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의 젠트리피케이션, 프랜차이즈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쁜 걸까?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사실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가 아니다. 오래되고 낡은 지역에 젠트리 계층(지주계급 또는 신사 계급)들이 들어와 직접 개조를 하거나 수리하여 이주해오면서 기존의 노동자 계급들을 대체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196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 Ruth Glass가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위의 사례에서 젠트리 계층이 직접 개조를 하거나 수리해 이주해오면서 환경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핫플레이스들이 최초로 생겨난 과정 자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난한 예술가들과 재능 있는 젊은 창조가들이 오래되고 낡았지만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모여들고 스스로 환경을 개선해나가면서 창조적인 풍광이 펼쳐졌다는 점에서 말이다.
쇠퇴되는 지역은 무언가 재생을 위한 씨앗이 필요한 것이고, 이러한 재생을 위한 씨앗은 척박한 환경을 개척해나가는 ‘창조적 계급’이라고 볼 수 있다. ‘창조적 계급’에 대한 정의는 모호하더라도 이들이 없다면 더 이상의 지역의 부활은 기대할 수 없다.
노후화된 지역에 대한 개선은 필요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거주민의 교체는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그러나 문제가 일어나는 부분은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이 더 이상의 창조적 활동이 일어날 수 없도록 도시 풍광의 ‘사막화’를 초래할 경우이다.
가로수길의 부흥과 사막화
가로수길은 입지적으로 강남이 최초로 발전하기 시작한 신사동에서 한남대교와 연결된 중심대로 아래의 다소 외진 지역에 위치해 있다. 한강고수부지와 직접 연결되는 지역에 있어 상업적인 용도의 지역이라기보다는 주거입지에 유리한 위치라고 볼 수 있다.
강남지역의 발전은 강북의 주요 지점과 연결되는 한남대교, 반포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등을 따라 결절점에 위치한 지역들의 발전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졌고, 어떤 의미에서 강남 최초의 핫플레이스인 압구정동이 이때 발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남 전체가 부흥하면서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창의적 계층들은 테헤란로 등 시장이 가까운 지역이면서도 한남대교 아래쪽 외진 곳에 자리 잡아 임대료가 주변 상업지역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현재의 가로수길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조그마한 공방이 하나 들어서면, 옆에 자신의 브랜드로 성공하고자 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들어오고, 이들이 좋아하는 카페와 선술집이 들어오는 식이었다. 길이라고 해봤자 겨우 1킬로미터 남짓한 2차선 도로이다.
이러한 창조적 풍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를 사업의 기회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이 좁은 도로변에 몰려들었고, 거리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복잡해지기는 해도 흥과 멋이 살아 있었고, 연예인들과 길거리 캐스팅을 원하는 선남선녀들이 압구정 지역에서 가로수길로 모여들었고, 보다 많은 트렌드 리더,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창의적인 계층들이 모여들면서 그들을 보는 것만 해도 자주 들르고 싶은 동네로 거듭났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부티키피케이션(Boutiquification)이라고 하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값싼 커피를 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고급스럽고 다른 것과 ‘구별 짓는’ 자기만의 것을 원하는 현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안 그래도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던 임대료와 권리금은, 연이은 대규모 패션 브랜드의 입주 공세로 인해 프랜차이즈화 된 가게들에 의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결과적으로 기존의 공방, 개성 있는 패션샵, 선술집들을 대체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가로수길의 ‘사막화’가 시작된 것이다.
대기업의 의류사업 계열사들은 가로수길의 상징성 때문에 기존 임차료의 몇 배를 내고 들어왔고, 건물 주인도 거액의 권리금과 안정적 임대료를 줄 수 있는 대기업을 선호했다. 그렇다 보니 어마어마하게 치솟은 권리금과 임대료를 견뎌낼 수 있는 상점들은, 기업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그 자리가 상징성이 있어 매장을 여는 플래그십 스토어 말고는 없었다. 가로수길이 국내외 대기업의 광고판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가로수길 전면에서 창의적 인재들의 공간과 활동은 씨가 말라버렸고, 세로수길이라고 해서 옆의 골목길들에 조금씩 스며들어가고는 있지만 가난한 예술가, 창작가들이 입주하기에는 턱없이 부담스럽다.
가로수길 대로변 상점이 대규모 프랜차이즈로 교체되면서 국내 디자이너 전시실과 편집숍, 개성 넘치는 보세 가게 등은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프랜차이즈가 발 붙일 수 없는 지속 가능한 젠트리피케이션을 꿈꾸며...
산업혁명시대를 지나면서 지금까지 사람들의 소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생산에서의 변화는 Post-Fordism이다.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하나의 물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던 소품종 대량생산(Fordism)에서 다품종 소량생산(Post-Fordism) 체계의 시대로 변화된 것이다. 그만큼 다양함의 중요성은 현대로 오면서 더더욱 커져가고 있다.
창조경제시대에 있어 가장 주목을 받았던 이태리 볼로냐, 피렌체 등 ‘제3의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비브랜드 장인 중심의 혁신적 네트워크는, 대규모 프랜차이즈 산업의 몰개성, 똑같은 상품의 대규모 생산시스템에 대한 경고를 던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랜차이즈화 된 상품을 파는 상점이 늘어난다는 것은 지역이 개성을 잃는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어디 가도 똑같은 옷을 팔고 똑같은 커피와 음식을 파는데 그 지역이 어떻게 차별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 LA 북서쪽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오하이(Ojai)라는 인구 7,500명의 조그만 도시가 있다. 지구의 에너지가 모인다는 보텍스(Vortex)가 있는 지역으로 영적 기운이 충만하여 서부의 보텍스가 몰려 있는 세도나(Shedona) 등의 도시처럼 종교, 명상, 요가, 작가 등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주류를 이루는 평화로운 도시이다.
2007년 오하이 시의회는 도시 내에 체인점의 입점을 전면 금지하는 조례를 발의하였다. 그 결과, 시내에는 주요소(쉐브론 등)와 은행(BOA, 웰스파고 등) 외엔 체인 상점이 없으며, 이러한 주유소와 은행마저도 규모를 185㎡(56평)로 면적을 제한하였다.
오하이의 상공회의소 대표 스콧 아이커는 “오하이에 스타벅스가 없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하이만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주민들의 경제활동이 거대 자본에 침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조례 개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프랜차이즈는 개인이 장인정신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하고 경제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폭압적 차단이며, 부정적인 의미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발생시키는 원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서울 성동구는 서울숲길과 방송대길, 상원길 등을 지속가능 발전구역으로 지정하고 대형 프랜차이즈 업소의 입점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특색 있는 지역의 발전에 프랜차이즈가 저해요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치를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창조적 계급들이 집적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구별 짓는 공간’, 즉, ‘핫플레이스’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대형 프랜차이즈 자본의 침투를 어떻게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가 아닐까?
우리들이 구별 짓고 싶은 공간에서 프랜차이즈가 사라진, 그리고 창조적 활동에 의한 긍정적 젠트리피케이션이 계속되면서 발전되는, 그러한 지속 가능한 핫플레이스의 탄생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