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새벽 May 19. 2024

해군통역장교 수기 06 : 군인화단계(4) 산성산 행군





0. 조금의 적응


변화된 생활패턴에 사람이 적응하는데는 3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사실 이건 어떤 검증된 자료에서 접한 것은 아니고, 입대 후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후보생들 건강 체크해주시던 간호장교님이 처음에 적응안되어서 힘들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주셨던 말씀인거 같은데, 실제로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들은 것인지는 조금 가물가물하기는 하다. 다만, '오 그렇다면 3주만 어찌어찌 버티면 적응도 더 되고 지낼만 하겠네'라는 생각에 무언가 기운낼 힘을 주었던 거 같기는 하다. 실제로 천천히 강도를 올리는 훈련도, 딱 짜여진 통제된 생활도 가입소 포함해서 3주째로 접어들면서 할만해지는 것 같았다. 


1. 사관후보생의 고향은 동편광장 


앞선 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해군 OCS의 요람은 사관학교 부지에서 언덕 하나를 지나 진해 해군 기지 내 가장 동쪽 끝의 외진 자리에 위치한 제2세병관(제1세병관은 사관생도들의 생도사)이다. 제2세병관의 동쪽 끝자락에는 아스팔트 쳐진 주차장 비스무리한 공간이 있는데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 공터를 동쪽에 있는 광장이라고 하여 동편광장이라고 하였다. 주된 교육 훈련은 제2세병관 앞의 넓직한 연병장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동편광장은 식사 전, 각종 이동시 집결 장소이자 간단하게 털릴 일이 있을 때 우리를 맞아주던 포근하면서도 즐겁지만은 아닌 그러한 공간이었다. 동편광장에서 우리는 수많은 '구부려'를 경험했는데, 처음에는 자잘한 돌들도 많은 까슬한 아스팔트 바닥에 맨손바닥으로 엎드려 뻗치는 것이 힘들었는데, 자꾸 하다보니 익숙해져서 별 신경쓰이지 않게 되었다. 사실 나중으로 갈수록 맨몸으로 구부려 정도는 그냥 주의환기 정도의 목적이지 정말 얼차려의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할만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무수한 많은 추억을 후보생들은 이 동편광장에서 쌓아서 나가게 된다. 사실 항상 갈굼의 위협 속에서 갇혀지낸다는 것을 빼면 동편광장은 진해 바다가 바로 보이는 꽤 아름다운 풍광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2. 규율 위반자 색출


이 이벤트는 정말 2주차에 있던 것인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비교적 초반에 있었던 것 같고 아주 들어가자 마자는 아니었던 것 같아서 이 즈음에 일어난 일이 맞지 않나 싶다. 식사를 마치고 점호 준비를 하던 때 정도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점호 이후였던 것 같기도 하고, 점호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과를 다 마친 저녁시간이었다. 갑자기 후보생 전원을 동편광장에 집합시켰다. 일과는 다 끝난 상황이었고 특별히 찐빠낸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단위로 집합시킬 일이 무엇인지 다들 얼떨떨했지만 딸려나가 있었는데 훈련관님들이 분위기를 엄하게 잡더니 어딘가에서 담배꽁초가 발견되었다면서 후보생들 중에 흡연한 사람을 색출하겠다고 하였다. 원칙적으로 교육중 흡연은 퇴교 사유다. 훈련관님들은 지금 이실직고하면 과실점 정도로 용서해주겠다고 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나오는 사람이 없었고. 우리의 밤은 깊어져 가기만 했다. 아닌 밤중에 얼차려 속에서 훈련관님들은 위반자의 이기심으로 동기들 전체가 고통 받는데도 숨어있다면서 심리적으로 더 압박을 가했다. 나는 조금 순진해서 진짜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고 뒤처리도 제대로 못해서 걸린 것인줄 알았는데, 눈치 빠른 동기들은 사실 흡연 사실 적발은 핑계이고 군기 잡기 위해서 연출한 것일 거라고 하였다. 그때는 긴가민가했했는데, 전후로 사실 한번도 흡연이 문제된 적은 없었고 실제로 몰래 숨어서 담배를 필만한 여유도 공간도 없었음을 생각하면 중간에 한번 군기잡기 이벤트가 맞았던 것은 같다. 실제 진실은 지금도 모르는데, 훈련관님들게 한번 여쭙고는 싶어지네. 아무튼, 흡연자가 있었던 없었던, 규율 위반의 경우에 동기들이 단체로 털리고 힘들어지고 누군가 안다면 동기들로부터 엄청난 압박( peer pressure )를 받게 될 것임을 각인시킨 이벤트였기 때문에 앞으로의 훈련과정에서 섣불리 독단적인 위규행위를 하기 어렵게 하는 위하효과는 확실히 있었다고 본다. 혹시 입대하게 되시는 사관후보생 여러분은 이런 이벤트가 발생하여도 연출의 가능성이 있으니 알 수 없는 동기를 너무 원망치 마시고 체력훈련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즐거이 받아들이시기를 부탁드린다.      



