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종이는 어제도 그대로 붙어있었고 한 달 전에도 그대로였으며 2년 전 내가 지금 회사에 면접을 보기 위해 온 날에도 거기 있었다.
그때와 다른 것은 시간이 지나 종이 색깔이 누렇게 된 것과 구석이 조금 찢어져서 보기 싫게 있다는 점뿐이었다.
내가 처음 이 안내글을 본 날. 그러니까 회사 면접을 보러 온 날에도
'사용하진 휴지는 쓰레기 통에 버려주세요'라는 오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담당자가 오타 실수를 했네 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2년이 지난 시점에도 그대로 있는 오타 안내문을 바라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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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 나의 일, 나의 일이 아닌 것
입사를 하고 나서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이건 도대체 누구 담당인데 아직도 이렇게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냥 내가 고쳐서 다시 붙여놓을까 라는 고민을 잠깐 하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타가 적힌 안내문을 나만 신경 쓰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니까 그냥 신경 쓰지 않기도 결정한 걸까?
만약 내가 오타를 고쳐서 다시 붙여놓지 않는다면 누군가 할까?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걸랄까?
이상한 호기심이 생겨 나는 오타가 적힌 안내문을 관찰하기로 결정했다.
관찰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이상한 호기심이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호기심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심지어 누구 하나 오타가 적힌 안내문을 고쳐볼 생각조차 안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 날은 점심시간 후 양치를 하면서 옆사람에게 질문을 했다.
"대리님. 거울에 붙어 있는 안내문 보셨어요? 혹시 오타 이상하지 않으세요?"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아니 전혀 예상조차 못했다.
"응? 이런 게 있었네. 맞아 오타가 있었네?"
이 대답에 나는 잠깐 멍하게 있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맞아. 이 문구 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왜 고쳐서 다시 붙이지 않는 걸까?"라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그는 나보다 더 오래전부터 오타가 적힌 안내문을 수 없이 봤을 텐데 어떻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구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만 내 일이 아니니깐 신경 쓰지 않는다.
'사용하진 휴지는 쓰레기 통에 버려주세요.'
내가 면접을 본 날 그리고 내가 화장실에서 이상한 안내문이라고 생각한 날 이후 그 자리 그대로 나를 제외한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있다.
어느 날 나는 화장실에서 오타가 적힌 이 안내문을 보는데 문뜩 우리가 일하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이 아니면 신경 쓰지 않고
내 일이 아니면 책임지기 싫고
내 일이 아니면 남이 하는 일이고
내 일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
오타가 적힌 안내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오타가 적힌 안내문을 봤음에도 보이지 않은 것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에서 시작한 관찰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사용하진 휴지는 쓰레기 통에 버려주세요 라고 적힌 안내문은 그 자리 그대로 그대로 있다.
거울에 붙은 오타가 적힌 안내문은 마치 우리가 서로 내 일이 아닌 것에 무관심한 것을 증명하듯이 그대로 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