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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Nov 22. 2022

변호사일기 : 지식과 경험

어떤 것들은 로직으로 해결되지 아니한다.

일을 하다보면, 책에 써져있는데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분명 원칙대로 가면 가장 간명한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각자의 사정들이 있다. 처음 들을 때는 황당하게 들리지만, 듣다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경우들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방법들이 꼭 상황에 적합했던 방법인 것은 아니지만, 밑도 끝도 없이 아무런 맥락없이 그냥 나온 요청들은 아닌 경우가 많다. 


특히 법규정이 있거나 판례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그에 미치지는 않는 실무적 관행들로 행하여지는 것들 가운데는 내가 배운 원칙에 의하여 결론이 안 나는 부분들이 꽤 된다. 이런 영역에서는 실무자들이 형성해온 관행이 중요해지고, 따라서 '경험'이 '지식'에 앞서는 경우들이 있다. 


회사의 각종 의사결정 사항이 결국 상업등기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따라서 기업법무를 하다보면 등기라는 절차를 피할 수가 없다. 이 '등기'에 있어서는 특히나 법령의 문언들이 정해놓은 원칙들이 실무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매우 모호한 경우가 많고, 오직 등기관들과 등기 실무자들간 수십년간 쌓아온 실무관행에 따라 처리되는 건들이 다수이다. 그러한 것들이 사례화된 규칙들로 '등기선례'라는 형태로 발간되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규범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어딘가 틈새에서 사람들의 관행으로서 유지되고 운영되는 체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규범의 실패다. 다만 켜켜이 쌓인 이러한 관행들을 체계화하여 정리하기에는 중요도가 떨어지거나, 법원의 자원을 할당받기 어렵기 때문에 좀처럼 그 영역의 체계화, 효율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등기야말로 영미식의 case law와 같은 형태로 규범이 발전하고 있는 분야라고까지 느껴진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누적이 규범이 되는 것.


때문에 이 부분 만큼은 지식보다 경험이 앞선다. 대신에 그 경험의 취득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높은 진입장벽은 아니다. 다만 그 전수가 도제식으로 혹은 실무를 진행하면서 체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비효율적이기는 하다. 


다만, 이와 같이 불확실성 때문에 아무래도 이용자의 경험 차원에서는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가능하다면 이러한 모호함의 영역은 축소하는 편이 좋은데, 이 분야의 혼란과 혼돈이 실무 담당자들에게는 오히려 이득이되는 부분들도 있고, 외부적으로 개입해서 이를 개선하기는 쉽지 않고, 또 각종 법령으로 해당 영역의 직무수행이 두텁게 보호되고 있기도 하여 개선은 요원하다. 


물론 공적 기록의 관리가 이 정도 효율로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는 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불평만 할 일은 아닌데, 간명한 원칙을 두고 이상한 예외의 길로 빠지는 것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들이 이해되어 수긍되면서도 그에 따라 품이 더 들어가게 될 때마다 당혹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이 역시 경험이 해결해주는 영역이므로, 오늘의 불평은 여기까지. 


(이런 경험이 반복될 수록, 테크와 자동화를 통한 문제의 해결에 대한 욕구는 강하되기만 할텐데, 그 미래가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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