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이상 글로벌로 간다
0. 열흘간의 북미 투어
1월 초에 약 열흘정도 북미에 다녀왔다. 1월 첫째주에는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에 참가한 한국 스타트업들을 취재했고, 그 다음주는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로 넘어가 한국계 스타트업 행사인 82 스타트업에 참석하고, 현지에 있는 한국 스타트업 지원 기관 등과 회의 일정에 참석하고 마지막으로는 이번 미국 방문의 목적인 우리 회사의 실리콘밸리 사무실 개소식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부 동기를 만나고 왔으니, '북미' 방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미국 일정은 작년 4분기 다소 갑작스레 결정되었는데 전세계적 매크로한 변화들을 위시한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그냥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글로벌로 가게된 이유가 더 크다. 우리는 이제 글로벌 로펌인 것이다.
사실 출국할 때부터 나는 비행기를 놓칠 뻔 하였다. 당일에 짐을 싸서 회사에 출근했고, 회사에서 각종 촬영장비를 챙겨야 해서 세팅을 했고, 기왕이면 단체복을 가져가면 좋겠어서 마지막까지 그 세팅을 하고 있기도 했고, 또 비행기 타면 평일에 업무 공백이 생기니 마무리 할 수 있는 것을 마무리한다고 하다 보니, 시간이 예상보다 지체되었다. 오랜만에 출국하다보니, 국제선은 수하물 마감이 출발시각보다 한참이나 이르다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넉넉하지 못하게 출발하고 보니 지하철이 너무 더디다. 9호선을 한참타고 가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어서 중간에 자동차로 가는 경로를 검색해보고 적당한 다음 역에서 내려서 호다닥 택시를 부르고 갈아탔다. 다행이 나의 급한 심경을 짐작한 택시기사님은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에 따라 신속히 공항으로 이동하여 주셨고 나는 는지는 않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짐도 부쳐야 하고, 공항에서 예약한 고프로도 찾아야 하고 할 일이 많았다. 미국입국시 가져가려고 뽑아놓은 예방접종 완료증은 회사에 두고 왔다. 들억가기 전에 출력할까 하였지만 늦기도 했고 귀찮기도 했고, 들고 있는 짐도 촬영장비 포함하여 너무 많아 어떻게된 되겠지 포기하고 우선 출국수속을 밟았다. 드넓은 인천국제공항의 면세점 쇼핑을 할 새도 없이 게이트고 가야 했고 앉아서 커피 한잔할 여유도 없이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1. 라스베가스 CES
입국할 때도 캐나나 밴쿠버를 경유하여 들어갔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저렴하게 예매할 수 있던 비행기가 에어카나다라 밴쿠버를 경유하여 라스베가스로 입국하게 되었다. 밴쿠버 공항에서 미국으로 입국할 때 미국 입국 수속도 캐나다에서 마치고 바로 (아마도 카나다-미국 국내선으로) 라스베가스로 떠날 수 있었다. 한국 여권을 내밀자 입국 수속을 밟아주던 미국 직원분이 CES 가냔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한국 사람들이 CES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이후 갈아탄 라스베가스행 비행기에도 한국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기내 인적 구성만 보아서는 여기가 한국인지 해외인지 헷갈릴 편이었다. 그렇게 밤시간에 도착한 라스베가스 공항은 무척이나 크고 혼란스럽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출발하기는 한국의 겨울을 뒤로 하고 왔는데 더 쌀쌀한 느낌은 라스베가스의 공항에서라니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여정에는 회사 대표님을 포함하여 총 4명이 동행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돌아다니려면 애초에 차가 없으면 안되기도 하고 또 샌프란시스코로 네명이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차를 렌트하기로 하였다. 라스베가스로 오는 일정은 각각의 사정에 따라 도착이 다 달랐기에 우선 내가 차를 빌리기로 하였다. 라스베가스도 공항에서 바로 차를 빌릴수는 없고, 공항 근처의 렌터카 센터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렌트해야 한다. 물론 예약이야 다 하고 왔지만. 실제로 최종 수령절차는 렌터카 센터에 가서 마무리지어야 한다. 우리는 4인에 이것저것 짐이 많을 예정이라 준대형 SUV를 빌렸다. 쉐보레사의 트래버스였는데, 차대가 커서 여러모로 편리하기는 하였다. 미국에 도착해서 첫 미션을 클리어했으니 이제 라스베가스 숙소로 가야한다. 나는 한국에서도 운전을 잘 하지 않지만 미국에서 일단 차를 빌렸으니 운전해야 한다. 신호체계가 무엇이 그리 대단히 다를 것도 없지 않은가. 다행히 미국에서의 운전은 별다른 탈없이 지나가긴 하였다.
