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달 May 05. 2022

엔꼬와 오버히트

타지에서 운전할 때, 당신이 마주친 문제를 해결하는 법

한국에 살면서, 나는 자동차의 보닛을 열어본 일이 없었다. 한국은 자동차 보험회사의 서비스가 훌륭하기 때문에, 전국 어느 곳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전화만 된다면 보험사가 출동해서 모든 문제를 클리어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부에 사는 동안에, 나는 한국에서는 결코 열어 볼일 없었던 보닛을 수없이 열어야 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보험사의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지에서 차가 서거나 사고가 나면 대책이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차주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도 필리핀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 그래서 비오는 날, 차가 공사로 엉망이된 도로를 달리다가 구덩이에 빠지기라도 하면 스타렉스 같은 대형차도 '도와달라'는 한 마디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차를 들어 도로 위에 올려준다. 남이라도 그런다.  


가장 흔히, 자주 겪은 문제 상황은 엔꼬와 오버히트다. 거리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차를 끌고 먼 길을 나서거나, 중간에 주유소가 어디에 있는지 가늠이 어려운 때문이다. 물론 최근 GPS가 발달하면서 그런 문제적 상황이 발생할 경우는 줄어들었지만,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내가 세부에 체류했던 기간에는 GPS 서비스를 유용하게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엔꼬. 연료가 바닥이 나거나, 혹은 오버히트. 과열이 되는 상황. 이 상황이 세부에서 가장 흔히 자주 겪는 문제 상황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엔꼬를 대비하기 위해 약간의 연료를 차에 싣고 다녔으며 오버히트를 대비해서 생수도 챙겨 싣고 다녔다. 보닛을 열어볼 일이 많아지면서 보닛 안쪽 자동차 기관에 대한 지식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난감한 상황을 얼마나 많이 겪어야 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러한 능력을 한국에선 갖출 필요가 없다. 오직 세부에 사는 동안에 필요한 능력이었으나, 문제 해결 능력이 몇 단계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불편함은 확실히 한 사람의 문제해결력을 높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타지에서 엔꼬와 오버히트를 겪었던 경험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더구나 아이들을 태우고 있던 차를, 기사도 없이 끌고 나왔다가, 그것도 밤에. 그것도 산중에서. 


무섭고 두려우면서도 아이들 앞이라 무섭다, 두렵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른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로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상황.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일에도 이와 같은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새로운 영역, 경험해 보지 못한 분야에서도 종종 엔꼬와 오버히트의 상황을 겪게 된다는 것. 물론 나의 생활에서의 경험으로 지금 부딪힌 문제 상황이 결국 엔꼬가 난 것이며 오버히트가 된 상황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차분해 지기는 한다. 


하지만 내가 탄 차에, 자동차에 대해 너무도 잘 아는, 이 동네가 바싹한 동승자가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드는 상황에서 혼자 보닛을 열고 차의 기관을 들여다 보고 있는 상황은 적절하지 않다. 얼른 고치고 가자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너가 차주니까 이 문제는 네가 해결해야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경험이 많은 당신이 처음으로 타지에서 엔꼬를 경험하고 있는 나에게, 오버히트를 경험하고 있는 나에게 가지고 있는 연료를 조금 나눠 주거나 생수를 조금 나눠 주면서 방법을 같이 찾아봐 주면 좋겠는데. 연료도 생수도 내줄 기미가 없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차에 연료를 가진 사람도 생수를 가진 사람도 있는데. 멀리 마을까지 걸어가서 연료와 생수를 가져와야 할까? 그렇게 할까도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내 경험이 쌓이는 게 분명할까? 그럴 수도 있다. 차가 멈춰 선 지역에 대해 탐색을 하고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연료나 생수를 나눠 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운명적인 만남이라며 기뻐하고 신이 주신 선물이라며 감동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기로 한다. 함께 차에 타고 여행을 할 사람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기름과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수가, 지금 내가 마을까지 다녀올 시간을 단축해 줄 수 있으니 꺼내 놓으라고 말하기로 한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차를 빠르게 고쳐서 목적지로 함께 갈 수 있다. 필요하면 돈을 지불할 것이고 필요하면 대화를 해야 한다. 


엔꼬가 날 것 같다. 오버히트로 차가 설 것 같다. 


내가 예감한 일들에 대해 외침을 듣지 않은 당신이, 멈춰선 상황에 대해 주머니에 가진 기름과 생수를 꺼내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태우고 갈 이유가 없다. 차에 타고 목적지에는 가고 싶다면 모두 힘을 합칠 때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타지에서 운전대를 잡은 문제에 대해 당신이 나를 고용한 게 아니라, 동승한 것이라면, 내가 운전대를 잡고 이만큼 온 것에 대해 고마워 해야 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에 힘을 보태야 한다. 승객이 아니고 내 아이가 아니고 동승자니까. 내가 목적지까지 태워다 줘야 하니까. 


그게 협업의 골자가 아닌가. 


세부의 오지로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그후 대책을 늘 마련하고 다녔던 것처럼. 오버히트와 엔꼬. 그리고 타이어 펑크 등의 여러 상황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되었었다. 때로는 이런 문제가 없도록 장거리 여행을 가야 할 때는 아예 렌트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타지에 대한 경험, 동승자에 대한 경험, 문제상황에 대한 경험이 결국 나의 자산이 될 것을 안다. 


자,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지금의 엔꼬와 오버히트를 조절할 것인가. 


일단 차를 세운다. 

문제상황을 정검한다. 

동승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확인한 뒤에 필요한 것들을 내놓게 한다. 

동승자들에게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고 요구한다. 

어린이와 노약자가 아닌 당신이 입으로 해준 모든 조언을, 행동으로 하시게 이끌어 드린다. 

남은 거리를 운전해야 하는 나는 차를 혼자 밀거나 끌거나, 혼자 마을까지 가는 무모함을 실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즐겁게 놀아야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함께라면, 잠깐 쉬어도 좋은 것이다. 무리하게 1킬로미터만 더 가면 주유소가 있으니까 이 차를 밀어서 거기까지 가야 한다고 하고 차 안에 있는 당신을, 차 밖으로 나오시게 하고 같이 밀자고 해야지. 혼자 끌다가 우리 모두 운전자를 잃을 수 있다고 말해 줘야지. 


그렇게 새로운 분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장착한다. 


대략, 방향을 정리하고 나니까. 자자자. 이제부터 이렇게 합시다. 하겠구나. 


--


4개월 동안 인터넷 관련된 업무를 하면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연료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았다. 그것은 사람, 그것은 독서. 그것은 창작의 힘이다. 그리고 나를 오버히트하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최소 4시간의 수면과 맛있는 한 끼 식사. 그리고 생활의 균형. 


이제 정비를 마치면, 차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쌩쌩 달릴 것이다. 


오늘의 일기. 


고로 오늘 나는 하룻동안 쓰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다른 업무는 쉽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이야기가 컨텐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