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STEVAN Mar 20. 2018

사내의 눈물

무죄를 주장하는 바

@Tom Pumford on Unsplash

유난히 눈물을 많이 흘린 한 달이었다. 우환이 있거나 시련이 닥친 건 아니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사내의 감수성이 풍부해졌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본다. 정말 유치할 것 같아서 극장에 갈 때마다 외면했던 <신과 함께>를 ‘굿 다운로드’를 통해 감상하게 되었다. 설 연휴, 일본으로 휴가 일정을 잡았고 아내는 출장 스케줄로 먼저 일본에 가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잔뜩 과음을 한 다음 날 ‘띵동’을 통해 행당동에서 심지어 ‘성수동 소문난 감자탕’을 주문해 거하게 해장을 했고 이제 넷플리스나 보면서 남은 하루를 보내면 되는 알찬 계획으로 소파에 몸을 뉘었다. 우연찮게 흥행몰이를 했던 대작 <신과 함께>를 거금을 들여 다운로드했고 별 기대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원작 웹툰을 전혀 접하지 못한 탓에 죽어서 저승에서 떠돌며 자신의 죄를 재판받는다는 설정이 흥미로웠고 배우들의 연기에 남은 숙취는 어느새 사라지고 몰입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는 뜻. 영화를 보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혹은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눈물을 흘리게 되는 모든 사람의 공통 포인트는 바로 ‘부모님’이다. 특히, ‘어머니’. 후반부에 작정하고 시작된 신파는 숨이 가쁠 정도였다.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페이스북에 너무 슬퍼서 질식할 뻔했다는 평을 남겼더니, 정말 바늘로 찔러도 피도 날 것 같지 않은 형님들이 본인도 오열했다며 공감의 댓글을 달아주었다. 마흔에 가까워지면서 정말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눈물이 많아진 걸까? 아니면, 명절에 혼자 있었던 은근한 외로움이 숙취와 시너지를 일으킨 걸까? 그리고 또 한 번의 눈물은 바로 <무한도전>이었다. 사실 토요일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지라 ‘본방사수’를 해본 적이 없다. 그 흔한 봅슬레이, 조정 등 감동적이었다는 에피소드도 본 적 없다. HOT가 나왔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보았는데 도대체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더라. 다섯 명이 재결합을 위해 모였다. 잘된 일인데, HOT를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그 시기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서일까? 그때 함께 HOT, 젝스키스를 욕하던 친구들은 다 잘 지내려나? 마지막 눈물은 화제의 드라마 <마더>. 버림받은 아이의 슬픔과 아이를 유괴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 아닌 엄마. 일본 원작에 비해 연출의 디테일이나 전제적인 스토리가 억지스럽다는 평이 있지만, 원작 따위 보지 않았다. 단숨에 몰입 완료! 보육원에서 전화를 걸어온 아이가 다시 한번 유괴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흐느끼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왈칵’ 쏟았다. 마지막으로 살짝 눈물이 흘렀던 순간은 <고등 래퍼 2>의 참가자 이병재(빈 첸)의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를 들었을 때.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아직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게 남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해보며 ‘사내의 눈물’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뒷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