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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May 13. 2023

해군통역장교수기: 05-군인화 단계 (3) 종교활동

초코파이와 음료수가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어라

삭막한 훈련소에도 훈련관들의 눈을 피할수 있는 시간이 잠깐 씩 주어지니, 그것이 바로 종교활동이다. 훈련기간 중 종교활동은 후보생들이 정신줄 놓지 않고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훈련을 마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나는 종교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일종의 '소도'의 원형을 경험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1. 온통 국방생 가운데 조금의 색채로 숨통을 틔워주다 


우리 훈련관님은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었는데, 그 분이 우리 입소후에 훈련 단계에서는 각자 개성 있게 살아온 개인들을 통일되게 '국방색'으로 칠하고, 그 뒤에 그 가운데서 각자가 다시 개성을 '뽕'하고 올려오는 것이라고 그 과정이라고 하셨었는데, 그렇게 갑작스레 온갖군데게 '국방색'으로 칙칙하게 칠해져가던 후보생들에게 주말 종교활동이란 그야말로 유일하게 '국방색' 단색 외의 색채들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윽박지르기만 하지 않고 상냥하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을 입소 후 거의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생각해보면 매 기수 반복해서 이런 굳어 있는 젊은이들을 보아온 해사 교회 / 성당 / 법당의 목사 / 신부 / 스님들께서는 마냥 얼어있는 후보생들이 그냥 귀여워 보이기도 했을 것 같다. 세상 굳은 얼굴로 11주면 지나갈 일들에 잔뜩 얼어있는 그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각설하고, 아무튼 잠시라도 허점을 보이면 날아오는 갈굼과 기합으로부터 잠시라도 숨통이 트이도록 놓여놨다는게 처음에는 실감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세례받은 카톨릭 신자여서 처음에는(왜 '처음에는' 인지는 아래에서 밝히겠다.)  성당에 갔는데 신부님도 사실은 훈련관들과 한통속이 아닐까, 여기서 우리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또 가서 갈굼 당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제분들은 그런 분들이 아니었다.  


해사 성당은 당시에 이렇게 생겼었다. 지금은 한층 더 좋게 개축되었다고 한다. 사진은 (https://news.cpbc.co.kr/article/432654) 에서 가져옴



2. 온통 훌쩍거리는 코 찔질이들


온통 비장하고 투박한 군가 (사실 해군 군가는 전장과 전투보다는 갈매기와 바다 그리고 아가씨를 더 많이 찾기하는 하다.)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전부이던 생활을 하다가, 외부와 떨어져 지낸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갑자기 따스하고 찬란한 색깔의 성가를 듣고 부르게 되니, 원래 있지도 않던 감상이 차올라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지더라. 내가 그랬다는 건 아니고, 문득 차오른 감상에 훌쩍거리고 우는 동기들도 더러 있었다. 짜슥들 울기는. 암튼 나는 아니었다. 네버. 아니었다. 절대. 



이미지 출처 : https://photo.catholic.or.kr/album/view.asp?menu=2&sub=3692&Page=72&id=14584&af=12 


해사 성당은 꽤 멋지게 지어진 건물이었고, 위에서 보듯이 햇살이 넉넉히 쏟아져들어오는 따사롭고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이러한 공간에서 폭풍같이 몰아치는 훈련관들의 손길을 벗어나 평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지만, 이 곳은 우리의 보다 세속적인 욕망들 역시 충족되는 공간이었다. 초코파이와 음료수가 젖과 꿀 처럼 흘러 넘치던 약속의 땅이었던 것이다.




3. 초코파이와 음료수가 흘러넘치는 약속의 땅


해사에는 세 가지의 종교 기관이 있었다 개신교 교회, 카톨릭 성당, 그리고 불교 법당. 이 세 성소는 후보생들의 입소 기간 중에 나름의 경쟁관계에 있다. 신규 신자를 영입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국 각지의 각군 훈련소에서는 아주 가열찬 영입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해사 내에서 세 성소의 목사, 신부, 스님께서는 서로 협의하시어 지나친 경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나름의 기준을 세우셨다. 간식과 음료수 등 먹거리를 이용한 유인전략의 품종을 제한한 것이다. 간식은 오로지 초코파이만 제공하며, 음료수는 탄산음료에 한하여 제공한다는 나름의 신사협정을 맺으신 것이다. 하지만 각자가 그래도 뭔가 우위를 둘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름의 구멍을 남겨둔 것은, 초코파이와 음료수의 양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이었다. 해사 내의 세 성소는 군대 내에서도 예산이 풍부한 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후보생들의 수는 많지가 않다. 그러므로 후보생들을 다 감당하기 위한 수량의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공급한다고 하여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후보생들에게는 사실상 무제한의 초코파이와 음료수가 공급되었다. 첫주에는 초코파이만 미사 끝나고 한 자리에서 연달아 



4. 아침이 밝기 전에 세번 예수님을 부정하다.


