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결과 해석
Episode 12 (분석결과 해석)
이것 하나만 해결되면 될 것 같은데...
“상섭아~~”
“내 분석결과 좀 봐줘라”
“직장과 주거지간의 거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인데... 소득, 연령, 공원까지의 거리, 커뮤니티 환경 등은 직주간의 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오는데, 버스정류장의 접근성이 영향이 없는 걸로 계속 나와서 돌아버리겠다.”
“사람들이 자가용만 타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버스를 타고 직장에 가는 사람이 많아서 집에서 버스정류장에 가까울수록 대중교통을 활용하기 쉬워서 직장을 좀 더 멀리 얻어도 되는 거 아닌가?”
상섭이는 결과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글쎄? 네 말이 맞는 것도 같은데...”
“일단 네가 사는 소주 한 병 마시면서 머리 맞대고 생각해보자. 형님이 뭔가 알 듯도 하다.”
상섭이는 뭔가를 알겠다는 듯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술 마시러 가기를 청했다.
“술은 사는데 해결책이 안 나오면 술값 안 낸다!~”
으름장을 놓으면서 상섭이 뒤를 따라나섰다.
술집에만 오면 세상 시름을 내려놓게 되는...
교문을 지나 어두컴컴한 지하에 있는 단골 술집에 들어가니 주인아주머니가 계셔서 반갑게 말을 건넨다.
“이모~ 안녕하세요~~?”
“학생~오랜만에 오네?”
“다음 학기에 졸업하지?”
“내년부터는 우리 단골손님 하나 끊기겠네.”
“에이~이모~졸업을 해야 그만 오죠.”
“그럼, 학생 졸업 못하게 빌어야 하나? ㅋㅋ”
주인아주머니는 밉지 않게 속을 긁는다.
소주가 먼저 나와 빈속에 잔을 부딪치며 한잔 원샷을 했다.
“크~~ 그래도 이놈의 이슬이 없었으면 어떻게 지금까지 벼텨왔을꼬?”
논문 때문에 왔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니, 김치찌개와 파전이 들어오고, 벌써 한 병이 비었다. 새로 한 병을 시키려고 ‘이모~’하고 부르다가 문득,
“참! 아까 얘기하던 ‘버스정류장’.”
“집에서 직장까지 거리에 진짜 미치는 영향이 없을까?”
무죄추정의 원칙?
상섭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왜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
“그건, 아까 말한 대로 버스를 이용하기 편한 곳에 집이 있으면 직장은 좀 멀어도 되지 않냐?”
“ㅋㅋ 그러니 니가 아직 논문 게재를 못한 거야.”
“모든 건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생각해야지~어떻게 무조건 ‘버스정류장’ 너는 유죄야! 그렇게 단정할 수 있냐”
“생각을 해봐~”
“사람들이 집을 구하는 데 있어 우선적으로 집이 비싼지 안 비싼지부터 살펴보지 않냐?”
“소득 수준에 따라 돈이 없을수록 직장과 멀어도 할 수 없이 사는 거고.”
“만약, 자녀가 있거나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면, 좋아하는 환경을 찾아 직장과는 좀 더 멀어도, 가까운 것을 희생하고 그런 위치에 집을 얻을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자녀가 있으면 교육시설이 중요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면 건강을 위한 공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런데, ‘버스정류장’이 직주간의 거리에 영향이 없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요인들에 비해 직주간의 거리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수 있다는 거지.”
“한마디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고, 사람들이 집을 구하러 다닐 때는 교통수단 접근성에 대해서도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그게 내가 사는 집의 위치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못한다는 거지.”
“아니면, 사람들은 이사 오기 전부터 기본적으로 그들이 출퇴근하는 방식에 대해 결정을 하고 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 사람들이 버스 대신에 전철이나 자가용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면 버스정류장의 위치가 중요하지 않을 거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면, 그걸 이미 고려해서 이사를 온다는 거지.”
“다시 말해, 이사를 한다는 결정은 직장까지 가는 경로나 교통수단을 감안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직주간의 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니라는 거지.”
“아니면, 서울에서는 버스정류장이 웬만하면 사방팔방 잘 갖춰져 있어서 영향을 못 미치는 것일 수도 있고.”
뭐라고 대꾸하고는 싶은데, 하나하나 얘기가 나름대로 논리가 있어서 반박할 말이 별로 떠오르질 않는다.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모르겠다. 술이나 더 마시고, 내일 생각해봐야겠다.”
“건배~~”
어떠한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대해서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만고의 진리는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맞는지 틀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타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게 중요하고,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하나의 논문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논문의 ‘논(論)’자는 논할 논 자이고, 논문은 하나의 가설을 내 방식대로 검증하는 것이고, 검증이 되면 여러 가지 설(說)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나의 분석결과를 이해하고 “그럴 수 있겠다”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진리다”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아인슈타인도 현대 물리학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지만, 우주가 붕괴하지 않도록 지탱하는 ‘암흑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우주상수’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나 허블이 ‘허블 법칙’을 발표하자 우주상수의 개념을 거둬들이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의 실수다”라고 얘기하며,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1998년에 ‘암흑에너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위의 에피소드만 놓고 볼 때에도, 천체물리학에서 가장 큰 업적을 세운 아인슈타인조차도 논문에서는 이론적으로 검증을 받았지만, 다른 이론이 나오자 자신의 논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했고, 후에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틀리지 않았다고 다시 뒤집어지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결국, 논문은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여 이론을 만드는 것인데, 이론이 되었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맞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종합해서, “분석결과를 해석한다는 것은 펼칠 수 있는 다양한 논리를 전개해서 사람들이 가장 잘 수긍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