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vs 네트워크
매거진을 기획하고, 기획을 실현하는 과정에는 공부가 잇따른다. 대학원까지 나온 전공을 미뤄두고 출판 분야를 선택한 이유도 지식의 분야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매거진은 매 호마다 새로운 공부가 필요하다. 요즘 로컬 매거진 또는 인문학 분야 매거진은 기존 단어나 개념을 비틀어 자신들만의 개념으로 세우곤 한다.
민음사에서 발행하는 문예지 릿터(Littor)가 그러하다. 특정 단어가 갖고 있는 함의를 넘어 주제 단어가 메인 흐름이 되지 않더라도 사소하게 개입되어 있으면 매거진 안에 수록한다. 단어의 부정과 긍정을 제쳐둔다. 함의의 최대화라고 해야 할까.
이런 현상은 로컬 매거진 영역으로 오면 더욱 확장된 형태를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로컬 매거진은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로컬맛 매거진이 아니라 정말 소도시에서 제작되는 매거진을 말한다. 개념 A와 개념 B가 있다. 두 개념은 서로 넓게 보면 비슷한 양상을 드러내지만 본질로 들어갈수록 전혀 다른 개념이 된다. 그러나 로컬 매거진에서는 이 두 개념을 혼용해서 쓰거나 개념 A를 확장시켜 개념 A+B+@가 포함된 A‘를 정립한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생각하자. 전통적인 커뮤니티는 공통의 목적성, 가치관, 관심사를 공유하는 집합체이다. 주민협의회, 졸업생 모임, 지역 청년모임, 상인회 등, 점차 사라지는 그룹화이다. 반면 네트워크는 다르다. 관심사, 공감, 연결, 정보 등 뚜렷한 실현화의 목적이 없이 그룹화되어 있는 집합체를 형성한다.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기획 단계에서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단어가 주어졌다. 로컬 분야에서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 주민, 기업, 지방자치단체 이 세 영역이 힘을 모아 지역의 문제(공공 영역)를 해결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그러나 로컬 크리에이터의 인기가 높아지고 열풍이 불자, 더 이상 기존 주민이 아닌 타 지역에서 이주한 크리에이터들로 인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들은 지역에 스며들기 위해 네트워크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기존 커뮤니티에 치댄다.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애씀이다.
이들은 지역 주민들의 호응과 긍정 안에서 자신들만의 디자인을 펼쳐내고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들은 기존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단어에 포섭하기엔 경계에 서있다. 나는 이런 이들을 무슨 비즈니스라고 말해야 할까. 단순 로컬 비즈니스라고 하기엔 그냥 지역 사업으로 퉁치는 느낌이다. 독자에게 직감적으로 인싸이트를 주는 단어를 새롭게 찾아내는 것이 이번 호의 핵심일 것이다.
아직 기획 자료를 준비하면서 도서관에서 열댓 권의 책을 대여했다. 더 이상 책장에 책이 증식하게 둘 순 없기에 이젠 빌린다. 그러나 책마다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혼용해서 쓰거나 또는 책마다 부딪히는 정의들이 발견된다. 결국 쓰는 사람 마음인 건가 싶으면서도, 독자들의 마음에 얼마만큼의 감각을 부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앞으로 펼쳐질 LLL2호 제작 과정이 자갈길로 보이지만 그 여정 끝에는 또 배움이 있기를 기대한다.