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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Jun 26. 2019

[블랙미러5]스미더린: 당신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나요


빠밤빠밤 빠바밥빠밤~아이 러브 유 베이비(I love you baby)


노래 제목과 가수는 몰라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팝송의 한 구절. 바로 <Can’t take my eyes off you>라는 곡의 일부분이다. 유튜브에서는 일명 '박효신 축가'로도 불리는 유명한 곡이다.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달달한 노래를 듣고 있으면 따뜻한 것들이 생각난다. 영화에서 보았을법한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날 따뜻한 온기로 감싸주는 벽난로 같은 것들 말이다. 


블랙 미러 시즌 5 [스미더린] OST  - 1분 24초 지점에 'I love you baby'가 시작된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 노래는 블랙 미러 시즌 5 [스미더린] 에피소드의 엔딩곡으로 사용된다. 이 에피소드는 런던에서 일어나는 인질극에 대한 이야기다. 긴박한 인질극의 엔딩곡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세레나데라니! 크레딧 영상을 따라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왜 이 노래를 엔딩곡으로 사용했을까?’ 오랜 시간 생각을 정리한 끝에 나름의 결론을 냈다. ‘이 에피소드는 인간의 눈을 이야기하고 있구나.’라고. 이 글에서는 블랙 미러 [스미더린]을 통해 첨단 기술이 바꾼 우리의 눈 이야기를 풀어내 보려고 한다.



인간의 눈과 침팬지 눈의 차이


진화생물학자 장대익의 <울트라 소셜>에서는 인간의 눈에는 동물의 눈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소개한다. 인간의 눈은 '공감'과 '사회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장치라는 것이다. 우리의 눈을 보면 크게 동공, 홍채, 공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중 홍채의 바깥 부분을 뜻하는 공막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만든다. 침팬지의 눈을 보면, 동공도 검은색이고 공막도 검은색이다. 반면, 인간의 눈은 동공은 검은색 계열의 어두운 색이고 공막은 흰색이다. 동공과 공막의 뚜렷한 색상의 대조를 통해 인간이 눈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흰 바탕에 얹어진 동공이 무엇을 바라보는 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침팬지 공막의 차이


뚜렷한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는 타인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이를 통해 인간은 사회성을 기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동공의 움직임을 통해 하나의 대상으로 시선을 모을 수 있고, 그에 대한 감정을 읽을 수 있고, 눈을 맞추며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물론, 고릴라나 침팬지 등도 동족의 시선 따라가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흰 공막'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형질이며, 이것이 우리가 사회를 만들고 상호 협력을 촉진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가설(협력적 눈 가설)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데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눈이 된 '좋아요' 버튼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이러한 눈맞춤 없이도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심지어 한 인간이 평생 살면서 맺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SNS 등 수많은 소통 공간이 생겨나고, 주변의 친구들과 이웃을 넘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면대면으로 만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눈을 맞추지 않아도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요' 버튼은 '내가 당신이 보고 느끼는 무언가를 나도 보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우리의 눈맞춤은 시공간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좋아요'의 숫자가 나와 눈을 맞춘 사람의 수이자, 나에게 공감하는 사람의 수이다. 나의 이야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공감해준다는 것은 엄청난 설렘을 선사한다. 


비단 좋아요 버튼만이 아니다. 몇 분 단위로 뒤바뀌는 실시간 검색어, 가장 많이 읽은 기사, 가장 많이 본 영상 등은 눈동자를 움직여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던 우리의 모습과 그 결과를 그대로 반영한다. 아주 먼 옛날, 그리스 사람들이 모여 사회의 문제를 토론하던 아고라가 인터넷 상에서 그대로 재현된다고나 할까. 우리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더 이상 한 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된다. 손가락을 한 번 움직이는 것으로 나만의 작은 방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지구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엄청난 규모의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희열을 가져다준다.



사람들이 전부 핸드폰 화면만 보고 있잖아!


'눈치를 본다'는 말이 있듯이,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일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진보된 기술을 통해 관계 맺기에 드는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이토록 편리하고 효율적인 세상. 그런데 이 세상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블랙 미러 [스미더린]은 이렇게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벌어진 인질극 이야기를 풀어낸다. 장소는 런던 시내, 범인은 차량 공유 업체의 운전사다. 그는 소셜 미디어 회사 [스미더린]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 회사 직원을 차에 태워 납치한다. 목표는 스미더린 설립자 빌리 바우어. 인질에게 총을 들이밀며 사장과 통화하고 싶다고, 당장 연결해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왜 사람들이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보고 있는 거야? 왜! 왜왜! 이것도 결국 중독이잖아. 이게 줄담배랑 다른 게 뭐냐고! 너네는 하늘이 보라색으로 바뀌어도 일주일 만에 알 거야 이 멍청이들아!” 범인은 인질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다. 


차 안에서 경찰에게 둘러쌓인 범인과 인질 ⓒNetflix



사람들이 핸드폰만 본다며 화를 내던 범인은 인질극을 벌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스마트폰에서 자신에게로 이끄는 데 성공한다. 인질이 스미더린 설립자와 전화를 연결하는 동안, 그의 차를 둘러싸고 수많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경찰들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한 순간도 범인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화면은 자동차의 백미러를 통해 범인과 인질의 눈을 계속 보여준다. 범인에게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눈길뿐만이 아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대비해 저격수의 총이 그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범죄의 목적이라면,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더 편리해지고, 더 가까워졌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야?


관계 맺기가 더 편리해지면서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들은 무엇일까? 혹은 사라질 것들은 무엇일까? 즉, 우리의 눈맞춤이 사라지면서 같이 사라진 것들, 이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이 부분을 생각해보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이제는 우리가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가 아닌 기계라는 것을 외치는 것도 같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의 주제곡 역시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사용한 것이 아닐지. 


앞서 언급한 <울트라 소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표정에 둘러싸여 살아가느냐, 이게 공감 능력의 방향을 미묘하게 가른다. 어떤 존재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느냐가 타인에 대한 이해력 증진에 중요한 요인이다." 이 문장을 잘 설명해주는 예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결혼에 적합한 배우자를 논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결혼할 때는 그 사람의 집안을 봐야 해. 그 집이 어떤 분위기인지,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가 정말 중요해." 즉, 어떤 표정을 짓는 사람과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과 어떻게 소통해왔는지가 한 인간의 성격과 공감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그리고 기계를 통해 소통하며 자라온 사람들은, 어떤 공감 능력을 갖게 될까? 위의 예시를 통해 단순히 우리는 점점 더 공감 능력이 떨어져 간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공유할 수 있었던 다채롭고 미묘한 감정과 표정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눈은 마음의 창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이모티콘과 스티커가 아무리 예뻐도, 하트 모양의 '좋아요' 버튼이 귀엽고 편리해도, 눈이 담았던 순간순간 변하는 내 안의 복잡하고 묘한 감정을 다 담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오늘 당신의 눈은 무엇을 향하고 있나요?


앞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할 것이며, 우리의 생활 방식도, 우리도 변할 것이다. 지구에는 사람과 직접 소통해온 사람보다 기계를 통해 소통해온 사람의 비율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만들어낼까?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를 상상해보며, 무엇이 생겨나고 무엇이 사라질지 기대해본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가 남긴 거대한 질문을 생각해본다. "오늘 당신의 눈은 무엇을 향하고 있나요?"


P.S. 이 인질극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에피소드는 사람들이 인질극의 결과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블랙 미러 [스미더린] 에피소드를 통해 직접 확인하면 좋겠다.(링크)





참고 문헌

장대익 <울트라 소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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