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5명의 힐링여행 시작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도 비행기를 타는 것은 항상 설레는 경험이다. 공항리무진을 타든 내 차를 타고 가든 간에 공항에 가는 길에서 보이는 전경이 새롭고, 공항에서 보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일상에서 보던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진정한 자유는 여행입니다”라는 모 여행사 광고 멘트와 같이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이 나를 즐겁게 한다.
필자는 “남자 어른들끼리 애들처럼 한번 놀아보자”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어른이(?) 4명을 꼬셔서 이번 여행을 주선했다. 항상 마누라 챙기고 애들 챙기다 보면 어디를 갔다 왔는지 기억도 안 나고, 힐링보다는 피곤함만이 남았던 과거의 책임감 넘치는 여행 패턴에서 벗어나 진짜 40대 남자들만의 힐링여행을 깜찍하게 계획했던 것이다.
공항에 각기 도착한 우리 일행 5명은 밤 10시 10분에 떠나는 제주항공 출국 시간을 감안해 저녁 7시 반까지 오는 걸로 했는데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2명의 어른이들이 6시부터 도착해서 기다린다고 하니, 먼저 수속하고 들어가서 면세점 구경을 하고 있으라고 했다. 나중 도착한 3명이 합류해서 면세점 아이쇼핑을 거쳐 비행기에 탑승했다.
우리 일행은 수속할 때 들고나기 편한 통로 쪽으로 나란히 배정을 부탁해서 통로를 마주 보고 앞뒤 옆으로 자리 잡았다. 필자는 해외출장 등 출국 기회가 많은 직업을 가진 관계로 장시간 비행 동안 화장실에 가거나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편한 통로 측 좌석을 선호하는 편이다.
시차는 1시간에 불과하고 4시간 반의 비교적 짧은 비행이지만, 기내에서 판매하는 7천 원짜리 와인을 5개 주문했다.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의 경우, 비빔밥, 라면 등의 식사나 맥주, 와인, 청량음료 등을 돈을 받고 판매한다. 와인이 7천 원이면 싸다고 생각하고 3개만 주문했는데, 하나에 딱 반잔씩 나온다. “대한항공의 저가항공사인 진에어에서는 삼각김밥, 빵이라도 나온다는데”라고 투덜거리면서 2개를 추가로 시켜서 건배를 하고 남자들끼리의 수다를 이어갔다. 이 글을 읽으면 제주항공도 앞으로 삼각김밥 정도는 제공해주려나? ^^, 저가항공 중에 제일 흑자기업이라던데... ㅋㅋ
ESTA 필요한가?
미국령이기 때문에 ESTA 신청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괌이나 사이판은 필수적으로 ESTA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 뭐, 작성하면, 입국이 조금 빨라진다는 점이 있지만, 굳이 1인당 미화 $14(약 1만 6천 원)를 손해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래도 신청하고 싶다면 http://esta.cbp.dhs.gov/에서 신청해라. 다른 에이전시 사이트가 많은데 여기는 에이전시 수수료 포함 1인당 미화 $87(약 9만 8천 원)을 내야 하니, 반드시 공식 사이트에서 신청하는 것이 답일 듯하다. 기간은 한번 신청하면 2년은 유용하다니 등록번호 등은 잘 보관해라.
비행기 내에서 승무원들이 건네주는 양식을 작성하거나 공항에 비치된 서류를 작성하면 되고, 서류에는 한글이 같이 적혀 있어서 한글을 모르시는 분들이 아니라고 한다면 여권에 나온 영문 이름 발급일 등을 참조해서 차근차근 적어나가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I-94(입국 기록)라는 서류인데, 미국 본토에 입국할 경우에도 항상 따라다니는 서류이며, 여권에 스테이플러로 같이 찍어줄 정도로 분실하면 안 되는(골치 아픈 정도?) 서류이다.
드디어 사이판!!!
