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예민하다. 예민함의 시작은 감각이다. 예민함이란 인간보다 냄새를 잘 맡는 개처럼 감각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감각이 생각으로 연결되면 갈래길을 만난다. 창발성 혹은 신경증이다.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낯선 냄새를 맡아 그 정체를 기어코 찾아내는 개의 후각기관처럼 예민함이 작동하면 삶에 도움되는 창발성의 기원이 된다. 하지만 온갖 냄새에 정신이 팔려 감각에 매몰되면 일상이 무너지는 신경증이 된다. 예민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감각을 생각과 잘 연결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감각에 매몰되어 허상 속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예민한 사람은 창의적 상상력 혹은 생활의 발견으로 연결되는 감각 능력을 키워야 한다. 예민한 감각을 무시하고 죽여나갈 것이 아니라 감각을 의미 있는 생각과 연결지을 필요가 있다. 예민한 사람은 아무리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도 허사가 된다. 감각은 타고난 골격의 특징처럼 바꾸기 힘들다. 스스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지만 이 타고난 예민함과 연결된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을 보고 판단하는 일이다. 누구나 직업병이 있듯 나도 그렇다. 가능한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감각은 언제나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각세포를 자극하는 세상을 떠도는 온갖 냄새에 반응하듯 낯선 사람을 보면 특정한 느낌을 받는다. 어쩔 수 없다.
육아 전문가 오은영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 마음을 담아 그의 영상을 본 적도 없고 어떤 사람인지 정보를 찾아본 적도 없다. 물론 스치듯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런 무지한 내가 최근 오은영의 영상을 보았다. 화면에 비춰진 육아 박사의 표정이 묘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그 얼굴이 기다렸다는 듯 떠오를 정도로 강렬했다. 잠자는 동안 그 얼굴이 무의식에 뭔가를 계속 얘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 예민한 감각이 총동원되어 그 묘한 얼굴을 해석한다. 예민한 감각과 생각이 연결되었다. 그 해석의 결과를 기록한다.
오은영의 표정은 자신만만함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에 대해서 탁월한 설명과 처방을 내릴 수 있다는 자신만만함이었다. 적어도 방송에 내비친 모습을 그랬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오은영이라는 브랜도 인지도와 시청률 때문에 그런 자신만만함을 인위적으로 강조하는 것인지와 같은 원인은 알 수 없다. 얼굴에 담긴 결과물이 그랬다. 그냥 자신만만함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은 틀릴 수 없다는 신념이 담긴 온화한 미소. 다 안다는 듯한 미소는 트래드 마크다. 오은영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육아 전문가다. 어떤 아이도, 어떤 부모도 문제의 원인을 찾아주고 명쾌한 처방을 내려준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모든 육아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자기확신과 유명세에 힘입은 타자확신이 화학적으로 반응한 결과물이 내가 느꼈던 묘한 표정을 만든 것 같다. 미소띤 자기확신의 표정이 낯익다. 고민을 해결해 준다는 종교계, 명리학계 멘토들의 표정과 닮았다. 그들을 유명하게 만드는 건 무엇이든 해결한다는 소문이다. 어떤 문제든 해결해준다는 것은 그들의 판단과 처방이 언제나 옳다는 뜻이다.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그들의 명성에 금이 가고 권위는 추락한다. 절대 틀리지 않는 완전 무결함으로 쌓은 명성을 유지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완벽함으로 유지하고 더욱 더 완벽해져야 한다. 평범한 인간들은 그렇게 살기 힘들다.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은 그 무결함의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부류는 두 가지다. 완벽한 가식의 실현 또는 스스로 완벽하다는 신념에 빠지는 것이다.
