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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모 Jun 30. 2023

<소도시의 삶>

철학적으로 도시 읽기


며칠 전 지인이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소도시로 이주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손끝에서 다른 손끝으로 만져지고, 흙이 만져지고 사람이 만져질 정도로 작은 도시. 서울공화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의 모든 인프라가 만들어 낸 오색빛깔 서울에서 벗어나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상상만으로도 호수가 잔잔해진다.


그러다 오늘 소도시에서 일하는 지인이 소도시인의 삶은 무색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심심하다고 했다. 취미로 즐길 인프라가 없기에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소도시인의 삶이라 말했다. 내가 가끔 내려가는 공주가 그랬다. 소도시의 밤은 전봇대 아래에 그림자가 사라지고 편의점이 무인 편의점이 된다. 길거리에서 한두 명이 떠들어도 게스트하우스 안까지 들렸다. 음악과 책이 없었다면 밤이 길었을 것이다.


김명식 건축가는 자신의 책 <철학적으로 도시 읽기>에서 도시는 장소가 주는 감각, 경험, 이성을 개인의 내면으로 끌고 오는 내부화와 내부화된 자신의 세계를 장소로 표출하는 외부화, 두 과정이 연속된 층위라고 말했다. 두 지인의 이야기는 대도시에서 난무하는 외부화로 인한 피로감과 소도시의 인구 부족이 만든 외부화에 대한 반응 결핍이 아닐까.


나는 미래에 어떤 장소에서 거주하고 있을까. 적당한 반경, 적당한 인프라, 적당한 사람, 모든 것이 적당하면 좋겠다는 상상하지만 막연하다. 이 막연함은 아직 내가 꿈꾸는 삶이 그려지지 않기에 생긴 흐릿함일 것이다. 늘 말하듯 저녁에는 책으로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친구를 초대해서 식사를 나누고, 가끔은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고, 가끔은 글도 쓰고, 가끔은… 가끔은…


그러나 지인이 했던 말. 자신의 삶이 손끝에서 다른 손끝으로 만져지는. 이 말 만큼은 내가 딛고 있는, 디뎌 온, 디딜 장소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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