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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Jan 31. 2021

한 권에 삶 하나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일간 이슬아 수필집>, <보통의 언어들>

초등학교 교실 뒤편에 꽂혀있던 위인전 시리즈를 기억한다. 국적도, 직업도 다양한 위인들의 삶을 어린아이도 쉽게 이해할  있도록 배려한 큼직큼직한 삽화가 인상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나는, 위인들이 책에 적힌 그대로 생각하고  말했다 믿었다. 그럴  없는데 말이다. 당연히  대화나 독백들은, 역사적 사실 위에 책을 펴낸 이의 상상력이 가미된 각색이다. 하지만 어린 나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렸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실에 가까운 ‘사건보다, 각색에 가까운 ‘ 쉽게 감동받는 어린이였다점이다.  시절 제출한 독후감에는 종종 이런 문장이 적혔다. ‘ 힘들었던 순간, 우리의 위인 OO  말은, 나에게  힘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알고 싶은 인물을 ‘직접’ 고를 수 있는 나이가 됐다. 그런 충동이 들 때 산문집을 집는다. 위인전에 대한 오해 덕에, 내가 어떤 이야기에 감탄하고 힘을 얻는지 확실히 안다. 1월에 읽었던 책들 가운데 세 권이 이 맥락 위에 있고, 그들은 서로 비슷한 듯 다르다. 엄밀히 나누면 한 권은 산문이고(<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한 권은 수필이며(<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나머지 한 권은 에세이다(<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산문, 수필, 에세이. 여전히 이 세 장르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공통점을 떠올리는 건 쉽다. 그 어떤 장르보다 작가 개인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책들이다.


요즘은 책을 읽고 나서든, 영화를 보고 난 뒤이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일에 예전보다 조심을 기울이게 된다. 픽션일 경우에는 짜임새라든가, 그 안에서 붙잡은 혹은 놓친 윤리적 가치에 대해 나 먼저 똑바로 파악하고 쓰고자 한다. 더 어려운 것은 감상의 대상이 작자의 ‘생각’일 때다. 오랜 시간 바라보고 공들여 건져 올린 무언가라 여겨지기 때문일까. 잠깐 읽거나 보는 행위만으로 그 정성이 훅 느껴질수록 마음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럴 때일수록 ‘고마움’에 대해 써야겠다 다짐한다. 나는 세상 곳곳 많은 창작물에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살아온 사람이니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것들 없이는 나도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좋았던 문장들을 적어두는 것으로 그 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또 그중 몇 명이 이 정성스러운 생각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마음이 좋을 것 같다. 2021년의 첫 한 달, 책 한 권 마다 한 사람의 생각이 있었고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가득함을 기쁘게 보았다.



황현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이제는 고인이 된 저자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여러 지면에 기고했던 글을 한 데 모은 책이다. 개인적 경험 혹은 사회적 사건에 대한 관찰이 세밀한 것은 물론, 그로부터 비롯된 생각들도 인상적이다. 이 책이 나무였다면 정교하고 아름다운 나이테가 겹겹이 자국을 남기고 있을 것만 같다.


글에 의성어와 의태어를 많이 쓰게 되면 글 쓴 사람의 사고가 너무 단순하거나 게으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 있다. 이런 말들은 글에 현실감을 주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구체성을 없애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숲에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고 말할 때 ‘살랑살랑’은 바람의 세기와 성질을 어느 정도 전달하지만 그 바람을 개별화해주지는 않는다. ‘살랑살랑’을 쓸 수 있는 바람은 많지만 글 쓴 사람이 표현하려고 하는 바람, 그 시간 그 숲에 불었던 바람은 유일한 바람이다. 똑같은 바람이 두 번 다시 불지는 않는다.

-「다른 길」


어린 왕자는 여우의 종합으로부터 비밀한 지혜를 얻었지만,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자, 그 실천을 위해서 뱀의 분석을 선택했다. 지구는 어린 왕자를 바꿔놓았다. 오두막보다 더 크지 않은 별에 살던 이 우주의 시골뜨기는 벌써 권력자와 상인, 염세가와 허영 쟁이를 만났고, 착실한 공무원과 학자를 만났다. 어린 왕자는 그들이 어떻게 소외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자신도 더 이상 천진난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며, 그 사랑은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가 긴 편력 끝에 순진함을 지불하고 얻은 소득이었다.

 - 「『어린 왕자』에 관해, 새삼스럽게」


(…) 세상에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은 구의역의 수리공을 진실로 제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위선자가 아닌지 자문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위선자가 아닌지 자문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비록 위선적일지라도 그 생각을 마음에 새기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다. 그 많은 사람은 제 생각을 버선목처럼 까 보일 수 없다. 그 사람들과 나향욱들은 끝내 만날 수 없다. 그것이 충격적이다. 거기에는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상상력의 차이가 있다.  

- 「간접화의 세계」


내 욕망이 항상 나 자신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 「투표의 무의식」


한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 여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그 수동적 존재들을 통해서 남성적 세계의 적극성이 확인된다는 말인데, 남자다운 세계는 남자답지 않은 세계를 끝없이 생산할 때만 존속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거기에 바로 남자다운 세계의 아이러니가 있다.  

