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4일 월요일
최근 내 하루를 설명해볼까. 일어나서 씻고 물을 한 잔 떠서 책상 앞에 앉는다. 재택근무의 출근이다. 전날 업무 모니터링을 하고 나면 첫 끼니를 챙기는 점심시간이 된다. 밥 먹는 속도가 원체 빨라서 후루룩 먹고 카페에서 내 몫과 엄마 몫의 커피 두 잔을 테이크 아웃해오는 데에 한 시간이 좀 안 걸린다. 눈누 화장실을 치워주고, 패턴이 정해진 놀이를 함께 하며 남은 점심시간을 보낸다. 다른 사람들도 자리로 돌아왔겠다 싶을 때쯤 다시 일을 시작한다. 업무들을 하나둘씩 진행해 쳐내다 보면 퇴근시간이다. 앉아있던 자리에서 퇴근을 하고, 곧바로 저녁을 먹는다. 그 후엔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집 근처를 산책한다. 요즘 하늘은 누가 보아도 감탄할 만큼 참 예뻐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 틈틈이 포켓몬도 잡는다. 집에 돌아와 방청소를 하고 책을 읽는다. 읽던 책이 좀 물리면 일기를 쓴다. 그리고 게임을 하거나 영화 또는 유튜브를 보다가 잠을 청한다. 매일이 거의 똑같이 흐른다. 그리고 이렇게 보내는 요즘의 매일이, 높은 확률로 우울하다.
약간 어리둥절한 우울감이다. 사건은 없다. 매일매일이 소박하다. 근데 대체 왜 우울한 거지? 다행인 건 '어리둥절한 덕분에' 깊이 빠져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보다 객관적으로 이 감정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의아한 채로 고민하다가 오늘 결론이 섰다. 규칙적인 생활 자체가 현재 내 우울감의 이유였다.
단 한 번의 흐트러짐이나 이탈 없이, 계속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그 안에 '규칙'은 있으나 '계획'은 없다. 이루고 싶은 무언가는 없고 현상 유지에 대한 욕구만 있다. 우스운 기분이 든다. 늘 목표를 세우고 또 향하여 살았던 삶이 몹시 피로하게 느껴지던 차에, 올해만큼은 소소한 습관들을 쌓는 일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던 건데 말이다. 뭐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좋지 않다고 정신과 몸이 내게 말해주고 싶은 걸까? 으레 그랬듯, 또 메모장을 꺼내서 목표를 세워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렇게 접어드는 반복의 국면이 뻔하다거나 지겹지는 않다. 도리어 익숙해서 기쁘다. 한동안 너무 오래 들어 질렸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 구석에 처박아 뒀다가, 오랜만에 다시 들었을 때 느껴지는 반가운 행복 같다. 이러다 또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이 그리워지겠지. 적어도 지금은 분명히 알겠다. 소소한 규칙들이 한동안 나를 구원했지만, 가끔은 담대한 계획 역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