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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Mar 19. 2023

해군통역장교수기: 04-군인화 단계 (2)

1주차 / 군인으로서의 걸음마 시작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결국은 이어지는 서사로 가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에피소드적 구성으로 돌아왔다. 

훈련 1주차는 강도가 높을래야 높을 수가 없다. 가입교를 마쳤다고 하지만 아직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전환되었다고 보기도 애매하고, 가입교 기간에는 아무래도 사정을 두기 때문에 진짜 딱딱한 분위기의 훈련 생활이 시작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주차는 이제 훈련 받을 최소한의 준비가 된 후보생들을 대상으로 본격 훈련을 시작하는 첫 단계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때에는 왠만한 후보생들은 모두 제대로 훈련을 받을 체력도 갖추어지지 않았고, 아직 군대 돌아가는 생리에도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리버리한 모습을 많이 노출시킬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제식이라든지 복명복창이라든지 기본적인 것을 몸에 익히는 것에서부터 이리저리 실수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전환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첫주이므로, 이때에는 이름하여 "복종주"라고 하여 처음에 훈련관들이 분위기를 더 딱딱하게 유지할 때이기도 하다. 이 주간에는 경례도 '복종!'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조금 굴종적인 느낌이 있고, 얼른 이 단계들이 지나가서 멋스럽게 '필승!' 하고 경례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리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1. 장교는 군대의 기간이다... 그러므로 "구부려!" 


입대하고 내가 겪은 가장 큰 문화충격 중에 하나는 해군에는 엎드려뻗쳐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해군 전체라기 보다는 해군사관학교의 전통인 것 같고, 장교교육대대로 해군사관학교 예하라서 그 전통을 이어 받은 것 같다. 그렇다고 해군이 푸쉬업 자세를 안 시키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해군 장교교육대대에서는 이것을 "구부려"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 단어가 너무 모욕적이었다. 구부려라니? 뭘 구부려? 


실제로 훈련관들이 "구부려"라고 했을 때 이 말을 알아들은 후보생은 없었다. "구부려 뭔지 몰라" 하는데 당연히도 모를 수 밖에. 세상에 그런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훈련관들도 이 사실을 모를리 없다. "구부리라고 구부려"하는데 우리는 우왕좌왕하다가 누군가가 엎드려뻗치기 시작하도 하나둘 따라서 엎드려 뻗친다. 엎드려 뻗쳐는 동작의 사실적 묘사일 뿐인 것 같은데, "구부려"는 묘하게 사람을 굴욕적으로 만든다. 


입대 후 가장 먼저 암기 하도독 하는 것중에 하나가 "장교의 책무"이다. 장교의 책무는 이렇게 시작한다. "장교는 군대의 기간(基幹)이다. 그러므로 장교는 그 책임의 중대함을 자각하여..."  장교가 군대의 기간이라 함은 군의 중심으로서 기둥같은 것이라는 뜻일테다. 하지만 장교는 군대의 기간인데 "구부"리라니! 어감이 실로 과하다고 할 수 밖에. 


하지만 말귀 못 알아듣고 어물쩡하면 더 큰 갈굼으로 돌아오므로, 우리는 구부려 하면 제깍제깍 바닥에 활어처럼 펄떡이며 엎드려뻗쳐 하는 것이 곧 습관처럼 되었다. 사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구부려" 정도로 끝나면 매우 부드러운 갈굼이라 훈련관이 적당히 넘어가주시는구나 할 정도이니 뒤로 갈수록 그 어감의 굴욕감을 덜어졌지만, 지금도 어째서 엎드려뻗쳐가 구부려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고 큰 의문으로 남아 있다.