가치관에 기반한 태도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과학적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과학의 힘으로 인류는 엄청난 번영을 이루었다. 명암도 있지만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낸 과학의 기여는 엄청나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 혹은 과학적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인간 문명과 일상 삶의 은인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과학적 태도에 의해 발전한다. 과학적 태도란 무엇인가? 끝없이 의심하는 태도다. 특정 현상, 특정 생각, 특정 가설, 특정 이론의 완전 무결성을 의심하며 아직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끝없이 찾아가려는 태도다. 의심해선 안되는 완전 무결성이 지배하는 신의 영역으로부터 탈출한 역사가 근대 과학 발전의 역사다. 과학은 무결함의 거부다. 과학과 기술이 자본과 손잡아 세상을 상업적으로 급변시키는 현상이 우려되지만 나는 과학이 좋다. 과학이 좋은 이유는 끝없이 의심하는 과학적 태도 때문이다. 의심은 삶의 등불이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저들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삶이란 나와 타자를 의심하며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더 나은 삶이 되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의심없이 맹목적으로 믿으면 녹슨다. 정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권력이 다수를 위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의심하며 모니터링해야 한다. 한 사람의 삶도, 국가나 지구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내 삶은 문제가 없는지, 우리 사회는 문제가 없는지, 이 세상은 문제가 없는지 의심하며 살펴봐야 한다. 그냥 잘 되겠지, 저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태도는 무책임함이다. 세상도 인간도 무결하지 않다. 그 어떤 이론도, 그 어떤 가치관도, 그 어떤 학문도, 그 어떤 전문성도 완전무결하지 않다. 전문성은 완전무결함이 아니라, 자기 영역에 대한 끝없는 의심으로 조금씩 나아지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전문성이 완전무결함을 지향하면 신의 영역, 혹은 사이비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완전무결성은 과학적 태도의 반대말이다.
나는 오은영이 과학적 태도를 갖춘 ‘인간’이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누구보다 육아에 대해 잘 알고, 그 어떤 누구보다 육아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도 해결하기 어렵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런 문제를 해결해가는 진실된 과정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오은영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오은영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오은영이 나오는 방송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시청률 때문에 재미있고, 자극적이고, 평범하지 않은 사례를 극단적으로 연출하며 그때 그때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감, 감동, 성장을 느낀 시청자가 어떤 문제도 해결하는 오은영의 무결성 권위에 기반한 팬덤을 더욱 크게 만드는 쇼 프로그램이 방송의 목적이 아니길 바란다. 오은영의 권위와 유명세가 방송사의 재정상태를 결정하는 운명 공동체가 되지 않길 바란다. 오해일지도 모르겠지만, 오은영의 온화한 미소 속에 담긴 자신만만함이 만개한 표정이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이 오해였으면 좋겠다.
육아에 시달리며, 육아 때문에 절망과 희망을 오가는 한국의 수많은 부모들에게 오은영은 가뭄의 단비다. 오은영의 말과 글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한 귀한 존재다. 그런 귀한 사람이 시청률 때문에 신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은영이 과학적 태도를 보여주는 인간적인 사람임을 보여주는 방송이 많아지면 좋겠다. 모든 문제를 자신만만하게 해결하는 완전무결한 전문성을 갖춘 오은영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의 육아 전문가이지만, 때로는 문제의 원인과 답을 찾지 못해 깊은 고민을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어려운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삶은 수많은 변수들이 얽히고설켜 설명이 불가능하다. 모든 인간의 모든 문제를 명쾌하게 진단하고 처방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사이비 혹은 정신 승리 자체가 목적일 것이다. 육아는 삶보다 더 어렵다. 두 사람, 세 사람 이상의 삶이 뒤엉켜 만들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은영이 어떤 삶의 문제도 해결한다는 자신만만한 자기개발 강사나 종교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케이스, 수많은 변수 속에서 겸손해지면 좋겠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배우고 함께 고민하고 깨닫고 성장해가는 오은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시청자들도 함께 진정으로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육아 전문가들과도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여주면 좋겠다. 인간 오은영이 이 세상에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을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자신만만한 권위가 자기성찰적 배움으로 연결되면 새 지평이 열린다. 그때 새로운 오은영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그런 변화를 보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오은영의 찐팬이 될 것 같다. 이 모든 걱정과 생각이 내 예민함이 빚어낸 뇌피셜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