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았는데 오고야 말았다. 이제 코로나에서 조금씩 벗어나나? 안심하던 중이었다. 곧 실내 마스크까지 벗는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던가. 그렇다고 방심해서 개인적 위생에 소홀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코호트 격리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것을 보면 그동안 예방 노력이 충분히 보이는 일이다. 그런데 어쩌나! 겪고 말았다. 그것도 혹독하게.
위생과 방역에 조심하고 신경 썼던 이유는 남편 때문이다. 남편이 가지고 있는 깊은 기저질환이 한두 가지 아닌 형편이라 늘 조바심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본인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아빠가 감염되면 당연히 큰일을 치를 것이라고 염려하며 불안해했다. 아무래도 감염 노출에 가까운 쪽이 나인지라 잘못되면 원망을 감수해야 했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마침내 직장 내 마지막 감염자가 되어 모두의 위로를 받으며 격리에 들어갔다. 겪어보니 감기쯤이더라고 이제 코로나가 별거 아니라고 들 말해 주었지만, 막상 그것이 내게 오고 나니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다음 날 남편이 감염되었다.
남편은 이미 수일 전에, 몸살로 크게 앓은 후였다. 당연히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그 때문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생각 외로 가볍게 넘어가는 듯했다.
문제는 나한테 왔다. 일주일을 함께 격리하면서 남편은 어렵지 않게 모든 시중을 들어줄 정도로 가벼웠다. 그런데 어떻게 난 이렇게 아플 수가 있지? 평소 여름 감기에도 취약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하루 이틀 많이 앓고 나면 견딜 만했다는 가까운 감염자들보다는 정도가 심했다.
격리를 마치고 휴가를 더해 병원 치료를 다녔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눈에 띄게 험한 증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기침이 시작되면 밤새 멈추지 않고 몸살처럼 살이 아프다. 웬일인지, 눕고 싶을 만큼 기운이 없고 소화 장애와 식은땀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고도 5개월이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기침과 가슴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담당의는 검사를 마치고 2주 치 약을 바꿔 처방하더니 후유증이 길 뿐이라고만 한다. 그동안 이것저것 끊임없이 챙겨주고 있는 남편을 보면 누구보다 마음이 가장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었겠다. 내가 아니라서.
가끔 내가 아니라서 견딜 수 없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차라리 나라면 하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치를 수 없는 불가항력인 경우이다. 아주 오래전, 내가 겪게 되어 고맙고 참 다행한 일이 있었다. 이보다 더 한 일을 겪는다고 해도 두렵지 않은 경우였다.
물론 주변에 그 반대인 경우도 보았다. 당시만 해도 우리 부러움을 받을 만큼 인생이 잘 풀리던 친구였다. 그런데 친구의 한 마디가 그녀를 새롭게 보도록 했다. 어려운 시댁 형제들의 운이 모여 자기들이 잘 된 것이라고. 그래서 그들과 나누는 것을 나무랄 수도 없고, 아쉽지도 않다고 했다.
지난달에 가까운 선배 문상을 다녀왔다. 남편에게는 동기이고 나에게는 선배인 분이다. 50여 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했으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함께한 이들이 많았겠는가. 일 년 전에도 우리는 차를 함께 마셨고 수시로 긴 통화를 나누었다.
그랬던 선배가 느닷없이 가 버린 것이다. 새벽 첫차를 타고 내려갔을 때는 문상객이 거의 없어서였는지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이 낯설었다. 함께 걸었던 거리와 표정도 생각났다. 지난날이 그립고 내가 그리웠다. 어쩌면 서러운 것은 나였는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리고 더 서러워 울고 있는 딸아이를 안아 주며 말했다. 너무 아프게 오래 울지 말아라. 너희를 아까워하던 아빠는 아빠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셨을 거야. 그러니 평소처럼 사랑으로 가셨을 거야,라고.
그랬다.
얼마나 다행이냐고. 나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