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 일관성은 아직 유지되고 있는가?
지금은 이곳저곳 관심 가는 곳에 기웃거릴 수 있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즐겁다라는 생각을 종종하기도 하는데, 학부를 법학 전공을 하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듯이 고시 공부를 하고, 결국 그것을 정리하고, 전환하고 싶지 않았던 로스쿨 진학으로의 방향을 틀고 하는 과정에서는 사뭇 괴로웠던 것도 같다.
사실 상상력이라고는 아무것도 의미 없고, 메타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오직 해석학으로서의 법학 (legal dogmatics)는 그야말로 도구적인 학문이고 그 자체를 알고리즘 짜맞추는 것 같은 재미가 있을 수 있다해도 가슴이 뛰고 들여다보기만 해도 미친듯이 흥분되는 그런 대상은 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법을 다룬다는 것은 그리고 변호사가 된다는 것은 가슴 뛰게 하는 문제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점은 분명히 있지만, 그럴 수 있기 까지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이 사실 짧지 않고 그 과정을 견뎌내었을 때는 오히려 가슴 뛰는 문제들과는 내가 제법 거리가 멀어져있음에 좌절하기도 쉽다.
여하튼 그러한 괴로움이 깊어지고 있던 때에, 이 과정이 너무 성과도 없고 괴로운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것을 버티는가를 고민할 때, 그러면 내가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물을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어떤 직업이나 지위로 환원되지 않았기에 답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이를 추론해보고자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을 추려보았다. 그 때 내가 그 삶의 궤적이 멋지다고 생각한 사람은 셋이 있었고, 나는 이들을 나의 세명의 영웅, 三雄이라고 불렀었는데, 그 세명은 (1) 스피노자 (2) 죠지오웰 (3) 윤동주였다. 다들 자신의 기준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갔고, 타협없이 그 기준대로 살아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 끌렸던거 같다. 나는 물론 얼마나 많은 타협을 하루에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그들이 보여준 삶의 순수함을 표방하는 것도 피식 웃음이 나는 일이기는 한데, 그 때의 나에게 기준이 될 만한 삶의 사람들은 저들이었다.
그 결론을 내고 나서보니, 도대체 나의 영웅들과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연관지을 고리가 없었다. 법률가 중에서 저런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러면 나는 이 길을 계속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물론 뜻밖에도 답은 다른 곳에서 찾아졌고, 지금은 '변호사'라는 틀을 매개로 나름대로 내가 선택한 주제들과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들에 끊임없이 다가가면서 살고 있다고 느껴 몸은 힘들고 때론 스트레스 받아도 (나 자신에 대한) 마음 깊은 곳의 불안들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내 안의 약간의 이질감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두터운 양말 너머로 신발가죽과 사이에 느껴지는 모래알의 거슬림 같은거. 그래서 결국 나는 모범적인 법조인의 삶에는 결코 다가갈 수 없을 것임을 느낀다. 이는 결코 내가 그런 것을을 한번도 원한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것들은 내가 진실로 욕망할 수 있는 부분들이 아니어서 도저히 그 성취를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인내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스피노자의 생각들과, 죠지오웰의 치열함과 윤동주의 여린듯 단단한 감성을 사랑해마지 않는다. 적당히 나와 타협하고, 때로는 유약해지며 살면서 그들의 살아낸 삶의 정합성에는 다가가기조차 어려워졌다고 하더라도. 다만 우리가 진창을 걷더라도 우리의 시선은 별의 인도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낭만이고, 낭만이 없다면 우리는 구태여 번뇌인 이 삶을 견뎌낼 이유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