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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Nov 02. 2024

창작하는 마음에 대한 응원, 영화 <룩백>

당신의 창작을 응원합니다

 한 시간짜리 애니메이션 <룩백>은 주인공의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시작한다. 학보에 네 컷 만화를 그려 넣는 후지노는 만화 한 편을 그리기 위해 자기 책상에서 꼼짝 않고 애쓴다. 막상 학보를 받아보고 친구들이 다 즐거워하면, 잠깐 동안 대충 그린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러다가 자기 만화 옆에 나란히 그려진 히키코모리 쿄모토의 만화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친구나 가족과의 시간은 멀리한 채 만화에 엄청나게 몰두하다가 졸업하기 전 문득 만화를 그만 그리겠다고 선언한다.

졸업장을 건네려고 쿄모토의 집에 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조우하게 된 쿄모토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후지노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엄청난 찬사를 표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림이 갑자기 좋아졌다며 후지노의 성장을 알아보는 쿄모토 앞에서 후지노는, 너한테 자극받아서 노력하다가 그렇게 되었노라 말하지 못한다. 왜 만화를 그만두었냐는 질문에 너 때문에 그만두었다는 말 대신 만화 공모전을 준비하기 때문이라고 거짓말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빗속에서 후지노는 처음엔 어깨를 움츠리며 걷다가 곧 어깨를 펴고 걷고,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과장하며 걷다가 춤인 듯 춤 아닌 듯한 발걸음의 행진 끝에 마구 달린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괴로움일 수도 있고 엄청난 기쁨이기도 할 감정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가 추는 춤 같던, 그 감정의 응축이자 발산의 장면에서부터 나는 이 영화에 매료되었다. 대사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싶을 정도로.

영화의 뒷부분 회상 장면에서, 후지노는 쿄모토에게 만화를 그리는 건 힘들기만 하다는 투로 말한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 앞에서 말하던 방식으로 말이다. 쿄모토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만화를 그리는지 묻는다. 대답 대신 영화는 두 사람의 나날을 스틸컷으로 보여준다. 둘이 한 방에서 만화를 그리던 모습, 만화에 대해 대화하는 모습, 그리다가 조는 모습, 간식 먹으며 만화를 들여다보는 모습, 나란히 잠든 모습. 그 장면들을 보는 내내 후지노가 왜 만화를 그리는지가 느껴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들이 함께 창작하는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 작품에 대해 대화할 대상이 있다는 것, 그 가치를 알아봐 주는 이가 곁에 있다는 것, 그 일을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 그 충만한 기쁨 덕분일 것이다. 일등으로 작품을 보아주고, 그걸 보며 울고 웃고, 의견을 내고, 멋진 배경을 그려주는 든든한 친구, 그러니까 만화를 왜 그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쩌면 온통 쿄모토 때문일 수도 있었다. 단 한 명의 팬이 주는 커다란 응원 덕분에 후지노는 다시 창작할 힘을 얻고 쿄모토와 협업하여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쿄모토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후지노는 쿄모토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을 후회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구원했다고 볼 수 있다. 후지노는 히키코모리 쿄모토를 자기 방 밖으로 나오게 했으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했고 웃게 했다. 꿈을 좇으며 세상과 화해하도록 했다. 쿄모토 또한 후지노의 만화에 대한 열정을 알아보고, 두 번이나 아니 세 번이나 그리게 만들었다. 경쟁적으로 만화에 몰두하게 한 초등학생 때, 팬을 자처해 다시 만화를 그리게 한 초등학교 졸업식날,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로도.

쿄모토 방에서 찾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네 컷 만화 용지를 작업실 유리에 붙여놓고 후지노는 다시 만화를 그린다. 그 뒷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쿄모토가 작업하는 내내 보았을, 후지노의 등은 꼼짝 안 했건만 유리창 너머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밤이 되어서야 후지노는 작업실을 나간다. 그리고 관객들은 안다, 내일의 후지노도 작업실에 앉아 또 열심히 창작할 것을. 어쩌면 쿄모토가 살고 싶었던 방식대로 하루하루를 더 진실되게 살아갈 그를 응원하고 싶다.


이 짧은 영화의 잔상이 오래 남았다. 서로를 자극해 성장하게 만든다는 면에서 소중한 내 친구가 떠오르기도 했고, 꼼짝없이 앉아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글쓰기에 대한 자극을 받기도 했다. 권태가 찾아온 것인지, 시험을 마치기만 하면 주말마다 글을 쓸 거라는 호기가 시들해졌다. 쓰지 않아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고 어떤 창작이든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은 길다. 서로의 작업을 응원하는 동료가 그리워진다. 후지노와 쿄모토가 같은 방에서 다른 방향으로 앉아 각자의 작업에 열중했듯, 우리도 느슨하지만 함께 있다는 감각으로 응원하고 싶다. 내가 먼저 동료들, 내가 사랑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정성껏 읽겠다 다짐한다. 누군가를 구원하지는 못해도 창작하는 보람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 또한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어줄 이가 있다면 더 신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살고 싶었던 방식일 수도 있는,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을 마음을 다해 해내고 싶어 진다.



@ 후지모토 타츠키 원작,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 <룩백(Look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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