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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문형배

by 김알옹

우리 집 수건 중 가장 도톰하고 색깔이 예쁜 수건은, 아내가 2025년 4월 4일 윤석열 탄핵을 기념하여 친구와 제작한 진한 초록색 수건이다.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을 기념하며

그날 재택근무를 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판결 생중계를 보고 있는데 눈치 없는 상사가 전화해서 시답잖은 일로 시비를 걸어오던 기억이 난다. 20분가량의 긴 판결문을 읽느라 입 주변에 거품까지 살짝 낀 그 재판관님이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긴 시간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을 비로소 끌어내리는 순간은 2025년 올해의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피청구인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됩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


그 재판관님이 펴낸 책을 읽었다. 그동안 20여 년간 블로그를 해오셨고, 거기에 올린 글 중에 120편을 골라 책이 만들어졌다. 1부는 판사 생활을 하면서 소소하게 느낀 점들과 자신을 가다듬는 글들과 나무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며, 2부는 독서 일기모음인데 주로 법과 관련된 내용으로 소감을 작성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판사님이라니!) 3부는 법원 게시판에 올린 글들로 사법부의 실제 현안에 대한 조금 어려운 글들이다.


최근 읽은 정명원 검사님의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만큼의 유려한 글솜씨는 아니지만, 무뚝뚝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경상도 남자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 평생 만 권의 독서를 하겠다는 목표를 응원합니다. 그런데 롯데자이언츠의 우승은… 잘 모르겠어요…


탄핵 판결문을 통해 평생 글로 이뤄야 할 영광은 모두 누리셨으니 은퇴 후 행복하게 등산과 독서를 계속하시면서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쳐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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