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Nov 14. 2024
맑은 낮이었다.
붉은 벽돌 건물인 인문대학의 중앙 정원을 빙 둘러 사람들이 해를 피해 서 있었고
나도 그 틈에 서서 선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대학 학부의 동문이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전공으로 학부에 들어가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석사과정으로 재학할 때였다.
이십 년 전이다.
선배가 회초밥 도시락을 가지고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도시락이었다.
우리가 빈 강의실이나 어느 벤치에 앉아 함께 점심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해를 등지고 앉을 수 있는 따뜻한 곳이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선배는 점심을 먹고 왔다고 했지만
나는 선배가 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선배와 있을 때 음식을 아주 잘 먹었다.
내가 잘 먹는 모습 보는 것을 좋아했었고,
나는 그런 선배의 눈빛을 보는 것이 좋아서 잘 먹었다.
함께 먹자고 했지만 혼자 먹으라 사양하던 선배는
내가 먹는 것을 곁에서 지켜봐 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당연히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바탕에 있었겠지만
나와 닮았던 선배는, 선배를 닮았던 나를 아꼈고
선배를 닮았던 나도, 나를 닮은 선배를 아꼈다.
둘 다 벌이가 없던, 이십 대 중반 때의 일이다.
각자의 삶에서 응원받고 싶었던 만큼
서로의 삶을 응원했다.
나의 행복을 빈다고 했지만
그것은 선배 자신의 행복을 비는 일이기도 했다.
둘 다 지독히 열심히 살던 청춘들이었고
둘 다 지독히 고독한 청춘들이었다.
손 한 번 잡을 생각 같은 건 감히 하지도 못했고,
실제로 그러한 일도 없었지만
그러한 영역과는 별개로
진심의 응원을 주고받던 우리였다.
누가 먼저 결혼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서 연락이 끊어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회초밥 도시락이 때로 기억난다.
그래서 함부로 살 수가 없다.
내가 잘 살아야 선배의 마음이 편할 거라서,
그가 그토록 아끼고 귀히 여겨준 사람이니
그의 기도를 받은 사람이니
멀쩡히 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용기나 응원같은 것이 필요할 때라 그런가
그 초밥 도시락이 문득 생각났다.
...............
글을 쓰고 선배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보니
멋진 직함과 함께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인 사진이 나온다..
역시..
선배 열심히 살았구나.
그리고 그런 선배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났구나.
난 그대로야..
나도, 잘 살아봐야지.
한 번 살아봐야겠다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