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아 Sep 01. 2024

내 안에 있는 파리의 공기

<무정형의 삶>을 읽고

파리에서 사입은 미니원피스를 오랜만에 꺼내 입고, 김민철 작가의 파리 산문집 <무정형의 삶> 북토크에 갔다. 수업하랴 집안일하랴 흘린 땀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 접혀있던 파리에 대한 향수를 그렇게 걸쳤다. 여름마다 들고 다니는, 쁘티팔레 뮤지엄샵에서 구입한 아르누보 스타일의 에코백을 들고 집을 나섰다. 서점으로 향하는 내내 어떤 질문을 드릴까 고민하다가 질문 하나를 생각해 냈다. 두 달간의 파리 생활을 내 안에 자리 잡게 하는, 그러니까 서울에서 살면서도 파리를 내 삶의 한 조각으로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작가님만의 방식은 무엇인가요?

일찍 서점에 도착해서 작가님이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 음악을 들으며 설렜다. 오랜만에 듣고 보게 될 파리 이야기에. 작가님의 반가운 얼굴을 앞자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파리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작가님의 눈은 더욱 반짝였다. 숨길 수 없는 사랑이 느껴졌다. 준비해 오신 사진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질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우문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파리를 내 안에 간직하는 작가님만의 방식은 바로 내 손안에 있었다. 고운 이 책 한 권이 ‘여러분, 내 모양대로 살아가야 해요’ 하고 빛나고 있었거든. 7시부터 한 시간 반이 흐르도록 말씀해 주시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그 방향을 향했다. 나답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으면서 살기. 내 이야기가 스멀스멀 펼쳐졌다. 맞다, 나에게도 파리는 나를 나답게 만들어줬거든.


2017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일 년 간의 파리살이. 지금 여기가 파리라니, 내가 파리에서 숨 쉬고 있다니, 그 사실이 벅차서 괜스레 백화점을, 쇼핑몰을 헤매고 다녔다. 내 앞엔 형형색색 빛나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보고 듣고 맛보고 사고 하는 데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었다. 짧은 여행이 아니라 생활을 할 수 있어서였을까? 멋지고 개성 강한 사람들은 내게,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기 스타일 대로 자연스럽게 편안함을 추구하며 살아도 된다고 온몸으로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는 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분위기가 너무 강하지만 여기선 누구도 남들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다들 이렇게 살아, 너도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말들에서 잠시 떨어져 있던 시간은,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했다.

파리에서의 나는 직업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관계로부터 조금은 분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다운 건 뭘까 골똘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 뭐 하는 사람이지? 여기에서 어떻게 지내야 될까?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내가 한 일은 어학원에 다니기였다.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고 숙제도 꼬박꼬박 해갔다. 비록 어학원이어도 시험을 앞두고 새벽까지 공부를 했고,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나 언어 공부 좋아하지, 시험을 앞두고는 또 공부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파리라는 장소는 이렇게 나를 더 잘 알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내 브런치 작가 소개에는 ‘파리에서 고독을 데려와서 여기에서 인생 후반을 함께합니다’라고 쓰여있다. 타인의 관심 말고 내면의 나를 마주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는 또 아이들을 건사하고, 복직을 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지만, 고독을 즐기는 나를 잊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일기를 제대로 쓰기 시작한 건. 김민철 작가님은 다음날 아침에 일기를 쓰신다는데, 나는 출근하는 사람이니까 그날 혹은 전날 일기를 밤에 쓰곤 한다. 요새 일기를 못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놀라서 일기장을 펼치면 고작 이틀 정도 밀려있다. 그 정도로 일기장은 내겐 없어서는 안 되는 것. 경험뿐만 아니라 생각과 느낌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 귀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며칠 전에 쓴 거라도 다시 보면 새롭다. 해야 할 일들, 쓰고 싶은 글들,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일기장에 있다.


파리에서 일 년 살이를 하고 몇 년 동안 내 핸드폰 배경은 같았다. 파리에서 서쪽으로 달려 찾아간 도빌 해변. 겨울에 간 그곳엔 해변에 사진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멋진 모델들의 사진, 머리가 바닥에 처박혀 있는 특이한 사진과 강렬한 인상의 인물들이 신선했는데 그중에서도 담배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델의 전신사진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사진과 바다, 회색 하늘을 피사체로 담아 내 배경사진으로 삼았다. 나도 저 모델처럼 개성 있고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이고 싶었다. 어쩜 파리에서의 내가 조금은 저런 태도이지 않았을까? 개성 있고 주체적 살고자, 나답고자 했던 내 마음. 파리에서의 나를 잊고 싶지 않아서 핸드폰의 잠금화면을 바꾸지 않았던 것 같다. 늘 그때의 나를 기억하려고.

@ Peter Lindbergh의 사진전, 도빌, 2017


김민철 작가님의 <무정형의 삶>을 읽으면서 나의 기억, 나의 마음과 자꾸 겹쳐 보며 읽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사수하는 것, 일기 쓰는 습관, 미술관을 찾아가 몇 번이고 같은 그림을 보던 일. 책의 뒷부분 파리에서의 두 달을 마무리하는 아쉬운 마음은, 파리에서처럼 ‘매 순간의 결들을 풍성하게 맛보며’ 살아보면 어떨까. ‘24시간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살며, 내가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무정형인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여, 찬찬히 나만의 하루를 완성해내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다. 다음 문장에 나는 노랑 색연필로 짙게 밑줄을 그었다.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미래에 나를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 기어이 그 꿈에 착륙하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나도 이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저 문장을 마음속에 꼭꼭 접어두고 힘들 때마다 펼쳐보리라. 언젠가는 또 길게 파리에 머물면서 나다운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


조원재 작가님의 <삶은 예술로 빛난다>에서 읽은 글이다. 마르셀 뒤샹이 약국에서 혈청을 사고는 내용물을 버리고 유리병만 챙겼단다. 그 유리병을 뉴욕에 있는 친구에게 가져가 <파리의 공기 50cc>라며 선물했다는 이야기. 내 안에도 그 파리의 공기가 늘 조금은 있었으면 좋겠다. 내 볼 안에 그 공기를 조금씩 머금고. 한 번씩 볼을 부풀려 휘파람을 불며 그때의 나를 떠올려야지. 지금 내 핸드폰 잠금화면은 뤽상부르 공원의 햇살과 여유가 담긴 <무정형의 삶> 표지다. 이걸 보면서 미래의 나를 꿈꿔본다. 한동안 손 놓았던 듀오링고 불어 공부도 다시 시작해야지.


@ 김민철, <무정형의 삶>, 위즈덤하우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눈부신 친구와 함께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