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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벼리 Dec 09. 2023

섬세한 사람은 청소를 한다.

섬세한 사람이 사는 법 4.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환경이 중요하다고. 그만큼 환경 설정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생각보다 무섭다. 나를 원하는 환경에 데려다 놓는 것만으로도 50% 이상은 성공했다고 봐야 할 정도로.


예를 들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상경을 하거나 해외로 나갔다고 하자. 익숙했던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킴으로써 찾아오는 여러 기회들을 맞이하게 된다. 기회든 위기든 상관없다. 위기 또한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위기를 가장한 기회여도 그 또한 경험이 될 것이니 말이다.




사실 사는 곳을 바꾼다는 건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간단하게 운을 바꿀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이 바로 '청소'이다. 기분을 좋게 만들면 운도 따라서 좋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부분 그럴 테지만, 내가 기분 좋아지는 환경은 잘 정돈된 곳이다. 어지럽고 어수선한 환경에선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몹시 불쾌해진다.


그런 환경에 나를 내버려 두는 일은 자학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매일 정리 정돈을 하고 청소를 하게 된다. 좋은 기분을 유지해 좋은 기운을 받고, 모든 일이 잘 풀리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최근 창고를 가장한 세탁실 정리를 했다. 이사 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안 쓰는 물건들이 생기게 되었고, 그 물건들이 자연스레 세탁실로 향하게 되어 창고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빨래를 하려고 보니 평소에 신경 쓰이지 않던 물건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검은 봉지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이 무엇인지 뒤져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찾지 않는 걸 보니 필요 없는 물건임이 분명했다.


날을 잡고 종량제 봉투 75L 두 장을 구입했다. 그리고 창고 안에서 점점 쓰레기로 변해가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미련 없이 종량제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더 이상은 쓸 물건들이 없었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놔두면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한다던데, 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몇 번 쓰지도 않은 로봇 청소기를 보고서는 '중고 장터에 팔까?'라는 생각도 잠깐 했었지만, 그 과정 또한 내겐 피곤한 일이라 과감히 생각을 접었다.


분리수거가 가능한 물건들을 제외하고 일반 쓰레기들을 모두 담으니, 종량제 봉투 2장이 적당히 찰 정도가 되었다. 창고에 박혀 쓰지 않던 청소기로 즉시 세탁실을 청소하고, 꼭 필요한 물건 몇 개는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그렇게 훤하고 깔끔할 수가 없었다. 고구마 3개를 연속으로 먹고, 꽉 막혔던 목에 시원한 우유 한 모금 마신 기분이 들었다.




창고 정리 하나 했을 뿐인데,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단점 없는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필요 없던 것을 버리고 청소를 하니, 그 단점 하나 없앤 듯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불필요한 생각들을 드러내고 깨끗하게 청소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나는 그런 시간을 '혼자 있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필요 이상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머리와 마음이 오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과 마음을 비울 때,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 정리를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복잡했던 생각과 마음이 대청소를 한 듯 깨끗하게 비워진다. 그리고 비워진 공간에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상쾌한 마음이 채워지며 에너지를 얻는다.


 



물론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외향인이 있는 반면, 나처럼 혼자 사색하며 에너지를 얻는 내향인도 있다. 불필요한 잡음을 웬만하면 피하고, 평온하고 조용한 환경을 조성하려면 청소는 기본이 되어야 한다.


섬세한 사람일수록 오감이 예민한 편이어서, 눈에 보이는 것도 감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필요 없는 것은 제때제때 버리고, 물건은 제자리에 두는 편이다.




특히나 반려견과 함께 하는 가정이기에, 청소를 더 부지런히 하게 되었다. 심심하면 바닥을 핥고 다니는 퍼피 시기라 바닥에 먼지가 많으면 안 되기 때문이고, 배변 훈련이 되어 있긴 하지만 대소변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경우 배변 실수를 할 수도 있기에 그때그때 치우는 습관이 들어있다.


생각해 보면 청소는 나만을 위한 것 같아 보여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집은 오롯이 쉬는 공간이기에 먼지나 냄새 없는 청결한 공간으로 유지하기 위한 일. 그렇기에 건강과도 직결된 일. 작지만 큰 배려가 묻어있는 행위인 것이다.




사소한 행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게 아닌가 싶지만, 모든 큰 일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기에 결코 사소하지 않다.


자극이 많은 세상에 섬세한 사람이 지켜야 할 루틴이 꽤나 많아 보인다. 하지만 루틴이 습관이 되면,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섬세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섬세함을 타고난 건,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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