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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Sep 26. 2024

공부하는 마음

내 안에 답이 있다, 고 믿고 싶다

학교를 벗어나 파견 나갈 기회를 잡고 싶어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십 년 만에 하는 시험공부다. 예상 문제에 주관식 답안을 작성하는 일. 분명히 여러 차례 읽었는데도 빈 종이를 마주하면 문장은 엉망이고 얼렁뚱땅 쓰인다. 이 답안이 채점자의 마음에 들 리 없다.

하루는 의욕에 차서 신중하게 밑줄 긋고 신나게 써 내려간다. 그다음 날엔 지쳐서 책을 펼치지도 못하고, 또 하루는 책과 공책을 앞에 두고 이렇게 해서 합격하겠나 근심만 하고 앉았다. 공부해야 한다고 가고 싶은 북토크도 마음 접고, 매달 하는 독서모임도 한 회차 빠지겠다고, 다음에 하자고 미루었다. 최애 책방 방문도 줄이고 나니 삶의 낙이 사라진 듯했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읽던 책들도 당연히 그 수가 확 줄었다.


시작의 마음을 돌아본다. 아들 둘은 내 손을 벗어나는 중이고, 나는 그 틈을 타 이십 년째 하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 중학생들과의 나날은 내게 기운을 줄 때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크게 에너지를 소진시키므로 나를 새롭게 할 기회가 필요했다. 학교를 떠나고 싶어서 공부하는 건가 싶다가도, 학생들과의 수업을 위해 하는 공부인 걸. 새로운 환경에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나를 채우고 나면, 중학생들과의 부대낌이 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으리.

책들을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아놓고 무얼 공부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옆에서 남편은 ‘책들이, 참 공부하기 싫겠다’ 했지만 나는 문학 공부가 재미있고, 예전에 대학에서 듣던 강의 생각도 나서 애틋했다. 오랜만에 연필, 색연필을 들고 책에 여러 번 밑줄 긋는 기분이 좋았고, 도서관에 앉아 집중하는 순간이 좋았다. 여름 방학 가장 흐뭇했던 하루를 떠올리자면, 하루에 두 번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던 날이었다. 공부하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공부하는 내가 좋은 것과는 별개로 마음 가운데 심란함이 크게 자리 잡았다. 공부의 괴로움이라고 한다면 실제로 공부하는 게 어렵다기보다는 그에 수반되는 정신적인 걱정 때문이리라. 일요일 오전, 아들 하나는 학원엘 안 가겠다고 집에 있고, 당장 시험이 코앞인 아들 하나는 도서관 가기 싫다며 뒹굴거리고 있는 때, 나는 공부를 하겠다고 도서관에 혼자 가는 게 맞는 것인가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이 먼저여야 되는데 내가 엄마 역할을 안 하고 나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건 아닌가 싶고. 내가 정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나 의심하기도 하고, 이렇게 공부하는 게 맞나 자신도 없다. 공부한다고 여기저기 말해두었는데 불합격하면 창피할 텐데 어쩌나 싶은 마음도 있다. 도서관이 아닌 집에서 공부한다고 앉아있노라면 이 생각 저 생각이 나를 들쑤시고 집중력을 잃게 한다.


최근의 일기장엔 거의 매일 공부에 관한 고민이 들었다. 내 안에 뭔가를 비워내야 공부 내용이 들어가는 듯해서, 교재를 펴기 전에는 일기 쓰기가 루틴이 되었다. 꼬박꼬박 일기는 썼지만 공부는 못한 날도 많다. 그동안 내 일기장이 브런치에 쓸 글감을 제공하곤 했지만 요새는 대부분이 공부 얘기라 쓸 거리도 막혔다. 그래서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써 보아야 했다. 이렇게 쓰고 나면 또 책을 펴고, 답안을 써보고 하는 힘이 날 것 같다.


지지난주 코로나 판정을 받고, 잠시 멈추었다. 읽고 싶던 에세이에 푹 빠지는 반나절. 음악을 찾아 듣고, 즐겨 듣는 팟캐스트 <여둘톡*>에 처음으로 댓글을 썼다. 마흔네 살에 공부를 해보겠다고 마음만 분주해서 하고 싶은 건 미룬 채 책상에 앉고 자리 잡고 앉았어도 일기만 쓰고 있지만, 내년에 또 도전하면 되지 뭐~ 하는 마음으로 편안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톡토로십* 안에서는 '볶아치즘(자신을 들들 볶는 일)'을 경계한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엄지로 후닥닥 써 내려간 댓글에는 그간의 내 심각함에 대한 간명한 해답이 들어있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면 되지, 이번에 못하면 다음이 있지, 이렇게 공부하고 나면 내게 남겠지. 내게 당연히 좋겠지.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도 좋을 거고. 누가 공부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뭐 아무렴 어때. 도전하는 내 앞에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치우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당겨 온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책을 펼쳐야지. 내 안에 답이 있다. 시험문제에 대한 해답도 차곡차곡 쌓이기를. 다만, 그저, 이 시간들이 노안으로만 남으면 안 돼.

한 달도 안 남았다. 내 머릿속엔 시험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이 한가득이다.

초록을 내다보며, 햇빛 받으며 하는 공부



*여둘톡: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톡토로쉽: 여둘톡 안에서의 우정 혹은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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