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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필 Jul 08. 2024

반려동물 장례식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마당에 키울 강아지를 데리러 간 적이 있다.

2014년 2월의 일이다. 태어난지 60일이 지난 강아지는 첫눈에 우리가 원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흰색 진돗개 강아지는 영양 상태도 좋지 않고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그냥 나오려다 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할텐데, 우리가 저 애를 선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텐데..

누구에게도 입양되지 않으면 개농장 같은 곳으로 흘러가게 되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키울 개를 데리러 갔으니 그냥 데리고 왔다.

집에 데리고 온 강아지는 사람을 피했다. 틈 있는 곳에 꼭꼭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뭔가 트라우마가 있는 아이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좋아졌다. 제법 뛰어 놀기도 하고, 낯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이 공간이 자신에게 좋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았다.

비실비실하던 아기 백구는 무럭무럭 자라 씩씩하고 늠름한 진돗개가 되었다.

100평 넘는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다녔고, 가족들은 열심히 마당의 똥을 치웠다.

백구는 10년 넘는 세월 동안 중요한 가족이 되었다.

지난 주에 백구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서 확인해 보니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수의사가 왕진을 왔고 어렵겠다는 말을 전했다.

3일 뒤 아침에 백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반려동물 장례를 하는 곳에 연락을 해서 백구를 수의에 싸서 데려갔다.

장례식장의 스텝들은 미국 정부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군인을 대하듯 깊은 예의를 다해 죽은 백구를 대했다.

정성을 다해 염을 했고, 화장하는 장치에 넣을 때에도 90도 인사를 했다.

나는 유리 너머에서 불가마에 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얼마 뒤, 나무 상자에 넣은 백구의 유골을 받았다.

장례비 결제를 하고 유골을 차에 싣고 백구 삶의 터전이었던 집마당으로 왔다.

참죽나무 아래에 땅을 파서 유골을 묻고, 돌을 올려 놓았다.

이로서 한 생명이 살다 갔다.

반려동물 장례 과정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동물의 죽음도 인간의 죽음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장례를 치르는 과정이 사람과 똑같았다.

화장이 끝나길 기다리며 자신 반려 동물의 죽음에 통곡하는 상주, 소리 없이 흐느끼는 상주들을 보았다.

나 아닌 생명,

인간 아닌 생명의 죽음을 예전과 다르게 받아들이는 세상이다.

반려동물의 삶과 죽음은 인간과 닮아가며 우리 일상의 한 복판으로 들어오고있고,

치킨, 스테이크, 삼겹살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축산동물의 삶과 죽음은 점점 우리 삶과 멀어지고 있다.

이 극단적 양극화의 모순 속에서 뭔가를 발견할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오랜 물음에 대한 힌트가 될 지 모르겠다.

P.S : 3시간 넘는 시간 동안 반려 동물 장례식장에 머물면서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하지만, 결제를 하고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는 순간 눈물을 흘렸다.

          반려동물을 보낸 슬픔보다 자신과 상관없는 한 생명에 대해 시종일관 애도하며

          정성을 다해 땀흘리며 장례를 치뤄준 사람, 그 담당 스텝에 대한 감사와 감동의

          눈물이었던 같다.

          감정이 복받쳐 악수를 청하며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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