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
어떤 작가는 자기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소설을 쓴다. 단편집을 읽다 보면 특정한 설정이 반복되어 작가 프로필이나 인터뷰를 찾아보면 대부분 본인의 경험을 거푸집 삼아 소설을 쓴다.
박서련 작가님은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 <체공녀 강주룡>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인 여성 노동자(그런데 배경은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그리는가 하면, <폐월: 초선전>에선 우리가 모두 아는 삼국지의 초선을 주인공으로 한 줌의 설탕이 솜사탕으로 부풀듯 이야기를 뭉게뭉게 만들어 내고,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아들의 원활한 학교생활을 위해 게임을 배우는 엄마가 등장한다. 작가의 예전 직업이나 성장 배경 등을 조금도 파악할 수 없달까? 그래서 매번 새롭고 심지어 새로운 이야기들이 다 재미있다. 아,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여성인 점?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일곱 편 모두 공통적인 배경이 없다. 어리고 예쁜 후배에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50대 성우, 인공 자궁을 이식하여 임신 후 출산까지 성공하는 트랜스젠더, 학창 시절 알던 친구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다큐에 희귀병 환자로 출연하게 된 조연출, 대학교 친구와 함께 운영한 도서관에 그 친구의 죽음 이후 약속을 지키려고 불을 지르는 나,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전남편을 만나러 운전하는 중 살아남은 어린 남학생을 만난 나, 미스터리 쇼퍼 활동을 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호텔 투숙 바우처를 사용하며 직원에게 박한 평가를 하다가 입장이 바뀌게 되는 나. 모두 다른 배경에서 다른 인물들이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섬세한 문장이 더해지니 책을 읽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런 말을 한들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테고 이해받기를 기대하지도 않으니까 아무에게도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누군가는 이해하리라고 믿지만 그건 내게 직접 들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알아차려서라야 한다.
노안이라는 낱말의 질감은 오래 도망치다 마침내 붙잡힌 사람이 느낄 법한 무력감과 이상한 안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늙었구나. 모르지 않았으나 남의 입으로 듣고 싶지는 않은 말이었다.
작가님 본인도 항상 새로운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신다고 한다. 문단에 흔치 않은 장편소설을 뽑아내는 능력이 출중하기까지 하다. 이야기 주머니 마르지 않으려면 제가 뭘 해야 할까요? 아직 안 읽은 작품들도 챙겨서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