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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Jun 24. 2023

입사 대기자

참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밤 9시가 다 되었다. 꿈을 꿨다. 옛날 회사 다닐 때의 팀장이 나를 찾아오는 꿈이었다. 내게 사과하러 왔단다. 난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호통을 쳐서 보냈다. 그리고는 사과를 받아들이고 화해를 했어야했나?라는 후회를 하며 꿈을 깼다. 


잠결에 그때 생각을 했다. 회사원일 때 가장 후회되는 일이었다. 


한 참 채용을 하던 시절, 그해에 짠 인력운영 계획에 맞춰 신입사원을 투입하기 위해 힘들게 채용을 완료했고, 월별로 투입 계획을 완료했다.(일년에 천 명 전후 부서배치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 해는 1,200명 정도 채용한 해인 것 같다.) 더 많이 뽑기 위해 학교 단위로 뽑았다. 학교 단위로 채용하면 일이 줄어든다. 학교에 공문을 보내면 한 방에 해결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연락해 주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채용하면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연락해야 한다. 그만큼 잔 일이 많다.


11월쯤 학교에 입사 안내 공문을 보냈다. 입사일이 11월 말인가, 12월 초인가 그랬다. 그런데 꿈에 나온 그 팀장이 나를 불렀다. 입사를 내년으로 연기하라고 했다. 왜냐고 묻자. 연말에 성과급이 나가는데, 성과금 지급 기준이 12월 재직자고, 곧 입사할 그 신입사원들은 정액으로 30만원씩 성과급을 받는다고 했다. 그 돈이 아껴야 하니까 입사를 내년으로 연기하라고 했다. 12월 입사 대상자가 80명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공장에 깔린 수백대 장비 평균 한 대 가격이 20억 정도였다. 부품 하나 가격인 2천만원 남짓 돈을 아끼려고 혈안이 된 그 팀장의 판단이 이해되지 않았다. 한 해에 몇 조씩 매출을 올리던 회사였다.


팀장에게 말했다. 그러면 안 된다 했다. 현업에서도 신입사원을 기다리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 말했다. 돈 몇 푼 아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했다. 신입사원들은 입사하자마자 성과급을 받았다며 가족, 친구들에게 자랑할텐데, 그러면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갈텐데, 그런 무형의 가치들은 생각하지 않냐고? 그런 가치들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팀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입사 연기 공문을 보냈고, 학생들은 기다리다 못해 다른 회사로 갔고, 이듬해가 되자 채용할 사람들의 씨가 말랐고, 몇 백에서 몇 천의 성과금을 챙긴 사원들까지 퇴직하자, 증원과 충원(퇴직충원)을 위해 5월까지 온갖 고생을 했다. 


그 팀장은 그런 식으로 최고 경영자에게 자신이 로열티를 가지고 일을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국 임원이 되었고, 그 인간 꼴 보기 싫어서 난 퇴직했다. 퇴직할 때 임원실로 부르더니, 귀한 선물이라며 차를 내게 주었다. 친한 직장 동료와 남쪽으로 퇴직 여행을 갔고, 섬진강에 그가 준 차를 흘려 보냈다. 골치 아팠던 지난 일들을 다 흘려 보내고 새로 시작하려는 마음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20년쯤 지난 일인데, 오늘 꿈을 꾼 것이다. 잠결에 누워 생각해 보았다. 그때 내가 잘못했다. 끝까지, 정말 끝까지, 따지고, 묻고, 문제제기를 하며 설득했어야 했다. 안되면 CEO에게 직접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렇게 일했어야 했다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내 생각이 옳은 걸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 때 그 입사 대기자들을 위한 일이다.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현업 부서와 그 학생들. 그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했어야 했다. 어떤 학생들은 어긴 약속 때문에 인생이 달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어떤 친구들은 더 잘 되었을 수도, 어떤 친구들은 그때 입사를 하지 못해 삶이 힘들어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후회가 밀려 온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찌질하고 가식적이지만 카리스마를 표출하려 노력했던 그 인사팀장 하나를 어쩌지 못해 그 앞에서 피식 주저앉은 내가 부끄럽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대기업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순진한 입사대기자들을 기어코 입사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어짜피 관둘 거, 퇴직을 각오하고 공적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일할 것이다.


그때의 생각과 행동, 지금의 생각과 행동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무의식 때문에 그런 꿈을 꿨나 보다.   


학생들에게 일이 무엇인지, 왜 일하는지, 일을 일답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은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두 꿈이 나온다. 

한 꿈에서는 시키는대로 일하는 것이 일하는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으로 출근하는 젊은 청년이 오직 자신의 이해가 우선인 팀장과 만나 괴로워한다.

한 꿈에서는 세월이 흘러 임원에서 동네 아저씨가 된 옛날의 그 팀장과 만나는 꿈이다.


현실에서 그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하나는 분명히 말해줄 수 있다.

긴 세월 동안 알아낸 일의 목적과 방법이다.

이제 그 정도는 확실히 아니까, 그 팀장도 꿈에 날 찾아오나 보다.


젊은 날의 후회를 품고, 학생들에게 말해야겠다.

일의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더 정직하게 말하면,

일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도 모르고 일에 뛰어든 

어리버리한 젊은 날의 내게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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