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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Jan 10. 2021

그 영화는 정말 재밌었을까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을 읽고

코로나19 유행 탓에, 어떤 때보다 영화관 나들이가 어려웠던 2020년이었다. 와중에 극장을 찾아보았던 ‘범죄 누아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오래도록 잊히질 않는다. 고풍스러운 동양식 주택에 적막한 기운이 감돈다.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의 시신이 누워 있는 욕실 바닥이 보인다. 곧이어 카메라는 그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몸에 무시무시한 문신을 한 남성의 모습을 포착한다. 영화를 본지 수개월이 지나서도 이 장면이 떠오르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끝까지 이 여성이 누구였는지, 왜 죽임을 당했는지 영화의 어느 지점에서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 여성은 그저 남성의 잔인무도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


좋아하는 만큼 무기력해진다

나는 영화라는 매체를 몹시 좋아한다. 스무 살을 넘기고 소위 어른이 되어야 누릴 수 있다는 자유들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내게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던 재미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영화를 보며 울고, 웃고 또 생각하는 일이 귀중한 습관이 됐을 무렵, 나는 ‘이 정도면 영화로도 세상을 배울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접하는 영화들이 많아질수록 다른 생각 역시 고개를 들었다. ‘이게 정말 세상일까?’ 그렇게 영화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창작물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 뒤에 찾은 게 책이었다. 영화를 보고 밀려오는 허무를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책이겠구나, 싶었다. 언젠가 책에서도 빈 부분을 찾고야 말 테지만. 분명 이런 측면에서 영화와 책은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이하 <범죄영화 프로파일>)>은 범죄영화를 볼 때마다 부유하는 빈 부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동명의 팟캐스트 내용을 글로 엮은 이 책은 국내외 범죄영화에서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여기에 정말 문제가 없는지 전문가의 시선으로 짚는다. 실제 책의 각 파트는 ‘가스라이팅, 사랑이라는 이름의 범죄’, ‘빙의, 과학 수사 역시 간과했을지 모를 세계’, ‘빈곤 계층 혐오를 정당화하는 공포 영화’ 등의 제목을 달고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감정을 대안으로 이어가는 일

책은 꾸준히 ‘법제화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지난해 봤던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가 오버랩됐다. 할리우드 시장의 여성인력 차별을 다룬 이 작품에서 한 출연자가 이런 말을 한다. "변화를 위해선 법이 중요해요. 생각과 마음은 못 바꿔도 결과가 나타나거든요. 법은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건 굉장히 중요한 결과예요." 범죄영화 또는 실제 사건을 볼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기력감과 분노를 경험한다. 그때마다 감정을 한가득 실어 주변 사람들에게 ‘이건 나빠, 해결되어야 해!’라고 끊임없이 외치면서도 실제 ‘어떤 대안’이 구체적으로 필요한지 쉽게 내놓지 못했던 지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사건의 심각성과 개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작업은 두 번 말해도 부족할 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핵심은 ‘그래서 어떻게’로 향해야 한다.


<범죄영화 프로파일>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친족에 대한 범죄 통계는 산출되고 있지만, 그중 ‘부부간’ 폭력의 수치는 얼마인지 현재의 통계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저 여자/남자로만 나뉘어 전산에 입력되기 때문에 그 여자가 어머니인지, 아내인지, 딸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소년원이 교육 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알지 못했던 부분이다. 상습 범죄자의 증가로 소년원은 과밀 수용이 큰 문젯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관리 인력당 감화해야 할 아이들의 수가 턱없이 많다 보니, 제대로 된 사후관리가 이뤄질 수 없는 것도 큰 문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실 관계들이 책에서 언급된다. 변하지 않는 세상을 보고 느끼는 분노, 타인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은 분명한 법적 개선에 대한 의지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범죄영화 프로파일>은 꾸준히 역설한다.


연이어 보도되는 사건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전문가인 필자들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조금씩 바뀌어 가는 과정적 측면에 희망을 품고, 다시금 시동을 건다. 이수정 교수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현실에 난색을 보이면서도, 실제 사법 영역에서 발전 혹은 개선이 이뤄진 부분에 대해서는 꾸준히 ‘그래도 나아지고 있습니다’라 말한다. DNA법이 통과된 2010년 이래로, 강력 범죄로 수사를 받은 피의자나 재소자들의 DNA를 데이터베이스화한 덕분에 화성 연쇄 살인 8차 사건 속 무고함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도 그 사례 중 하나다. 당장 모든 범죄를 해결할 수 없을지 몰라도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사람들 덕분일 테다.


어디까지 미화할 것인가

가출 청소년 대상 범죄를 다룬 영화를 분석하는 대목에서 교수는 말한다. "이런 주제를 너무 선정적이지 않게 고발하는 영화들이 많아야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공감하고 의식 공유가 될 듯합니다." 많은 영화가 범죄를 지나치게 낭만화한다. 피치 못할 사연 때문에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 모성애 같은 추상적 이유로 가해자를 끝까지 보듬는 피해자, 외국인 노동자를 지나치게 무섭게 그리는 작품들. 장르적 특성에 충실하겠다고 만든 장치들은 되려 현실 속에 잘못된 선입견을 주입한다. 영화로 세상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는 약간의 정도 차만 생겼을 뿐, 여전히 나는 영화를 믿는다. 그래서 그 어느 곳보다 바뀌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무의미한 폭력을 서사 혹은 묘사에 포함하지 않고, 자극적 장면 대신 문제 사안을 고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내러티브를 찾는 작업은 범죄 영화 장르에 매료된 창작자와 대중이라면 분명 기억해야 할 지점이다.


최근 큰 화제가 된 영아 학대 사건이 있었다. 모두가 분노했고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잠깐의 이슈로 끝나지 않기를 모두가 바랄 것이다. 요구되는 책임과 노력은 도처에 있다. 민간, 사법 영역 그리고 미디어 종사자들에게도. 우리가 느끼는 분노가 유의미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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