2. 좌식강의 - 어떠한 경우에도 졸지 말 것

군인복무규율 강의


앞서 말한 것처럼, 체력도 안 갖추어진 후보생들을 하루 종일 육체적으로 굴릴 수 많은 없다. 또, 실제로 낯선 문화에 적응해야 하고 직무수행을 위한 기본을 갖추어야 하므로, 군인화 단계에서도 군인기본과 그 외 체력적인활동 외에도 다양한 좌식 교육을 받게 되어 있다. 이러한 좌식 교육은 안 그래도 피곤한 후보생들에게 가히 고문인데, 일단 매우 지루할 뿐 아니라 마치 쌍팔년도의 주입식 교육과 같기 때문에 정말 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졸기라도 한다면 "구부려"를 비롯하여 각종 갈굼이 이어지고, 만약 다수의 후보생들이 졸았다면 끝나고 단체로 분위기가 나쁘기 때문에 최대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척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차라리 바깥에서 훈련 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좌학강의는 모두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좌학강의의 주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3. 1주차 소대장을 맡다.

소대장 완장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 왼손의 시계를 보아라. 


나는 군생활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입대한 상태였다. '장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나라가 뭔가를 나에게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순진한 설레임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두근거렸다. 내 젊음 조국과 겨레와 바다에. 이 문구에 실제로 설레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첫 주차에 소대장 할 기회가 왔을 때 나는 망설임이 없었다. 장교대에 왔으니 뭐라도 열심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지는 그땐 미쳐 알지 못했다. 


사실 뭐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고, 매우 매우 매우 힘든 한주가 되었을 뿐이다. 우선 1주차부터 군인화 단계 중에는 후보생들 가운데 간부 역할 (대대장/ 중대장 / 소대장 / 경리장교 등등등) 을 맡은 후보생들많이 시계를 찰 수 있다. 나머지 후보생들은 통지되는 바에 따라 움직이기만 할 수 있다. 따라서 간부 보직을 맡으면 소대원들에게 각종 공지사항을 전파하고 훈련 및 교육 일정에 늦지 않게 관리하고 공통 과업 수행들을 어그러지지 않게 잘 유도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책임이 부여된다. 


나는 장교를 기준으로도 늦게 입대한 편이었는데, 우리 소대에는 각종 나이 많은 사람들과 뭔가 통제가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을 몰아놓은 소대였다. 머리가 굵어서 입대한 사람들이 많아서 미묘하게 타 소대에 비해서 지시사항을 군말없이 따르거나 시키는 것들을 탈없이 제깍제깍 해내는 것이 영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에 비하여 훈련관님은 가히 모든 훈련관들 중에서 에이스라고 할 만한 분이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더욱 삐그덕 거렸다. 얼마나 훈련관님 성에 우리가 안 찼겠는가. 하지만 훈련관님께서 우리 소대를 맡게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당시 해사 생도대장 (원스타) 아드님이 우리와 동기로 입대하였는데, 분이 매우 아들에 대한 애정이 끔찍하시고, 아드님이 사고를 치는 타잎이셔서 (미안하다 M군아, 동기야 용서해라. 하지만 사실이잖아!) 반드시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임관시키라는 특명을 받고 원래 해사에서 훈련관을 하시다 급격히 장교교육대대로 보내지신 것이었다. 동기부여 충만하고 어떻게는 조금이라도 잘하고 싶어하는 사관생도들을 보아오시다가, 어제까지 대학생활 하다고 입대한 커서 말도 안듣는 우리들을 군인으로 만들어야 해서 아마도 많은 마음 고생을 하셨을 것으로 생각한다. 거기에 더하여 M군은 실제로 사고뭉치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M군은 나름 교육대대에서 적응하고 크게 사고 치지 않고 무난히 임관하였다. 

1주차는 정말 짜세가 안나옴 (feat. 목장갑)

이야기가 샜는데, 우리 소대는 그렇게 전체 장교교육대대 우리 기수에서 제일 문제될 소지가 있는 후보생들이 몰려있는 소대였고 실제로도 그랬기 때문에 아주 통솔이 힘들었다. 그렇다고 나는 뭐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고 아무튼 첫주에는 기합도 제일 많이 받고 이래저래 가장 쳐지는 소대였기에 덩달아 다같이 고생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랑한다 1중대 1소대 동기들아 오해는 말아주라! ) 첫주에 나는 1주일 만에 목이 완전히 쉬어버렸다. 그래서 목요일 지나서부터는 거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소리를 지를 때 마다 쉰소리가 겨우 빠져나올 정도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른 소대에서 나를 부른 별명이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인어공주'였단다. 슈바. 니들이 동기냐. 


