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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조조 Dec 14. 2023

오즈 야스지로 생탄 120주년 <동경이야기> 상영

카마쿠라 예술관에서. 하마구치 류스케의 애프터 토크도.


2023 12 12 오늘은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태어난지 120년째, 

세상을 떠난지 60년째 되는 날이다.

딱 환갑이 되는 감독은 자신의 생일날 세상을 떴다.



여느 문호나 스타를 가진 지방소도시들이 다들 그러하듯 (그것도 숫자가 딱 120, 60으로 떨어지는 )

오즈의 탄생주년, 서거주년에 맞춰 카마쿠라시에서 주최한 영화상영회를 다녀왔다.



사실 <동경이야기>는 <꽁치의 맛>만큼 깊이 마음을 주고 있던 작품은 아니었지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토크쇼가 있다하여 

편도 50분의 시간과 980엔의 요금을 치루고 멀리 카나가와현 오후나까지 왔다.


그만큼 유튭에서 본 봉준호감독과 하마구치감독의 토크가 재밌었기에 이 정도즘이야 생각했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만원전철로 신주쿠 시부야를 지나 카나가와현으로 들어서자 

거짓말같이 열차는 비었고 연말연시에 정신없고 피곤한 탓인지 꾸벅꾸벅 졸다가 오후나에서 내렸다.

아무리 하라세츠코의 고전적인 얼굴과 콧소리가 좋다한들,

하마구치 감독의 이야기가 재밌다한들, 오후나가 멀다는 건 변함없다. 



가마쿠라예술관

6 Chome-1-2 Ofuna, Kamakura, Kanagawa 247-0056 일본



오늘의 상영관 카마쿠라 예술관은 

오즈의 영화를 배급하던 쇼치쿠(후지산배경에 소나무 송 대나무 죽이라 적힌 로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과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구글 맵 근처에 쇼치쿠가 들어간 이름들이 보인다.





화요일 10시 라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에게는 엄두도 안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00-400명정도 들어갈 것 같은 홀은 거의 다 차있었다.






영화관 의자같은 컵 홀더따윈 당연히 없고 좌석은 좁고 옆 관객은 자꾸 움직이고

2017년도에 제작된 4K 필름은 그렇다고 엄청나게 화질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주변에 조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영화를 보기에 그다지 좋다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1500엔 (1부만, 2부까지 보면 3000엔이다)이나 내고 왜 이 좁은 극장의자에서 조는 걸까.

훌륭한 클래식감상가들도 연주회에서 졸 때가 있다고 하니 뭐라 할 일은 아니겠지라고 다독이며 

내심 전철에 졸았던 덕택인지 졸리지 않아 저들처럼 졸지 않아도 되는나하고 내심 안도했다.



아마 세 번째, 극장에서는 첫 번째 보는 <동경이야기>는 생각보다 덜 졸리고 덜 지루했다.

큰 화면으로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가장 크게 다가 온 건 다들 칭송하는 오즈의 화면구조 설정이나 카메라의 각도와 움직임,

인물의 동선에 대한 연구나 찬사가 나같은 지식이 없는 일반인에게도 다가올 정도로

아름답고 계산되어있다는 걸 인지했다는 점이다.


잘 짜여진 파인더는 연극무대 같기도하고 회화같기도 했다.



이런 “큰 화면에서 봐서 좋았다”정도로 끝날 감상이었으나 

하마구치감독의 상영 뒤 설명을 듣고, 오즈의 영화의 깊이를 처음 깨달았다.



오즈의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아래의 세개로 나눌 수 있는데

일본어로는 아쿠숀츠나기(アクションつなぎ) 라고 한다고 한다




 동기 同期 싱크로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복수의 인물들이 같은 행동을 한다

예: 같이 일어난다, 동시에 얼굴을 숙인다                                    


연동 連動

같은 공간에서 시간간격을 두고 한 인물이 한 행동을  다른 인물이 조금 변형하여 같은 행동을 한다 

예: 일어나는 타이밍이 조금 달라진다                                     


반복 反復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다른 인물이 한 인물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면밀히 설계한 후 실제 촬영시에는 파인더를 통해 확인 조정하는 일을 함으로써

인물의 공간과 시간을 재구성하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평면적인 내러티브에 맞춰 배경설정등을 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보통 <동경이야기>의 주인공은 노부부이고 상경해서 자식들에게는 홀대 받으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편이지.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마지막에는 노부인이 세상을 뜨는 그냥 그런 어쩌면 평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유일하게 노부부를 잘 봉양하는 죽은 아들의 며느리, 

직접 키운 자식이 아닌 타인에 해당하는 노리코의 이야기이다.



하마구치 감독의 말을 옮기면 이렇다 (가필 많음)




동경이야기는 단순한 노부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과 사회를 거역할 수 없이 패배해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가족 부부 안에 속해 있어도 마지막엔 혼자 죽어야할 운명의 인간이 
생판 남, 타인과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찰나가 있다는 것을 
그 기적을 믿고 만든 영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좋은 애프터토크를 듣고 오즈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나마 깊어진 것 같아 좋았다.

하마구치 감독의 소개로 오즈는 120년 전 오늘 12월 12일에 태어나 

60년 전 오늘 그의 환갑때 세상을 떴는 걸 알았다.



그런 뜻깊은 날 <동경이야기>를 다시볼 수 있어 좋았고

"입장료 내야되지...이동도 불편하고..."하면서 미뤘던 

오즈 야스지로의 묘가 엔카쿠지에 역시 성묘가기로 했다.




        엔가쿠지

409 Yamanouchi, Kamakura, Kanagawa 247-0062 일본



엔카쿠지는 키타카마쿠라역 바로 내린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입장료는 인상되어 어른 500엔






매화 등 꽃이 아름다운 절로 이곳의 묘지에 오즈의 묘가 있다. 







12월인데 늦은 단풍






대웅전은 여전히 아름답다. 



묘지는 관계자만 갈 수 있으나 오즈감독의 묘는 가족분들의 허락을 받아

팬도 성묘하는 것이 가능하다. 






입구의 표식에서 오즈 라고 적힌 장소를 확인하고 언덕을 올랐다.








오늘이 생일이자 기일이어서 그런지 이미 팬으로 보이는 분들이 4-5분 모여있었다.

모두 각자 왔고 손에 꽃, 향을 들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물로 묘비를 씻는 팬 분.










오후나 역에서 산 메리골드와 유리컵에 들어있는 일본주 사케를 샀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애주가로 유명했다.






그렇게 치밀하고 완벽한 작품을 만든 감독의 묘비에는 

"무" 아무 것도 라고 적혀있다.


꽃을 꽂고 사케를 놓았다.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살아있는 동안 아주 작은 것이라도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것을 남길 수 있게 해달라고.









돌아오는 길 단풍이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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