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빈
네이버의 웹툰 수십 개를 팔로우하여 즐겨 본다. 인기 웹툰의 기본 설정은 타임슬립/회귀! 거기에 다양한 배경을 설정하면 이야기의 기본 틀이 완성된다. 과거로 돌아간 절대고수, 과거로 돌아간 악덕 CEO,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소방관, 재입대만 7번째 한 군인 등등 기발한 이야기들이 자고 일어나면 새로 나오니 매일 출퇴근길에 한 편씩 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웹소설은 유명한 작품(<전지적 독자 시점>, <화산귀환>, <중증외상센터> 등)들을 좀 읽어봤는데, 진짜 끝내주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지만 남는 게 하나도 없어서 이를 악물고 읽지 않는다. OTT 드라마들도 정말 많이 봤는데 요즘엔 보지 않는다. 어릴 땐 주말 밤을 새워서 해외축구도 다 챙겨보고 아침엔 MLB도 챙겨봤는데 이젠 경기 결과나 가끔 하이라이트만 챙긴다. KBO는 아직도 끊지 못해서 마약보다 건강에 해로운 롯데 야구를 챙겨본다. (올시즌 꼬락서니 보니 접어야 할 듯)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즐길거리는 무척 많은데 책 읽는 일을 최우선순위에 놓으려고 나름 애쓰고 있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책도 마음만 먹으면 페이지터너들만 골라서 눈이 뻑뻑해질 때까지 하루 종일 몇 권이고 읽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양한 종류의 종이책을 읽으려고 애를 쓴다. 그럼에도 소설에 치우친 독서습관이 들었다. 여기까진 느슨하게 허용하자고 스스로를 달랜다. 매일 벽돌책을 읽고 내 것으로 만들거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 수행하듯 책을 읽을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가끔 자극적인 소재의 소설을 읽으면 억제하고 있던 도파민이 팡팡 터진다. 이 소설이 그렇다. 교보문고 스토리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좀비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졌는데, 하필 꼰대 상사와 MZ 신입과 함께 사무실에서 살아남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솔로 남자'를 그린 이야기다. 좀비들보다 무서운 상사와 신입의 수많은 클리셰가 주옥같이 펼쳐지는데 멈출 재간이 없어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다. 읽는 데 딱 한 시간 걸렸다. 웹소설처럼 남는 건 없다. 그래도 터져 나온 도파민에 붕 뜬 기분으로 집에 돌아갔다. 적당히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기 딱 좋은 소설인데 요즘 영화 시장이 다 망가져서 흥행은 어려워 보인다. 복잡한 설정이지만 끝까지 읽으면 감탄을 자아내는 그 유명한 <전지적 독자 시점>마저 대차게 말아먹은 영화계에 큰 희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