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갑인지 항상 어려운 유통 기자의 소회
팀의 주문으로 아이스크림 가격에 대한 기사를 쓴 적 있다. 물가가 치솟자 정부가 식품업계 등을 상대로 가격 인하 압박을 한창 주문할 때의 일이다. 물가 기사는 주목도가 높은 소위 '잘 팔리는' 기사다. 비슷한 기사야 많이 썼지만 아이스크림은 처음이라 이것저것 알아볼 게 많았던 기사다.
그래서 누가바는 얼마냐면, 8월 현재 편의점에선 개당 1500원이다. 대형마트에선 1200원이고, 무인점포에선 개당 600원이다. 다이소에선 모든 바 아이스크림을 개당 1000원에 동일 가격에 판다. 뭘 했다고 두 배가 넘게 차이가 나나. 그제야 나는 이 기사를 왜 팀에서 주문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녹기 쉽고 유통기한이 사실상 무기한인 아이스크림엔 권장 소비자 가격이 없다. 빙그레나 롯데 같은 제조사가 납품가를 통해 유통점에 공급하면 편의점이나 마트 같은 유통사가 알아서 마진을 붙여서 판다. 가격 결정의 주도권을 유통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구조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제조사들은 을로서의 고단함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원자재는 오르고 유통업체와의 관계는 녹록지 않고. 실제로 모 제조사가 납품가를 올리려고 하자 모 편의점 업체에서 통보 없이 가격 동결을 발표했다는 불평을 취재 과정에서 듣기도 했다. 제조사와 유통사 간 알력 다툼은 어딜 가나 흔한 얘기지만 직접 취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조사의 얘기를 주로 듣다 보니 그쪽으로 마음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원가가 많이 올랐고, 유통 마진가가 달라서 (가격이) 들쭉날쭉 하다' 정도로 정리했을 땐 뭔가 기분이 찜찜했다. 발제 계획을 제출할 때 너무 나이브한 결론을 내린 거 아닌가 스스로도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만족해도 될까 말까인 게 발제인데. 결국 아이스크림 발제는 불호령 속에 칼질을 당해야 했다. 피드백을 받으면서 부족함을 통감해 많이 부끄러웠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지난 몇 년간 다른 식품에 비해서도 큰 폭으로 올랐고, 품목에 따라서는 원가 상승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선배들의 손을 거쳐 추가됐다. 말은 안 했지만 '제조사 입장만 열심히 들으면 어떡하냐'라는 데스크의 눈초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대기업인 제조사가 무작정 을이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단 아이스크림 문제가 아니더라도 기업 간 갑을 관계나 알력다툼 등은 산업부의 단골 기사 소재다. 현재진행형인 쿠팡-CJ처럼 기업 간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관련 내용은 무조건 기사로 잡히는 발제가 된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누가 잘하고 못하며 누가 억울한지 파악하기 위해 산업부 기자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기업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다.
이 과정에서 느꼈던 건, 어쨌든 기업들은 다 자기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기자를 만나는 기업인들은 본인들이 불리한 점, 노력해 왔던 점을 열심히 토로한다. 홍보팀의 역할이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듣다 보니 한쪽 입장에 깊게 설득됐던 적도 몇 번 있었다(물론 기사로 쓴 적은 없다).
자기 목소리만 내는 기업들 사이에서 정확한 맥을 잡는 게 사실은 아직은 어려울 때가 많다. '일반 소비자를 위한 기사'라는 방향성은 있지만, 정확하게 전달해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기업 기사에서 정확하면서도 공정하게 쓰는 건 저연차인 나 혼자만으로는 아직 어려운 일이다. 산업부 기자들이 대체로 고연차인 이유도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선배들은 그런 이야기를 찾는 게 기자의 재미라고도 말했다. 재밌으면서도 어려운 일이 있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집 앞에서 쉽게들 사 먹는 누가바에도 이런 얘기가 있을 줄은 어떻게 알았나. 무인점포에서 사 온 6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