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묻다: Q16
시대와 사람의 궁합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에 대해 얘기합니다. 사상가, 문학가 중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시각과 감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당대에 받아들여지면 혁명을 이끌지만, 너무 앞서갔다면 후대에서 재평가를 받게 됩니다.
축구의 경우, 시대에 따라 전술의 흐름이 바뀌고 그에 맞춰서 촉망받는 선수의 유형도 바뀝니다. 그래서 ‘이 선수가 10년 전에 태어났다면..’이라는 아쉬움을 가지기도 하죠. 현재의 축구에서는 다재다능함이 덕목입니다. 골만 넣어주면 되던 공격수가 이제는 패스도 잘하고 상대를 압박하고 열심히 뛰어다녀야 합니다. 골키퍼에게 양질의 패스 능력을 요구하는 시대이니 제가 축구를 보기 시작한 시점에 비해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Sean: 살면서 아빠와 시대가 잘 맞았다고 느낀 점이 있어요?
Tony: 큰 틀에서는 대한민국이란 땅에서 1970년 전후로 태어난 거. 대한민국이 성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무조건 성장의 과실을 먹는 게 있거든. 반대로 지금 세대는 노력을 해도 크게 받을 수 있는 거 없어. 노력 안해도 먹고는 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지.
커리어적으로는 항공 전공한 게 되게 재미났었는데, 시기가 너무 빨라서 항공산업이 전통 산업에 속했어. 그 이후나 지금 커리어를 시작했다면 스타트업처럼 할 수 있는게 많으니까 아쉽지. 그래도 항공 산업이 계속 커지니까 결과적으로 잘 선택했다고 느껴.
성향으로 보면 호기심이 많은 게 이런 변화하는 시기에 잘 맞는 것 같아. 역동적인 세상에서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 더 많이 시도하고 쫓아가니까 유리한 점이 있지.
사람은 시대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생각도 시대를 기반으로 형성되고 주변을 이루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또 시대적 한계로 능력을 펼치지 못하기도 합니다. 거대한 흐름 앞에서 인간은 작은 존재 같습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아 무력해집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상상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현 시점에 알맞는 유형의 축구선수는 성장기에 지금을 예측하지 못했을 겁니다. 축구를 열심히 했고 우연히 현대 축구의 흐름을 타게 된 것입니다. 흐름에 맞지 않는 선수도 어디선가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과거에서 잘했으리라는 얘기는 재밌는 상상에 불가합니다. 어느 팀에서라도 중용되고 팬들에게 사랑받는다면, 충분히 성공한 선수입니다. 때로는 우리 팀의 해결사가 세계 최고의 선수보다 사랑스럽습니다.
삶은 많은 요소가 얽혀서 단정지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바라보며 아쉬워하기 보다는 현재에 충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것조차 제게 어려운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