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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모 Jan 20. 2020

그게 어려워?

2020년 1월 17일

그게 어려워? 


[이놈의 출판계는 쓸데없는 프라이드는 겁나 높으면서 예의는 개똥이야] 


채용공고 마감일에 맞춰 이메일을 보내고 며칠이 지났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두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작년부터 출판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채용에 대한 답변을 받은 건 고작 세 번이었다. 그것도 한번은 면접 날짜를 잡자는 답변이었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찾는 인재상이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다른 직종을 이직을 결심한 만큼 더 많은 탈락은 예상했다. 외국어 능력이 떨어진 만큼 자기소개서에 더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치욕을 감당하면서 까지도 나는 책이 좋았고 언어를 다루며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결심은 굳건했다. 그런데 이 굳건한 마음도 배려 없음에는 구멍 나기 마련이다. 허공에 대고 소리쳐도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법인데, 이놈의 출판계는 미세한 바람조차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자기소개서에 들인 노력만큼의 성심성의껏 써진 답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답장은 와야 기다리는 사람이 애타진 않을 텐데, 응답조차 없으니 기다리게 된다. 희망고문이라는 말답다. 그러다 북에디터에 기한만 늘어난 똑같은 채용공고를 볼 때 면 속이 썩는다. 썩어.


이는 세계전집을 판매하는 유명 출판사뿐만 아니라 매년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서 문학상을 수상하는 출판사, 민족문화를 계승한다는 출판사, 노동자들의 목소리에서 시작했다는 출판사까지도 명성처럼 높은 벽은 노동자의 소리를 삼킬 뿐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사회가 비인간성을 비판하는 책을 출판하든 회사이든지, 노동자를 이해한다는 힐링 서적을 출판하는 곳이든지 마찬가지이다. 배려는 다른 차원인가보다.


나는 배려 받고 싶다. 내가 노력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몇 줄이 적힌 답장을 받고 싶다. 회사는 몇 줄 안 되는 채용공고를 올리면 끝이지만, 그걸 지원하는 사람은 며칠을 수백 줄의 완성된 문장으로 채워야하는 자기소개서에 매달린다. 회사의 성향에 따라 자기소개서 내용을 구상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중노동이다. 게다가 지원자들은 자신의 이력과 다른 사람의 이력을 비교하며 아쉬움과 실망으로 자신을 깎아 내리는 고통을 감내한다. 수고의 대가를 받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동일하다면 회사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사람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배려라는 대가를. 나는 배려 없음에 화가 난다.


대한민국은 언제부턴가 배려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버스를 타며 운전기사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을 볼 수 없고, 편의점을 알바에게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건네는 손님을 찾기 어려워졌다. 콜센터 직원들에게 가해지는 언어폭력을 이루 말할 수 없어 ‘감정노동자 법’이 만들어 졌다. 오히려 아들 같다며, 딸 같다며 반말과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만 잔뜩 보인다. 그런 이들을 보면 부모 같으니 용돈을 핑계로 지갑 좀 털어가고 싶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무릎을 베고 누운 나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정모야, 사람을 만나면 꼭 인사해야 돼, 인사가 다야.]

[할머니 그럼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해야 돼? 모르는 사람도?]

[인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럼 그 사람도 인사하겠지]


사무치는 말이다. 인사라는 사소한 배려는 인간미 넘치는 사회를 만든다. 물건을 사고 나오면서 ‘수고하세요’ 라는 한 손으로 세어지는 말은 ‘감사합니다’라는 또 다른 손을 만들어낸다. 그럼 두 손이 모여서 박수가 된다. 짝. 손바닥도 마주쳐 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무엇이든 오고 가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사소한 배려로 인간미 넘치는 사회를 꿈꾼다.


글을 쓰며 곰곰이 생각한다. 출판사 편집장은 수십 명의 이메일을 모아서 전체 답장을 보내는 일이 어려운 작문인가. (한명한명 피드백을 주는 답장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물건을 사고 나오며 수고한다는 말이 어려운 어법이 필요한 일인가. 콜센터 상담원과 전화를 끝내며 따듯한 말 한마디가 돈이 필요한 일인가. 그럴 리 없다. 마음의 문제이지, 어려움과 쉬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마음이 없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마음이, 자신이 배려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배려 받지 못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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