이다. 


교육하는 사람은 평가를 마케팅한다. 자신의 교육을 받으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마케팅한다. 평가는 교육을 얼마나 훌륭하게 잘 받았는지를 측정하는 객관화된 도구라 믿고 싶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 스스로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비즈니스, 그들의 일에 평가를 도구 삼아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만들고 싶다. 사교육과 공교육 모두 똑같다. 학력 신장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다양한 학생들의 개성을 작은 박스 안에 구겨 넣고 있다. 


학생들은 평가의 희생양이 되어서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인생이 곧 나락으로 빠질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두려움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으면 인간은 한층 성장하지만 두려움에 깔려버리면 무기력해진다. 교실의 아이들 절반이 엎드려 자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더욱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에너지를 보충하려는 것과 지속된 평가에 짓눌려 더 이상의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평가가 없는 학교 밖으로 빨리 탈출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낙인처럼 끝없이 자신을 향해 이뤄지는 숱한 평가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그것이 평가 전에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지원서를 내었으나 서류전형에서 탈락하고, 면접에서 탈락하는 것도 자신에 대한 평가다. 그때마다 자괴감, 좌절감을 느끼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삶을 포기할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인가? 자신을 향해 행해지는 인사고과, 사회적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무조건 절대적으로 믿고 받아들어야 하나? 무조건 부정할 것인가? 평가는 오만과 좌절의 씨앗이다. 평가를 통해 오만해질 것인가? 좌절한 인간이 될 것인가? 


평가는 상대적이라 2명 이상만 되면 좌절과 성취가 공존한다. 어떤 이는 좌절감을 느끼고 어떤 이는 성취감을 느낀다. 성취감을 통해 역지사지, 배려, 위로, 겸손을 배워야 하고, 좌절감을 통해 성찰, 배움, 반성, 새로운 발견, 인내심, 끈기, 연습하는 근육 등을 키워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성을 갖추는 일이다. 평가를 무시하고, 평가를 공격하고, 평가에 매몰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평가를 도구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걷다가 넘어졌을 때, 젓가락질을 하다가 자꾸만 실패할 때, 그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 웃을 때, 기분나빠하면 젓가락을 집어 던지고는 다시는 젓가락질을 하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는 아이가 될 수도 있고, 함께 웃으며 이거 재미있네라고 생각하며 또 해보고 또 해보는 재미에 푹 빠지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재미와 번거로움은 한끝 차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해야 할 일,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늘어난다. 우리는 대체로 그것들을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일상과 직업의 영역, 관계의 영역에서 할 일은 태산같이 쌓인다.  3일 동안 손대지 못한 설거지, 어질러진 방처럼 어느 순간 정신 차리면 할 일이 샴푸거품처럼 뽀글거린다.  


평가를 통해 두 가지 간극을 깨달아야 한다. 학습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교육 과정에서 목표로 하는 학습 능력과 현 상태의 사이의 간극을 파악해 무엇을 메워야 간극을 줄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하나. 또 하나는 실질적 학습 능력과 평가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을 깨달아야 한다. 우주 공간처럼 공허하고 무의미한 그 간극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하고 채워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텅 빈 공간을 재미로 채워 삶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나만의 경기장, 나만의 작업 공간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 공간에서 자신만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지치지 않고 해나갈 때 우리는 보람, 성취, 존재감을 느낀다. 그것이 교육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학습 능력이다. 


교육의 목적은 평가를 통한 줄 세우기가 아니다. 다양한 학생들을 획일적 평가로 일렬로 줄을 세워 평생 동안 자신의 위치에서 꼼짝 못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목적은 평생의 삶에 필요한 학습 능력을 스스로 발견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대통령도, 말단 공무원도, 기업의 경영자도, 신입사원도, 초보 부모도, 육아 전문가도, 갓 태어난 아이도, 곧 죽을 노인도, 모두 학습 능력이 필요하다. 평생에 걸쳐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공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교육은 계속 추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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