3. 산성산 행군 


산성산은 겨우 400고지 정도되는 야트막한 산이다. 사실 '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정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군장을 매고 하는 첫 산악?행군이었기 때문에 다들 나름의 긴장을 하고 있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4월을 맞아 조금 따듯해진 날씨에 어쨌든 든 주둔지를 벗어나 이동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설렘도 있지 않았는가 싶다. 동네 뒷산인 망해봉을 단독군장도 아니고 전투복에 총 하나 달랑 메고 가면서도 무슨 고산 등반 하는 것처럼 극적으로 올락가던 우리였는데, 한주 상간인데 군장메고 올라가는 산행이 훨씬 걸음이 가벼워졌다. 처음에는 그냥 일상에서 무거운 군화 신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에 대한 적응도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가입소 포함) 3주차 막바지라고 얼추 몸이 적응한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산행은 꽤 POD 상에 중요한 훈련 마일스톤으로 들어가 있던거 같은데 막상 크게 힘든거 없이 즐겁게 다녀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해사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기합과 얼차려가 급격히 줄어들고 큰 찐빠만 안내면 비교적 오히려 건드리는 사람 없이 스윽 잘 시간 보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것도 같다. 정상 도달해서는 빵과 간식도 더 챙겨주고 아무튼 갈굼에서 벗어나 비교적 저강도 신체활동으로 시간을 보냈기에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군장 메고 온종일 걷고 산 타다 왔으니 피곤하기는 피곤했을 것이다.  


여담인데 그때 우리 전투화는 신형 전투화가 막 보급되고 있던 때라 후보생때는 구형 전투화를 지급 받았었는데, 그 때는 그냥 주니까 이게 전투화인가 보다 무겁고 힘드네 하고 말았는데 실무 나와서 나중에 피복비로 신형 구해서 신고 다녀보니 정말 천지차이였다. 