수다를 떨다 잠깐 졸았는데 곧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귀가 멍해지고 아픈 것에서 기압이 변화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마침내 사이판 국제공항에 위대한(?) 첫 발을 내디뎠다. 긴 비행시간이 지나고 목적하는 공항에 내리면 왠지 땅바닥에 엎드려 키스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것은 수십 번 이상 해외여행을 다녀온 필자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ESTA를 신청하지 않은 우리들은 창구가 1개에 불과한 긴 줄에 서서 천천히 들어갔다. ESTA를 신청한 사람들을 위한 창구는 3개라서 빨리 나가는 게 순간적으로 부럽기도 했지만, 5명이 신청비용 70달러 아꼈으니 재미있는 액티비티를 즐기자면서 즐거워했다. 여행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드나 보다.
입국장에 들어서니 미리 예약했던 렌터카 회사에서 사이판 원주민인 듯한 한 여성분이 마중 나와 있었다. 한국인들이 주로 렌터카를 예약하는 곳은 상지 렌터카와 아시아 렌터카인데, 우리는 상지 렌터카로 예약했다. 당시 남자들의 로망인 허머(Hummer H2)를 예약하는데 있어 가격은 하루에 150달러(보험 포함)로 다른 차량에 비해 비싸긴 하지만 꼭 타야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상지 렌터카에서 세일 중이라서 예약을 했다. 새벽 공항 픽업 요청이 가능(요즘은 수수료 약간 있다고 함) 하고, 새벽에 출국할 때도 공항에 놔두고 가면 되기 때문에 새벽에 도착해서 곤란을 겪을까 봐 선뜻 사이판 여행이 두려운 분들이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될 듯하다.
깜깜한 새벽에 공항을 나오니 공항 주차장이 동네 주차장 같다. 우리를 마중 나온 분이 약 100~150미터 정도 떨어진 렌털 차량이 세워진 곳으로 안내하면서, 거기서 서류 몇 가지에 사인하라고 해서 사인하고 돈을 계산하니 차량을 건네준다. 우리가 출국할 때도 새벽인데, 차량을 픽업한 자리에 세우고 차 키를 좌석 등에 두고 문을 잠그고 닫아놓으면 회사에서 알아서 픽업한다고 한다. 운전면허증은 국제면허증 없이 우리나라 것만 가져가면 된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여행의 시작
허머의 높고 넓은 좌석에 올라타 시동을 거는 순간 허머 특유의 웅장한 엔진 소리, 대형 공장에서 돌아갈 듯한 에어컨의 바람이 시원하게 우리를 맞아준다. “허머는 역시 남자들의 로망이야”라며 다들 감탄을 한다. 5명이 타도 공간이 남아돈다. 지금은 단종되어 새로운 모델이 안 나온다니 사고 싶어도 못 산다는 게 아쉽다. 하긴, 너무 넓어서 우리나라 도로 사정에 안 맞을 것 같기는 하다.
미리 신청해놓은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예약해 놓은 숙소를 찾아가는데 우리나라의 내비게이션 정도의 성능은 절대 기대하기 어렵고 화면은 작아서 어디로 가는지도 파악이 잘 안 된다. 후 모든 길이 고속도로가 아닌 로컬 도로들이기 때문에 캄캄한 새벽에 찾기는 쉽지 않아서 많이 헤매면서도 기어이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낮에 보니 남쪽에 위치한 공항에서 해변길을 따라서 쭉 올라가기만 하면 가라판 지역에 있는 우리 숙소를 찾을 수 있어 다음에 가면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름대로 특급호텔에서의 호화 여행(?)을 계획했지만, 새벽에 도착한 관계로 5명의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해 우리가 2박을 할 하얏트호텔의 약 1/4 가격에 불과한 Guest House Nana에서 잠시 새벽잠을 청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Guest House Nana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우리 5명에 방 3개와 거실, 부엌, 화장실까지 딸려 있었고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것은 기본이고, 이층인 우리 숙소 앞에 독립된 앞마당까지 있고, 1층에는 스쿠버다이빙과 관련한 여행정보를 제공하고 장비까지 전시, 대여해주고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쿠버다이빙의 성지인 사이판에서는 최고의 숙소 중 하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더구나 다른 숙소에 비해서도 훨씬 가격도 싸니 말이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가라판의 마이크로 비치가 있는 하얏트호텔, 피에스타 호텔과 도 지척이라 차로 5분이면 비치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