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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EVAN Feb 21. 2018

뒷북

슬기로운감빵생활

집에 TV는 있지만, 공중파 및 케이블을 보지 않는다. 몇 년 전 주말 오후 멍 때리며 재미없는 방송을 보다가 하루를 그냥 보냈는데 갑자기 정이 뚝 떨어졌다. 불필요한 과잉공급으로 수요가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본방사수’라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술 약속이 있는데 드라마를 보러 집에 가는 꼴이란. 보고 싶은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면 정당하게 유료 다운로드로도 충분하다. 그러다가 ‘넷플릭스’라는 취향에 다라 골라볼 수 있는 플랫폼에 대만족하고 잠을 줄여가며 즐기는 중이다. 종영된 드라마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정주행’이 가능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우연히 보게 된 tvN의 <슬기로운 감방생활>은 사실 ‘미드’들에게 밀려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첫 회를 보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배우들에게 호기심이 생겼고(심지어 주인공은 처음 본다), 말도 안 되는 ‘병맛’ 유머 코드에 박장대소가 아닌 ‘피식’ 웃음을 짓게 되었다. 의외의 캐릭터들의 매력적인 이야기와 소소한 감동. 그리고 <응답하라> 시리즈 르 연출한 신원호 PD의 역사적인 사건을 녹여내는 시퀀스들은 이번에도 제대로 통했다. 그리고 ‘감방생활’을그린 드라마라니. ‘누아르’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죄수들이 귀여운 이미지를 가졌다. 하지만 그들이 지은 ‘죄’를 포커스 하는 부분에서는 여과 없이 치부를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선과 악이 모호한 상황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한다. <배트맨> 시리즈가 딱 좋은 예. 놀란의 시리즈도 좋았고 히스 레저의‘조커’도 매력적이었지만 멋있는 악역일 뿐. 팀 버튼의 시리즈에서의 배트맨(마이클 키튼)과 캣우먼(미셀 파이퍼), 펭귄(조 페시)이 표현하는 캐릭터가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다. 아직 마지막 회까지 다 보진 못했지만, <슬기로운 감방생활>의 주인공부터 교도소에 있는 죄수 캐릭터들은 다들 두 가지 얼굴을 가졌다. 가까이 지내면 한없이 착하고, 성실하고, 똑똑하고, 개성 있는 각자의 매력을 지닌 죄수들의 과거는 살인, 사기, 절도 등 한 번의 실수라고 하기에 힘들 정도로 어둡다. 주인공 또한, 친동생을 겁탈하려는 남자를 폭행해서 뇌사에 빠뜨린 슈퍼스타 야구선수다. 결국 그 남자는 죽게 되고 졸지에 살인자가 된 주인공. 그냥 듣기만 해도 엄청난 스토리인데 그 안에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때로는 미소를 머금게, 눈물을 흘리게 된다. 배우의 힘이자 연출력의 힘. 게다가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밖에 없는 OST 음악은 드라마의 재미를 더한다. 비와이의 박력 있는 플로우를 시작으로 우원재의 등장인물을 대변하는 듯한 독백까지. 왜 나한테 이 드라마가 재미있다고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던가? 극 중 배식을 담당하는 ‘소지’처럼 복식으로 부르짖고 싶은 심정이다. 넷플릭스가 있어서 정말... 이적이 부릅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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