처음엔 전투화가 길들여지기 전에는 뒤꿈치라든지 마찰이 있는 곳에 상처가 나기도 하는데, 나도 뒷꿈치가 많이 까져서 신고 벗을 때 마다 몹시 괴로웠었다. 신발을 벗고 신고를 반복하고 계속 마찰이 있으니까 좀처럼 피딱지가 제대로 얹힐 수가 없었다. 중간 중간 의료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해사 의무대에서 사람들 모아서 치료를 받고는 했었는데, 사실 왠만하면 안 가려고 한다 다들. 왔다 갔다가 귀찮기도 하고 괜히 훈련관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도 뒤꿈치는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서 다음번 의무대 모아서 갈 때 따라갔었다. 이게 언제쯤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한데, 뭔가 날씨가 봄바람 불고 살랑살랑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해사 쪽으로 거의 처음 가본 느낌이었으니 훈련 초반기인 이때쯤이었던거 같다. 그 때 인솔한 훈련관은 우리 1소대 훈련관님이셨는데, 덕분에 가는 길에 조금 더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가서 군의관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때 나는 입대 후 가장 충격적인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군의관은 하의 구형 전투복 바지, 상의 해군 츄리닝, 신발은 보급 쓰레빠를 질질 끌고 진료실도 아니고 어딘가 쳐박혀 있다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채 나타났다. 시발 이게 뭐지. 경악스러움 그 자체였다. 우리는 기합이 잔뜩 들어가고 있던 후보생 신분인데 실무에서 가장 빠질데로 빠진 군의관을 직접 목도하니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때 우리는 한참 군인정신 주입 중이었기에 나는 그 군의관이 혐오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미친 새끼 아닌가. 저러고 근무를 한다고? 실무에 나와서 생활해보고는 거기에 대해서 충격을 덜 느끼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 군의관은 단기 군의관들 중에서도 폐급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근무 태도가 심히 불량했고 생도들과 후보생들을 주로 보는 것일 텐데 그 따위로 복무하는게 영 보기 좋지가 않았다. 다만 진료를 안 보는 정도까지는 아니라 간단한 소독과 항생제 같은 것들을 처방해주었는데, 그러면서 내게 환부를 습하지 않게 드라이하게 유지하라고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외관만 폐급이고 뭐 나름 일을 안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는지도 아니면 정말 말년 군의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보기가 너무 나빴고, 후보생 입장에서는 경악 뿐이었다. 그렇게 뒷꿈치에 소독하고 드레싱 하고 약 받아서 돌아가는데, 훈련관님이 그래 너 발은 뭐라던 하시기에, 네 환부를 습기 차지 않게 잘 관리하랍니다. 했더니, 훈련관님이 아니 맨날 하루 종일 군화신고 훈련 받는 애들이 환부를 어떻게 드라이하게 유지하나, 라면서 역정을 내주셨는데, 사실 군의관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틀린말을 한 것도 아니지만 뭔가 나도 석연치 않아 짜증나던 차에 편 들어주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반가웠다. 그 후로는 세병관에 비치된 상비약으로 그냥 내가 드레싱 바꿔 가면서 자체 조치했고, 사실 한 3,4주차 부터는 발도 적응하고 신발 가죽도 조금 말랑해져서 큰 고통 없이 지냈고 구보도 행군도 오히려 약간 헐렁한 군화의 감각에 적응되어서 별로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4. 목욕탕 개방 


 제2세병관 안에는 훈련과 교육을 그리고 생활을 위한 모든 시설이 다 밀집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군 부대 시설로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목욕탕이었다. 목욕탕은 지하에 있었는데, 관리 인원도 얼마 없는 장교교육대대에서 상시적으로 목욕탕을 운영할 수는 없기에, 특별히 고생한 것 같은 날에 맞추어 개방을 했다. 산성산 행군 처럼 뭔가 밖에서 고생하고 온 날 약간의 보상처럼 열어주고는 했던 것이다. 사실 장교교육대대의 경우에는 인원 대비 샤워실이 결코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침 저녁 점호시간 전후의 개인 행정 시간에 씼어야 하는데 그 인원이 다 넉넉히 여유롭게 샤워를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 하나 해군 장교교육대대의 장점은 적어도 온수는 연중무휴 24시 공급된다는 점이다. 세병관에서 지내면서는 적어도 단 한번도 찬물 샤워는 할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모처럼 뜨근한 물에 몸 담그고 긴장을 풀 수 있는 목욕탕 개방은 여러모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훈련관들도 목욕탕 까지 와서 우리를 털거나 하지는 (잘) 안았기 때문에 거기서는 심리적으로 이완되는 것도 있기도 했다. (물론 한번은 작정하고 털린 적이 있는데 그 꼴이 꽤 우스웠는데, 이 얘긴 차차) 사실 군인화 단계 중에는 정말 하루도 편히 잘 날이 없고, 일과 마친후에도 점호 시간에 간단히 넘어가는 법 없이 매일이 털리는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소소한 재미들이 생활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다음 에피소드로는 나에게 처음으로 비극을 안긴 화생방 훈련 에피소드로 찾아오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