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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re Jul 08. 2017

성수기 노스탤지어

모두가 지금 떠났고, 모두가 지금 도착했다


도착




어딜 가나 사람이 많다. 현실의 부대낌에 들썩여 떠난 여행인데 비행기, 기차, 버스 어디든 만석이다. 이탈리아는 지금 성수기다. 사진은 비현실의 유토피아. 단, 리얼은 소란스럽다. 모두가 지금 떠났고, 모두가 지금 도착했다.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의 5개 마을을 잇는 친퀘테레 지역의 마나롤라 마을이다. 일 년에 두 달 가까이 여름휴가를 즐긴다는 이탈리아 피서객으로 온 마을이 들썩인다.



15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한 나에게 휴가란 밥벌이의 고단함을 잠시 잊는 것이어야 했다. 사람이 적어야만 하고 시골일수록 더 좋았다. 기껏 시간 내 떠난 해외여행에서 호텔에만 처박혀있던 날도 수두룩했다. 도시를 여행한다 해도 남들이 기념 사진 찍는 장소는 얼씬도 안 했더랬다.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트렌드를 수집한다는 핑계로 '남들 다 하는 건 안 한다'는 일종의 우월감 혹은 망상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몇 년 째 여행 사진이 모두 폼만 잡고 서 있다. 남들과 함께 울고 웃고 V자 그리는 사진 하나가 없다. 사진 속 나는 거의 혼자다. 같이 간 친구가 잘 찍어준 덕에 늘 시크하다.(웃으면 안 Chic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여행과 휴가는 다른 것이 아닌가. 바람이 분다. 여름이 오는, 나는 지금 이탈리아에 있다.


시에스타. 모두가 일광욕을 위한 차림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몸을 데우고 그늘에 들어서면 바람이 분다. 습습함은 없다. 축복 같은 지중해성 기후에 머리칼이 날린다.


마나롤라 마을의 언덕 위 풍경.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퍼진다.


출발


사람이 많은 장소는 의도적으로 피했다. 서울이 떠오른다면서. 뉴욕, 런던, 파리, 도쿄. 가기는 해도 기다려야 하고 혼잡스럽고 어지러웠던 공간은 되도록 피했다. 동행한 지인에게 '뭐 하러 왔느냐' 핀잔 듣기도 부지기수. 왜 그랬을까. 어딜 간들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일단 비행기 스케줄 검색을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간 제일 싫어하던 성. 수. 기. 였다.


떠나고 싶었다. 훗날 없이 쉼표, 찍어보자며 사표도 쓴 참이었다. 내게 주어진 여름. 소속 없이 방랑할 수 있는 나날이다. 돌아갈 날짜를 기약하지 않아도 되니 오래간만에 성수기를 맞이해 보자 싶었다. 그리고 출발했다.



역시나...


만석이다.

에어 프랑스 기내 안전 사항을 알려주는 비디오. 상큼하다.





유럽의 성수기를 즐겨보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대로 두고보기. 혼자 하는 여행이니 주변을 둘러보기 좋다. 맛을 느끼기엔 더 좋다.(덕분에 여행 초기부터 살이 붙었다.) 피렌체에서 보낸 며칠은 재앙 같았다. 두오모를 보겠다고 찾아든 관광객들이 쓰는 영어, 불어, 중국어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관광 지역의 옵션, 성수기 소매치기들과 가방 잡고 눈싸움도 해야 했다. 아, 마음이 지쳐온다. 아, 벌써 돌아가고 싶다.


피렌체 공항의 규모는 매우 작다. 내리자마자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 중국어까지 다양한 언어가 들리기 시작한다. 성수기의 신호탄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시기는 알고 보면 그 도시가 일 년 중 가장 성숙하는 날일지도 모른다. 기록할수록 아름다운 날들이다.

어둠이 내리고 유적지 사이에서 한여름 밤의 꿈같은 공연이 시작된다.


관광지라 일컬어지는 도시에 가 보면 그네들의 삶도 함께 판매된다. 도시 브랜딩이란 그 지역 사람들의 언어와 컬처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현재 피렌체, 볼로냐 두 도시를 여행 중이다. 도시의 로컬들은 일 년 중 '그날들'(성수기라 읽는다)을 위해 다른 날을 보낸다. 그래서 성수기의 다른 이름은 '성숙기'가 아닐까. 포도 산지로 와인이 국가 브랜드인 이탈리아에서 숙성과 성숙은 같은 길 위에 있다. 말 장난 같지만 엎어치고 메쳐보면 성수기를 긍정적으로 해석해볼 만 하다. 도시의 성숙은 사람을 모아 광장을 이루고 그곳은 인기 지역이 되며 매년 성수기란 것을 형성한다. PIAZZA: 삐아쨔. 이탈리아 말로 광장이란 뜻이다. 브랜딩이 잘 된, 성수기를 부르는 성숙한 도시엔 이 비슷한 개념의 광장이 존재한다. 그렇게 모두 떠나고 모두 도착하는 곳. 나의 '그날들'은 어떤 모습으로 추억이 될까. 내 인생의 성수기가 지금은 아닐까. 오늘은 볼로냐 광장에서 휴가를 온 전세계 사람들과 이탈리아 여름 축제를 즐겨볼 참이다. 막 공연이 시작됐다. 한여름 밤이다.  





피렌체의 삐아짜. 광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성수기가 싫었던 이유는 많은 생각 때문이다. 그저 멍 하니 하늘만 봐도 좋다. 장석주 시인의 산문집 제목처럼.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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