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시간 한 시간에 온 정신을 다 뺏기는 것 같은 불편함
점심시간이 되어 11시 반에 oo김밥으로 향하면서 오늘은 말하리라 다짐했다. 오늘도 에어컨 앞 일인석에 앉히면 꼭 이야기하리라.
지하 1층 아케이드에 자리한 좁디좁은 이 분식집은 작은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여놨는데, 그중에도 맨 구석에 에어컨을 마주 보고 붙여놓은 1인석 자리가 하나 있다. 나머지는 다 2인석이고 상황에 따라 띄었다 붙였다 하지만 저 구석 자리는 항상 혼자 온 손님의 몫이다.
유리문을 열었더니 오늘따라 웬일인지 주인아저씨는 없고 아내분과 보조하시는 분 이렇게 둘만 있었는데 손님은 내가 처음이었다. 역시나 예의 그 1인석으로 가볍게 안내하길래 나는 재빨리 이야기했다. 저 자리는 싫다, 차라리 반대편 벽 쪽 2인석 구석에 앉겠다. 내가 제일 먼저 왔고 자리가 이리 많은데 혼자 온 손님이라고 무슨 벽보고 앉아있는 거 같아 싫다고. 아주머니들은 선수를 빼앗긴 데다 강경한 내 태도에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끄덕했지만 점심시간에 손님이 밀리고 어쩌고 웅얼웅얼 거리는 소리는 뒤통수에 남았다. 셋뿐인 그 공간에 기다리고 앉아있기란 불편한 일이었다.
곧이어 다음 손님이 들어왔는데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분이었다. 뜻밖의 나의 반항적 발언으로 주인이 자리 지정에 조금 주저할지도 모를 거란 예상을 뒤엎고, 가차 없이 1인석 자리로 안내받은 손님은 순순히 자리로 이동했다. 주인 입장에서는 먼저 와있는 1인 손님이 단 한 개인 1인석을 거부하면, 두 번째 혼자 온 손님 역시 첫 손님을 가리키며 동일하게 2인석을 요구하는 것이 고비라면 가장 큰 고비일 것인데, 그 관건의 순간을 예상이라도 한 듯 주인아주머니의 망설임 없는 빠른 지시가 먹혀든 것 같았다.
1분도 안되어 한 청년이 들어왔는데 혼자 온 손님이었다. 좀 전의 손님이 앉은 1인석 자리 옆의 조금 나은 2인석 자리를 안내받아 가는 길에 분위기 살피던 그 여자분이 재빨리 엉덩이를 드는가 싶더니 그 옆 2인석으로 쏙 앉아버려, 청년은 마치 처음부터 1인석 자리를 안내받은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조금 이상한 기류가 흘렀지만 청년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앉았고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이어 들어온 손님도 오늘따라 참으로 공교롭게 혼자였는데 이 사람은 또다른 1인석인 출입문 바로 앞자리(동선 때문에 앞에 누굴 앉힐 수 없는 자리로 이정도면 거의 현관에 머리 대고 자는격이라 다름 없다) 에 앉게 되었고, 뒤이은 4인 손님은 따뜻한 안쪽 자리로 안내받았다.
내가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은 실례한다는 한마디 양해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내 팔이 걸치고 있던 옆에 붙은 테이블을 떼어놓았다. 나는 이곳에 앉겠다는 나의 의사가, 주인 나름대로의 효율적 자리 지정방식에 대해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는 범위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이 식당이 꽉 차기 전에 나가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음식을 빨리 꾸역꾸역 밀어 넣다가 체할 지경이었다. 에어컨 앞 1인석 자리에 앉지 않겠다는 것 때문에 정신이 산만하여 점심시간에 보려고 가져간 책은 못 보고 들어오는 손님만 관찰하고 있으니 오히려 내 손해 같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발언으로 그분들도 조금 생각은 하겠지. 혼자 온 손님들의 불편함에 대해, 권리에 대해.
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어려운 편이다. 어떤 것도 다 각자 나름대로의 입장일 뿐이고, 정해진 기준이라는 게 아주 진리처럼 명확한 것이 아닌 이상, '이것이 옳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다. 법에 나온 것, 회사 규정에 나온 그런 명확한 것들 말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디까지 하는 게 맞고 틀리고 하는 이야기 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식당에서 돈을 내고 나는 음식과 자리에 대한 권리를 샀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내 권리는 자리까지인가, 아니면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것까지인가. 자리 선택은 주인의 몫인가, 고객의 몫인가.
손님으로서 나는 제일 처음 도착했으니 가장 좋은 자리에 앉고 싶다. 4인석까지 앉을 생각은 없지만 2인석도 많은데 면벽 수행하는 것 같은 저 자리는 앉기 싫다. 주인은 곧 손님이 들어찰 테고, 혼자 온 누군가를 1인석에 앉혀야 한다. 혼자 온 모두들 2인석에 앉는다고 한다면, 나중에 1인석이 하나 남았을 때 두 명 온 손님은 기다려야 할 것이고 그들은 다른 곳을 찾아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면 주인은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것이 손해인가? 만약 두 명이 기다리고 뒤에 혼자 온 손님이 있다면 혼자 온 손님에게 선택권을 줄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도 거절한다면 기다리면 될 것이다. 가장 안 좋은 자리는 마지막에 소비되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손님들도 처음 온 손님이 좋은 자리에 앉아있는 것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먼저 온 사람이 자리를 먼저 맡는 것은 '질서'와도 같은 것이니까. 그런데 처음 온 손님이 두 번째 손님보다 안 좋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면? 왜 그래야 하는가?
애초에 그 1인석이 혼자 온 손님이 거절하지 않을 만큼 인간적(?)이었다면, 사람에 따라 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편하여 싫다는 사람에게 주인은 거절할 수 있는 것일까? 애초에 그 1인석은 만들지 않았어야 하는 자리에 억지로 만들어진 자리에 가깝다면, 그건 주인의 욕심은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러므로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고 해도 다시 그 자리를 거부할 것이다. 오늘의 결심으로 다음번에는 사람이 차더라도 조금 마음 편하게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다음번엔 주인아저씨와 싸워야 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