아, 아침에는 꼭 우유를 배식하는데, 우유를 먹고 나면 후보생들이 모두 하루 일과 시작전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러 우루루 몰러가곤 하였다. 아마도 이게 아침 우유 배식의 주된 목적 중 하나가 아닌가도 생각되는데, 그러다 보니 하루는 변기가 막혀버렸다. 간부를 맡고 있으면 힘든 점은 대충 내 생활 반경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일들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한다는 점이다. 교육대대에는 막힌 변기를 뚫어줄 건물관리인 따위는 없다. 내가 뚫어야 한다. 소대장이라고 동기인 소대원들에게 지시할 입장도 아니다. 범인은 색출되지 않고 일과 시작 전까지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 결국 뚫어뻥을 가지고 누구의 변으로 막힌지 모를 변기를 처연하게 압박하여 뚫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변기가 뚫리고 탈없이 일과를 시작할 수 있게되었을 때 나는 몹시 기쁠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1주일을 보내고 나니 나는 기운이 다 빠진 상태에서 한주를 간신히 마무리하였다. 보직을 맡고 있으면 개인시간이 없다는게 정말 힘든데, 동기들이 밥먹고 잠깐 쉬거나 청소 중에도 자기 구역 마치고 약간 여유를 누리거나 다음 과업 준비 저에도 개인 행정 시간을 갖는다거나 할 수 있는데 보직이 있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배로 피곤하다. 그래서 뒤론 간부를 맡을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고 나 할일 정도만 열심히 하자는 주의가 되었는데, 그래도 수료 대대장은 한번 해보고 싶어서 지원했었다. 경쟁의 결과 마지막 2명까지는 갔으나 다른 동기에게 최종적으로 밀려 대대장은 결국 해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적당히 수료만 했어도 되는 일인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는데, 실무 나가면 통역장교는 자기가 병력을 다루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그런 아쉬움에서 뭔가 "장교"의 일이라고 만한 것들은 여기서가 끝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에서 더욱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디스했지만 사랑한다 1소대 동기들아  (가장 좌측 "대장" 완장이 본인)


첫주라 아무래도 정신 없이 흘러간 시간들이고, 뭔가 잘못 엮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래도 벚꽃 아래에서 찍은 사진에서 웃고 있던 저 사진 만큼은 진심이었다. 이때에는 오히려 아직 군복 입고 있다는 거 자체에 대한 설렘이 있었기 때문이다. 



4. 망해봉 행군 - 장교대 망신 좀 시키지 마라. 

1주차의 하이라이트는 장교대 뒷산인 망해봉을 오르는 것인데, 망해봉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정말 그냥 동네 뒷산정도의 언덕이다. 그렇지만 아직 적응되지 않은 군화와 (이때만 해도 신형 트렉스타 군화 아니고 예전 가죽화였다.) 몸에 베인 피곤함, 단체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익숙치 않음, 올라오지 않은 체력으로 인하여 무슨 에베레스트 오르는 것 같은 결기를 가지고 올랐다. 체력이 특히 쳐지는 동기생들을 막 이고 지고 끌고 올라가면서 "동기야 힘내쟈" 이러면서 갖은 오바를 하면서 올랐는데, 훈련관님이 저 산 밑에 특전단 (UDT) 도 있는데 장교된다는 놈들이 뒷산 오르면서 그런 소리 내면 다 들려서 쪽 팔리니 제발 좀 조용히 오르라고 하셨다. 우리는 부끄러워져서 그 뒤로는 오바 안하고 조용히 올랐다. 

좌측 가장 뒤 기수 (류군) 옆 쪼개는 자 본인. 무엇이 좋다고 웃고 있는가! 

그렇게 한주가 저물었고, 소대장 보직은 한주씩 돌아가면서 했기에 나는 다행히 죽지 않고 소대장 역할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 편은 간단히 종교활동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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