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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모 Sep 17. 2020

도서정가제의 유효성 논란

오랜만에 독립 서점을 운영하는 지인과 통화하며, 책을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지인과 나는 출판사 편집자를 준비하며 친해졌다. 지인은 독립 영화 잡지에 필진으로 참여할 정도로 예술과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봉준호의 《기생충》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해석이었기에 지인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이든 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갑작스레 서울의 삶을 정리하고 공주에 가서 독립 서점을 차렸다. 지인은 책을 만드는 일을 준비하다가 책을 파는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를 서점지기라고 부르며 자신만의 관점으로 공간을 채워나갔다. 책을 좋아하는 지인, 그것도 하루의 업무가 책으로 시작해서 책으로 끝나는 서점지기와의 친분은 나의 사고에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대한민국의 출판계는 일 년에 약 팔만 권의 책을 선보인다. 그 가운데서 취향에 맞는 서적을 고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나처럼 옷 한 벌 사더라도 취향에 맞는 옷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책 한 권 주문하는 일도 고되다. 끝까지 읽게 될지, 책의 내용이 어떠한지, 지금의 내 관심사와 맞는지 하나하나 따지다보면 짧게는 한 주, 길게는 몇 주를 소비한다.      


서점지기는 이런 시간을 대폭 줄여주었다. 이제 막 오픈한 독립서점에게 온라인 서점이 제공하는 포인트도, 무료배송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가 추천한 책은 내 취향을 저격했다. 좋은 책은 자가 증식한다는 말이 있다. 책에서 파생된 질문이 다른 책을 읽게 만든다는 말이다. 그 덕에 들뢰즈 철학에 입문하게 되었고 내 사고의 기반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최근에는 서울 쪽방 탐사하며 서울 대도시 밑바닥층의 빈곤 문제를 다룬 『착취도시, 서울』을 읽고 부동산 착취에 관한 책을 주문했다. 이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대형 서점에서는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이다. 개인과 개인으로 관계를 맺을 때만 가능한 관계 서비스가 아닐까. 또 이것이 독립서점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대화의 끝에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도서정가제에 대한 푸념으로 끝이 났다. 2003년, 도서정가제는 소비자의 반발과 공급자의 박수 속에서 시행되었다. 현행의 형태를 갖춘 2014년 전까지 제도는 신간과 구간의 기준과 각각의 할인율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했다. 도서 정가제가 처음 시행된 이후 신간을 출간 기준 12개월로 할지, 18개월로 할지를 두고 4년을 논의했고 구간의 할인율을 약 십 년 간 논의 끝에 신·구간 상관없이 십 프로로 고정시켰다.

 

최근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구하신 청원이 이십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도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 출판 시장의 하락, 도서정가제로 인한 가격 상승, 독립서점의 감소로 이어졌으며, 이런 상황에서 도서정가제의 강화 및 전자책의 특수성을 반영한 별도의 규제 또는 규제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의 주장은 일목요연했고 현 상황을 현실적으로 분석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시행 후 3년간의 수치와 기록을 정확하게 집어냈고 외국에서 시행되는 도서정가제를 간략하게 소개하며 현 제도와의 차이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청원인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분명 전자책에 대한 대책을 필요하다. 갑자기 떠오르는 전자책 시장에 출판사도, 정부도 뚜렷한 대책을 내지 못한 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현황이 도서정가제로 벌어졌다고 여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출판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다. 소비자에게 잘 팔리는 책을 출간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대중 매체에 PPL 광고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책이 어떻게든 팔려야하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품성이 없는 책이라도 출간을 하는 곳이 출판사이다. 사회의 필요한 책이라면 마이너스를 기록하더라도 과감하게 출판한다. 우리는 이를 출판의 공공성이라고 부른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대화의 주제에 오를 정도로 팔리는 책과 달리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출판사는 출간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도서정가제로 신간과 구간이 나누어지고 과거와 같이 구간에 대한 할인율 제한이 없어진다면 출판사는 책이 구간으로 넘어가기 전 재고를 정리하기 위해서 팔리는 책만 출간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당장의 이슈가 끝나기 전에 뉴스 미디어가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쏟아내는 뉴스처럼 말이다.


