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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May 04. 2024

어느 마을에서

일기



1.

겨울 끝 봄이 오던 날,  남자를 만났는데

어휘며 사상이며

날카로운 눈빛 단정한 목소리

몸을 바싹 밀착시켜 호흡의 속도와 깊이까지도

받아쓰고 싶은 남자가 흘려놓은 말들을

노트에 빼곡히 써두었다가

그날을 생각하며 다시 정서하

언제고 만나게 된다면

그가 쓰는 말들 써가며

그가 읽은 책 본 영화 던져 준 주제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나를 준비시켜야겠다고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아이들의 계급투쟁

공부란 무엇인가

오래된 미래

수축사회 2.0

다크호스

인간다움

...

끝까지 읽지 못한 책도 있지만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무른 남자가 있다.


2.

이곳은 왜 이리 따뜻한 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물이 나는

길거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성아래 서서

음성에라도 기대고 싶은

이 마을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교회에서 절에서 동반자를 만나는 사람들처럼

누구를 새로이 만나게 된다면

이 마을의 길 위면 좋겠다고,

여기면 좋겠다고

만나면 좋겠다고

스치다가 이어지는 인연이 되면 좋겠다고

이 길 위면 좋겠다고

이 마을이면 좋겠다고


..23일에도 갈 겁니다..

..스칩시다..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3.

초록 속 작약이 탐스러운 오월

햇살 속 시린 바람 언뜻 부는

생활의 공간도 아니고 일과 관련된 공간도 아닌 이곳에서

우연히

같이

그를

만났다

네이버 인물검색 이미지에 나온 얼굴과 눈앞의 얼굴을

대조해 보기를 여러 번 한 후에 인사를 했고

그는 이름을 물어왔고

나는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힘주어 이름을 말했고

그는 이름을 받아쓰고

어느 때 가까이서 얼굴을 다시 보자

문을 두드려달라 하였는데

저 책들 목차라도 필사하며

서평이라도 다시 읽고

나는 꼭 그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문을 두드리고

그의 앞에 앉아

눈빛과 눈빛이 하고 만날 수 있게

저 깊은 곳이 움직일 수 있게

또렷하게 두드릴 것이다.


4.

오늘부터 공부.


5.

그런데

공부하게 만드는 남자라니..

이렇게 근사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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