-  「풍속에 관해 글쓰기」


병을 친구로 삼는다는 말은 있어도 불안을 친구로 삼는다는 말은 없다. 끈질기게 찾아오는 불안과 마주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불안이 축복일 수도 없다. 불안의 저 검은 얼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것이 우리를 갉는 그 줄칼에 대해 노래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가 축복이라면 아마도 축복일 것이다.

-  「이 경쾌한 불안  - 김개미 시집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이슬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

하루 한 편의 수필을 이메일로 구독자에 발송하는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린 작가가 당시 썼던 글들을 엮은 책이다. 작가의 또 다른 직업이 글쓰기 선생님이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책이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처럼 읽히기도 했다. 힘을 준 서론은 자주 만나지만, 결론까지 탄탄한 글은 읽기도, 쓰기도 쉽지 않다. 이어지는 문장이 하나같이 독창적이라는 점 덕분에, 내가 쓰는 글들을 다시금 더 많이 돌아보게 됐다.


기도만으로도 하루를 채울 수 있었지만 기도 말고도 할 일은 많았으므로 생각날 때마다 재빨리 화살을 쏘듯 단기 속성으로 기도했다. 손을 모으지는 않았지만 분명 빌었다.

- 「2. 화살기도」


뭔가를 사랑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작은 가능성에도 성실해진다.

- 「9. 외박 (上)」


나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내가 된다. 그 사실이 지겨워 죽겠을 때가 있다.

 - 「21. 꿈꾼이」


친구 중에 미학을 전공한 애가 있다. 편의상 그녀를 댐이라고 부르겠다. 내 친구 댐이가 미학과에서 뭘 배웠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녀가 아주 많은 것들에 대해 잘 이야기한다는 것만 안다. 댐은 언제나 나보다 더 탁월하게 무엇을 해석하는데 그 이유는 걔가 나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그녀가 발명하고 건네준 칭찬 때문에 덜 울게 된 이들은 아주 많다.

- 「24. 생소한 아름다움」


무섭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이라 빨리 읽어나갈 수 없었다. 겪은 사람도 있고 쓴 사람도 있는데, 나는 고작 읽는 것도 두려워했다.

- 「45. 겁 많은 우리들」


빙판 위를 여러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돌고 있고 거기엔 분명한 흐름이 있댔다. 우리 같은 초심자가 아무렇게나 들어갔다가는 우리가 다치거나 그들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댔다.

- 「48. 우리를 빙판에 데려간 사람」


이렇게 못한다니 마음이 정말 편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은 대부분 내가 조금 잘하는 일이었다. 잘할 걸 알고 못하기 싫기 때문에 기대와 희망과 부담을 놓기 어려웠다.

- 「54. 잘 못하는데도 계속 하는 일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저자는 이 책에 ‘언어’에 대한 자신의 평소 생각들을 담았다. 마치 김이나식 단어 사전을 읽는 느낌이다. 원래의 사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의 생각이 원 정의보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적게는 하나, 많게는 수십 개의 문장으로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 일이다 보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표현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하지만 내게 소중한 이 과정이 타인에겐 유별난 예민함으로 받아들여져 자주 슬펐다. 그런 시기에 만난 이 책은 아주 적절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세상에는 분명, 나 같은 사람들이 있다!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기도, 주기도 한다. 모든 걸 무난하게 중화하려는 습관이, 그 당연한 감정에 불필요하게 많은 이유를 주렁주렁 달아줬던 것 같다. 상대방의 프레임에 갇혀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단순히 그 사람이 싫다고 단정 지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 「싫어하다 - 내게는 싫은 사람이 있어」


인간에게 ‘객관적’ 시각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나의 좋은 면에 투영시켜 좀 더 나은 세상을 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 「속이 보인다 - 경험치에 기반한 어른만의 언어」


잘못을 한 사람은 석고대죄라도 할 수 있지만, 잘못을 당한 사람은 사과를 받는다 하여도 그 사과가 소화되기까지 기다리는 것밖엔 할 수가 없다. 사과는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행위’이지만, 억울함과 분노는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 후련한 마음과 속 편한 기분이 눈치 없이 밀려와도 애써 밀어내기로 다짐했다.

- 「미안하다 - 털어내지 말고 심어둘 것」


목표가 지점으로써 존재한다면, 꿈은 장면으로 존재한다. 영화로 말하자면, 목표는 어느 만큼의 관객수를 동원할지, 얼마의 수익을 창출할지 등의 구체적인 ‘수치’를 다루는 이야기다. 반면 꿈은 미술을 논한다. 어떤 분위기의 장소, 어떤 색깔과 질감의 의상, 또 어떤 종류의 소품에 둘러싸인 주인공… 즉 나를 상상하는 것이 바로 꿈이다. 훌륭한 목표와 근사한 꿈, 어울리는 수식어도 각각 다르다. (…) 꿈은 목표와 성질이 다르기에, 반드시 이루지 않아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작가가 꿈인 사람은 글을 쓸 때 행복할 수 있다. 행복하기 때문에 거듭 글을 쓴 사람은 자연스레 필력이 늘고, 그러다 본격적으로 목표를 세웠을 때 꿈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 「꿈 - 꼭 이루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 것」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건 아주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토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

- 「정체성 - 나의 본모습이 혼란스러울 때」


새로운 기회가 오기까지 잠복하고 버티는 힘.

-「창작하다 - 영감과 체력의 긴밀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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