둘째로 출판계의 수익 구조이다. 독립 서점을 운영하는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독립 서점 주인들과 이야기하면서 수익 구조를 알게 되었는데, 특수한 곳들을 제외하고 대두분의 독립 서점은 항상 마이너스고 다른 부분에서 이를 충당하더라.” 즉 독립 서점은 몇 백 권을 팔아도 마이너스고 독립과 같이 카페나 약국 같은 다른 업종을 한다든지, 아니면 배우자의 수입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지인도 매출이 상승해서 최대 매출 사백 권을 찍었지만, 실수입은 오십만 원을 웃돌지 못한다고 말했다. 약 한 권에 천 원을 버는 꼴이다. 여기에는 간단한 셈법이 필요하다. 쉬운 셈법을 위해 정가를 만원이라고 정하자.


서점지기는 서점에 책을 들여놓기 위해서 위탁 판매업자(유통업자)에게 책을 주문한다. 출판사에 직접 주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출판사는 직거래 때문에 생기는 여러 일들(주문 시스템 구축, 파주 창고 납품 관리, 판매율 확인 등)로 인해서 선호하지 않는다. 위탁 판매업자는 정가에 칠십오 프로의 가격에 납품한다. 칠천오백 원에 들어온 책은 할인율 십 프로를 제한 가격 구천 원에 팔린다. 그럼 서점이 얻는 이익은 천오백 원이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종이의 특성상 책은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개인 소장이면 상관이 없지만 상품을 판매하는 서점 입장에서는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히터를 꾸준히 틀어야 한다. 천오백 원의 이익으로 냉·난방비를 감당한다.


납품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위탁업자가 가져가 칠천오백 원에서 천원은 작가의 인세로 지급된다. 육천오백 원이 남았다. 여기에서 출판사의 제작비를 빼자. 표지 후 가공, 양장, 종이 재질, 도수 인쇄 등을 따지면 더욱 비싸지만 평균적으로 이천오백 원으로 생각하다. 책은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에 사무실이나 인쇄소에 맡길 수 없어서, 서적 전문 창고를 이용해야 한다. 그 비용 또한 권당 오백 원 정도이다. 그러면 출판사에 돌아가는 마진은 삼천오백 원이다. 이 비용으로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 인건비와 임대료 등의 비용을 해결해야 한다.요즘 책을 출간하면 1쇄에 천 권을 찍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책은 1쇄에서 머문다. 2쇄, 3쇄까지 가면 출판사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이다.


여기서 도서정가제 폐지된다면 서점은 문을 닫을 것이고, 출판사는 마이너스 마진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가장 줄이기 쉬운 인건비와 제작비를 줄일 것이다. 더불어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소규모 출판사들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대형 출판사들만 살아남아 출판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구조는 더욱 강고해질 것이다.


‘도서정가제 페지 청원’에 답변한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의 말처럼 도서정가제가 “시장에서 자본을 앞세운 대형. 온라인 서점 및 대형 출판사의 할인 공세를 제한해 중소규모의 서점이나 출판사도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형. 온라인 서점 및 대형 출판사의 출판시장 장악력이 십년 사이에 십육 프로에서 사십육 프로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또 더 좋은 도서들이 발간된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한 달만에 책을 쓸 수 있다는 글쓰기 책들이 쏟아지고, 투고만 하면 출판해주는 출판사도 생겨났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독립출판, 일인 출판사가 급증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 낼 수 있게 되었고, 팔리지 않더라도 사회의 필요한 책을 맘껏 출판하는 출판사도 생겨났다. 또한 2015년에 97개에 불과했던 독립서점들은 2019년 551개로 대폭 늘어났습니다. 출판의 홍수 속에서 독립 서점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전문 독자로 업을 삼은 서점 지기들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큐레이팅한 책은 소비자가 바다 속에서 진주를 찾아낼 수고를 덜어내 줄 뿐만 아니라, 독자의 사고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체질을 바꾸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꾸준히 다양한 처방이 필요하다. 도서정가제는 대형 자본의 침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약과 같다. 거부 반응은 당연히 따르기 마련이다. 거부반응이 있다고 약을 끊는다면 출판 시장은 자본만을 추구하며 다양한 책은 사라질 것이다. 도서정가제의 변화는 필요할지언정 폐기는 안 된다.


서점지기에게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전문 지기가 한 달을 고민하며 고른 책이다. 그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조금만 더 거리를 두고 지내면 상황은 분명히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저희 또한 희망을 갖고 각자의 장소에서 즐기실 수 있는 책과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문장은 도서정가제를 염두에 두고 쓴 말은 아니지만 도서정가제를 대하는 태도로 여겨진다. 각자의 동네에서 즐길 수 있는 책과 이야기를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도서정가제를 조금만 더 지켜보면 출판시장은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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