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픽션,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를 읽고
‘도시’라는 테마를 가진 대부분의 콘텐츠에 쉽게 매료되는 편이다. 도시에 대한 다큐멘터리, 책, 사진집들은 언제나 나의 위시리스트에 자리한다. 그 분야를 탐독하고 파헤치고 싶은 마음이라기보다, 그저 분위기를 향유하고 싶은 마음인지라 쌓인 지식은 거의 없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작지 않은 수도권 도시로 이사를 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부터는 매일을 서울 시내 도로와 고속도로 위를 오갔다. 이동수단으로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선호했는데 차창 밖으로 도심 풍경이 보였기 때문이다. 조화를 의도하지 않고 산발적으로 들어섰을 텐데도 묘하게 어우러진 상가들이 만든 빌딩숲, 같은 장소지만 아침 시간에 보이는 것과 저녁 시간에 보이는 것에 확연한 차이가 있는 거리. 분명 당시 그 풍경들을 보는 시간 만큼은 ‘현재’였지만, 희한하게도 그때마다 나는 ‘노스탤지어’를 느끼며 눈앞의 풍경들을 그리워하곤 했다.
<시티 픽션>으로부터 버스를 타던 그때와 비슷한 감흥을 받았다. 이 책에 담긴 단편들은 도시에 대한 구체적 묘사와 그 안에서 벌어질 법한 사회적, 개인적 이슈들을 각기 다른 무게로 담는다. 역세권 아파트 주민들의 크고 작은 욕망, 대도시에서 소도시로 돌아오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 종묘와 대림동, 울산, 밤섬 등 구체적 지명과 함께 전달되는 그곳만의 분위기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도시의 한순간을 포착한다.
나의 노스탤지어는 이 포착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온다. 그때, 그 도시의 건물과 가로수, 오가는 인파들을 관조할 무렵 내 안에 소용돌이쳤던 고민과 욕망은 오로지 그 시절만의 전유물이라는 자각. 그래서 조금 일찍 그리워했다. 다른 한쪽으론 인생이 여전히 계속될 것이란 사실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기에. 앞으로도 도시에 살면서, 도시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겠지.
K는 내게 지폐를 몇 장 건넸다. 우리는 오래되어 보이는 검은색 상자에 돈을 넣고 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차례로 눈을 감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이따금 새소리만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 일을 완전히 잊게 되길 빌었다. 나끼리 매일 싸우지 않고 내가 온전히 나 하나가 되길 빌었고 달의 뒷면처럼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은 나 자신을 내가 끝내 찾아내길 빌었다. 완전히 잊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 순간에도 그날의 기억은 떠오르지만...... 그래도.
- 「별일은 없고요?」, 이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