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8시 30분경 지하철 광안역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었다.
맞은 편에서 한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잠시만 도와 줄 수 있겠어요?”
할머니가 서 있는 곳을 보았다.
널찍한 손수레 위에 폐지 등이 담긴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80리터 정도로 보이는 오래된 냉장고가 하나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그 냉장고를 수레 위 플라스틱 상자 위에 올려 놓으려고 애쓰다가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 대답이 튀어 나왔다.
“제가 허리가 안좋아서요..”
그런데 몸은 말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쪽으로 다가가 냉장고를 잡아 무게를 가늠했다.
그건 본능에 가까웠다. 부정적 말을 내뱉은 뇌도 태도를 바꾸었다.
주위 지형지물을 살펴보면 어떻게 하면 힘을 들이지 않고, 요령으로 저 냉장고를 수레 위에 올릴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지렛대의 원리.
바로 옆에 60센티 높이의 화단 경계석이 있었다.
냉장고를 앞뒤로 끄덕여 모서리를 이용해 경계석 옆으로 이동시켰다.
앞뒤로 왕복운동을 하며 관성의 힘을 키워 경계석 꼭대기를 지렛대 삼아 냉장고를 화단 경계석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수레를 냉장고 아래에 놓고, 냉장고를 밀어내렸다.
허리의 힘을 거의 쓰지 않고 80리터 냉장고를 수레에 올렸다.
할머니는 환호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토록 감동과 기쁨의 인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인생의 숙원 문제가 풀린 듯한 할머니의 얼굴에는 온 삶을 담은듯한 고마움이 넘쳤다.
할머니는 두 팔을 벌리더니 나를 안았다.
나도 엉겹결에 할머니를 안았다.
찰나였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보다 더한 성취와 감동을 느꼈다.
할머니는 쇠약한 목소리에 온 힘을 담아 돌아서는 내게 외쳤다.
3번이나 외쳤다.
“정말 복 많이 받을 거에요!!”
나는 알았다. 그 말은 평생의 삶을 건 세상을 향한 외침이라는 걸.
지하철로 걸어가며,
할머니의 예언처럼 곧 복 많이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이미 복을 받고 있다는 알았다.
어제 있었던 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고 기분이 좋으니까
이게 복이 아니면 뭘까?
책방에 작은 냉장고를 하나 마련해야겠다.
그 냉장고를 매일 바라보며 어제 일을 평생 마음에 담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