CES는 처음에는 구경하고 오자는 취지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내년초에 CES에 가서 구경도 하고, 한국 기업들 네트워킹 이벤트도 많다는데 참석도 하고 '견문'을 넓히고 오자 정도의 취지였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에, 그것도 사무실을 개소하기로 한 이상, 기왕 간 김에 구경만 하고 온다는 것은 뭔가 시원찮은 느낌이 있었다. 마침 우리는 회사 차원에서 스타트업 관련 미디어도 관리하고 있던 차, 이번에는 미디어 자격으로 가기로 한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한국 스타트업들 약 350여 군데에 인터뷰 참가 신청 콜드메일을 드렸고, 그 중 약 70여군데에서 회신을 주셨다. CES에서 우리의 주된 과업은 그 스타트업들을 모조리 인터뷰하고 오는 것이었다. CES 행사는 목,금,토,일 이어진다. 일요일은 사실상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날이라고 하기도 하고, 우리도 샌프란에 이동해야 하는 날이라서 목, 금, 토 중 인터뷰를 모두 소화해야 한다. 이 중 일정 조율이 되지 않아 한국에서 사후 인터뷰를 하기로 한 일부 회사를 제외하고 거의 60군데를 3일 동안 인터뷰해야 한다. 하루에 20군데 가량 인터뷰 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풀로 달려야 소화 가능한 일정이었다.
우리의 피와 눈물과 땀이 얼룩진 취재의 결과물은 요기 (https://www.startupforest.net/CES2030)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시간 기준으로 낮에는 인터뷰하고, 저녁에 들어와서는 시차가 딱 마침 한국 업무시간 개시와 맞아 쏟아져들오는 메시지와 메일을 쳐내야 했다. 미국에 있다고 연락 두절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점도 있었고 일부러 시차를 맞추려 하지 않아도 되어 좋기도 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마침 또 CES 방문해있던 로스쿨 동기를 만나 무려 라스베가스에서 맥주 한잔을 하기도 했고, 돌아다니다가 군대 선배도 얼굴도 보고 했고, 또 날마다 호텔 일층에 위치한. 특별할 것 없었지만 맛났던 조식을 먹을 수 있었던 패스트푸드 체인 조니로켓에 출근 도장 찍은 것 등 소소한 즐거움들 역시 없지는 않았다. 덕분에 라스베가스 구경할 시간은 없었지만, 애초에 내 취향은 아니라 크게 손해본 느낌도 없었다. 그 와중에 뵐 수 있었던 CES 참가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임직원 분들의 열정과 절박함은 지친 중에도 우리를 조금이라도 더 걷게 만들었었고, 그래도 이분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고생한 보람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년에도 또 오게 된다면 그 때는 이번 보다는 조금 덜 정신 없고 조금 덜 바쁘게 일정을 만들어 볼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도 든다. 생각해보면 진짜 힘들만 했던 건 겨우 3일 정도이고, 넷째날 일요일은 딱 정해진 일정도 아니라 그렇게까지 바쁘지도 않았는데 그 3일 동안 체력이 완전히 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험난한 여정은 이제 시작이었던 것을 그때는 아직 몰랐고, 라스베가스를 일요일 오후 떠나올 때는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았다.
TO BE CONTINUED
(2. 로드트립 / 3. 실리콘밸리 / 4. 캐나다 / 5.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