베드로 급의 배교는 아니었지만 나는 법당에 다녀온 동기들에게서 여러차례 반복하여 그 곳이 얼마나 극락같은 곳인지에 대하여 듣고 있었다. 법사님께서는 주어진 시간 중에 15분만에 설법을 마치시고 아무도 찾지 않는 법당 위 공간으로 인도하시어 심지어 후보생들이 누워서 잠을 청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아무거나 다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어떠한 그러한 세속적인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타 종교에 대한 호기심으로서 카톨릭 신자로서 견문을 넓히고 이해의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 다른 동기들을 따라서 세번 정도는 법당에 갔다. 그곳은 말로 듣던 바와 같이 극한의 자유와 무한의 간식이 제공되는 곳이었지만,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간 것은 역시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던 것은 아니고 정말 좋았다. 


하지만 실제로 불교교리를 처음 접해보는 자리이기도 했는데, 설법의 말씀들이 사뭇 매력적이었다. 그 중에 그 당시에는 와 닿지 않았으나 나중에 무릎을 치며 그렇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기쁨의 원인이 되는 것 조차 그것이 사라지면 고통이 되니 그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때는 나에게 기쁨을 주는 모든 것들에 그저 감사하기만 한데, 그것을 잘 지키면되지 왜 그런 것에 대한 갈망 조차 버려야 하나 라고 생각했는데, 임관 후 그 때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는, 아 아주 큰 기쁨의 원인이 되는 것은 그것이 사라지면 아주 큰 고통의 원인이 되는구나. 일체의 집착은 나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구나를 아주 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설법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여담인데,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하면서 외우는 반야심경 독경 역시 뭔가 마음에 평화로움을 심어주고 입안에 맴도는 느낌이라 좋았었다.  


아무튼 그렇다고 내가 종교를 스위치 한 건 아니고, 나는 다시 임관에 앞선 몆주간은 성당으로 돌아갔다. 잠깐의 호기심 기행은 이해하여 주시리라 생각하며.


5. 그의 신앙의 깊이는 세속의 유혹을 이겨낼 것인가?  


 우리 동기들 가운데 이스라엘 분과 결혼하여 유대교로 개종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종교를 강요할 수 없으니, 종교활동을 가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경우 조용히 자기 방에서 자신의 종교에 맞는 종교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선택지를 주었다. 그렇지만 다들 종교활동에 가서 자유를 만끽하고 초코파이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는데,  이 친구는 오로지 방 안에서 눕지도 못하고 딴짓도 못하고 종교서적이나 읽고 있었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몇주가 지나자 동굴수행을 버티지 못하고 광야로 나와 우리와 함께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즐겼다.  이 동기는 항해병과로 임관해서 나중에 통역으로 전환해서 통역 동기로 같이 군 생활을 마쳤고 지금은 이스라엘에서 산다.  




아무튼 그래서 종교활동이 없었다면 분명히 우리는 심리적으로 적응이 더 어려웠을 것이고, 지금은 아무런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이지만 그 때의 성당과 법당의 기억 만큼은 너무 좋은 시간들로 기억된다. 나는 가끔 신앙도 없으면서도 그 경건함을 느끼러 성당에 가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런 것과 별개로 전투와 죽음을 매개로 하는 군대라는 집단에 개인의 성향과 별도로 종교라는 것이 빠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서 너무 그런 것들을 부정하지는 않고자 한다. 사람에게 자신만의 능력과 소망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구성된 실체라 하더라도 기댈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점은 왠지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랄까. 


이야기하다보니, 왠지 한번쯤은 쫓기는 후보생의 마음이 아닌 여유 있는 마음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던 아름다운 해사 성당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화에서는 다시 훈련 이야기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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